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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 (일)

삼성도 아는 삼성 숙제…5년전 1조 까먹은 딥마인드에 답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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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 성공 방식으로는 안 된다.” " 새해 첫 근무일인 2일 삼성전자 수장들의 진단이다. 문제는 실행이다.

2일 삼성전자 경영 투톱인 한종희 DX(모바일·가전) 부문장과 전영현 DS(반도체) 부문장은 공동 명의로 낸 신년사에서 “인공지능(AI) 기술의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어, 어느 때보다도 기존 성공 방식을 초월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새로운 제품과 사업, 혁신적 사업 모델을 조기에 발굴하고 미래 기술·인재에 과감한 투자를 추진하겠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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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한·싱가포르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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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은 삼성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있다. 2일 대신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각각 7만8000원과 7만7000원으로, 기존보다 7~8%씩 하향 조정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견조함에도 삼성의 HBM 양산 일정이 기대보다 지연”되고(대신증권), “AI와 HBM 중심의 업사이클에서 소외됐다”(한투증권)는 이유다.



‘과감한 혁신’ 외치지만 안정 지향



AI 시대에는 새로운 성공 방식을 찾아야 한다는 걸 삼성 스스로도 안다. 반도체는 캐파(CAPA, 생산능력)와 선단 공정으로 과점 시장 1등을 지켜온 기존 D램 문법에서 벗어나야 하고, 모바일에선 ‘감성·디자인’을 넘어 자체 설계한 반도체·클라우드를 AI와 연동하는 애플과 경쟁해야 한다. 가전은 이제 중국 업체와 가격뿐 아니라 기술로도 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선 2017년 이재용 회장의 사법 리스크 이후 8년간 이어진 ‘안정 지향’ 문화와 당연하게 여겨온 ‘1등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로 꼽힌다. 지난달 사장단 인사에서 과거 미래전략실 출신인 최윤호·박학규·김용관 사장들이 전진 배치됐는데, ‘어려울수록 구관이 명관’이라는 평가와 ‘과거 방식으로 혁신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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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삼성전자 창립 55주년 기념식에서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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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과감한’ 인수합병(M&A)은 2016년 하만 이후 멈췄다. 지난해 2월 이재용 회장의 ‘제일모직·삼성물산 부당합병’ 혐의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 이후 옥스포드 시맨틱스(AI), 레인보우 로보틱스(로봇)를 인수했으나 경쟁사보다 한 걸음씩 늦었고 규모도 작다는 지적이다.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엔비디아가 지난해 AI 스타트업에 10억 달러(약 1조4700억원) 이상 투자했고, 이는 지난 2022년의 10배 이상 규모”라고 보도했다. AI 투자에서 엔비디아는 이미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을 넘어섰는데, 호황에 취하지 않고 여전히 ‘씨 뿌리기’에 한창이라는 거다.



조급증과 순혈 넘어, 영입 인재 활용해야



메타가 2013년 AI 석학 얀 르쿤 교수를 수석과학자로 영입하고 구글이 2014년 데미스 하사비스가 이끄는 딥마인드를 인수하는 등 빅테크도 AI는 외부 수혈로 대비했다. 삼성전자도 2018년 승현준(프린스턴대)·이동렬(펜실베니아대) 교수를 영입해 AI 연구를 맡겼고, 엔비디아·구글·TSMC·애플 출신 임원 영입에도 공들였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와 학계에서는 “삼성이 어렵게 확보한 인재를 제대로 활용한 사례가 거의 없다”라고 지적한다. HBM 등 AI 반도체 경쟁력의 핵심으로 꼽히는 후공정인 패키징을 강화하기 위해 영입한 TSMC 출신 린준청 부사장도 지난 12월 31일 자로 계약 만료돼 2년 만에 삼성을 떠났다. 앞서 영입했던 AI 인재 승현준·이동렬 교수도 2023년 말 회사를 떠났다. 이들은 회사의 보수적인 투자 기조와 제한적인 권한에 아쉬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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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스웨덴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으로부터 노벨 화학상을 수상하는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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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벨 화학상을 거머쥔 구글 딥마인드는 4~5년 전만 해도 알파벳(모회사)의 골칫덩이였다. 2019년 딥마인드의 손실은 6억6000만 달러(약 9674억원)에 달했는데, 버는 돈은 거의 없고 AI 인프라·인재 확보를 위한 투자는 막대했다. 그러나 구글은 2023년 초 딥마인드와 자체 AI 연구 조직 구글 브레인을 합병하고 데미스 하사비스를 통합 조직 수장으로 앉혔다. 구글 브레인을 이끌던 ‘성골’ 제프 딘은 도리어 자리를 내줬다. 영입한 인재가 성과를 낼 때까지 기다려주고 과감하게 권한을 준 것이다.



기술 문제, 솔직하게 소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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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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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과 조직 전체의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반도체 기업에서 삼성에 영입됐다가 다시 떠난 한 전직 삼성 임원은 “직원들에게 기술적으로 도전적인 평가를 했더니, 나중에 부정적 상향평가로 돌아왔다”라고 토로했다고 한다. 실력·기술에 대해 엄정한 평가나 피드백을 주면 인정하고 개선하려 하기보다, 불쾌해 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전영현 DS 부문장은 지난해 5월 취임 후 사내 첫 메시지에서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인정하고 도전할 것은 도전하며 투명하게 드러내서 소통하는 문화를 회복하자”라고 강조한 바 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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