‘북한 기독교…’ 펴낸 양병희 목사
“北, 성경 인용 등 변화 조짐 뚜렷해
탈북민 정착 지원 등 통일 준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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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넘어 나라와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통일을 준비하는 북한 사역은 아무리 힘들어도 꼭 가야 할 길입니다.”
최근 ‘북한 기독교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출간한 양병희 영안교회(대한예수교장로회) 담임목사(사진)는 지난해 12월 28일 인터뷰에서 20여 년이 넘게 북한 사역에 매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이렇게 말했다. ‘북한 기독교…’는 그가 북한 사역을 시작한 뒤 북한 방문 및 탈북자들의 증언과 자료 등을 토대로 북한 기독교의 현실을 다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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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목사는 “북한은 신앙의 자유가 없고, 종교인 종교 건물도 체제 선전용으로 활용할 뿐이지만 그 아래에는 변화의 조짐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성경 소지는 여전히 안 되지만, 성경을 보는 관점이 변한 것. 성경에 대한 정의는 과거 ‘예수교의 허위적이며 기만적인 교리를 적은 책’에서 2000년대에는 ‘주로 기독교에서 종교의 교리를 적은 책’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요한계시록을 묵시록으로 쓰는 정도일 뿐 성경 내용도 거의 동일하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언 17장 1절)라는 구절을 조선기독교연맹에서 편찬한 성경은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낫다’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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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초청으로 북한을 처음 방문한 양 목사는 “예배 도중 눈물을 흘리던 한 할머니의 모습이 이후 20년 넘는 북한 사역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라고 말했다. 한 가정예배처소에서 북한 주민 몇 명과 손을 잡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마침 방에 북한 측 인솔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는데, 손을 잡고 있던 한 할머니가 말없이 내 손바닥을 긁으며 눈물을 흘렸다”며 “처벌이 두려워 드러낼 수 없을 뿐 북한 주민 속에도 진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의 손을 잡은 할머니의 아버지는 광복 전 장로였다고 한다. 이후 그는 북한을 더 잘 알기 위해 고려대에서 북한학을 전공하고, 동북아한민족협의회를 설립해 북한 사역과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영안교회에는 매주 100여 명의 탈북민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세례를 준 탈북민도 760여 명에 이른다. 2001년 교회 안에 만든 북한선교부는 통일부 출신 목회자를 담당으로 두고 탈북민을 위한 법률, 의료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양 목사는 “우리도 막상 경찰서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려면 잘 몰라서 두려운데 탈북민은 오죽하겠느냐”라며 “교회를 통해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돕는다면 통일시대를 준비하고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기독교 박해 상황을 알리고 있는 ‘국제오픈도어선교회’에 따르면 북한에는 약 5만∼10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수용소에 투옥되거나 외딴 산간으로 추방당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신앙을 들키면 처벌받는 곳에서 투옥된 사람이 있다는 게 진심으로 믿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겠지요.”
양 목사는 “하도 북한 도발에 시달리고 뒤통수를 맞다 보니, 이제는 북한을 돕자고 하면 ‘지원 결과가 핵 개발로 돌아오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다”라며 “그런 측면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럼에도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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