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트리플 악재에 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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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탓에 연말 특수 사라지고
기업들 새해 투자도 기대 난망
환율은 2009년 금융위기 수준
저성장 타파할 대책 고민 필요
트럼프 피벗(Trump Pivot)이란?
‘회전하다’ 또는 ‘중심축’이란 뜻을 지닌 피벗(Pivot)은 경제분야에서 정책·방향 등의 급격한 전환을 가리킨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기존 관세·무역·에너지 등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예고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 피벗’이라 부른다.
‘회전하다’ 또는 ‘중심축’이란 뜻을 지닌 피벗(Pivot)은 경제분야에서 정책·방향 등의 급격한 전환을 가리킨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은 기존 관세·무역·에너지 등 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예고한다는 측면에서 ‘트럼프 피벗’이라 부른다.
새해가 밝았지만 한국 경제 전망은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 ‘관세 대통령’을 자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 임기를 시작하고, 중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력과 함께 기술력까지 무장해 한국 기업들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버팀목이던 수출은 정점을 찍고 하락하는 ‘피크 아웃(Peak out)’이란 평가가 나올 정도로 불안하다. 이미 오랜 기간 부진의 터널에 갇힌 내수는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의 여파로 더 움츠러들었다. 금융시장에선 원화 가치가 급락하고, 주식시장은 ‘백약이 무효’하다고 할 정도로 악재에만 반응한다. 악조건 속에 국정 공백까지 더해지며 경제외교도 중단됐다.
기업들은 고환율과 정치·경제 환경 변화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기댈 곳 없는 한국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1% 후반대가 아니라 초·중반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
트럼프 정부 2기를 가장 두렵게 지켜보는 곳은 수출 기업들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임기 시작과 동시에 ‘관세 폭탄’을 예고하면서다. 미국으로 수출하는 품목의 관세율이 높아지면 미국 시장 내에서 한국 제품들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1기 때는 당초 공언과 달리 실제로 적용된 관세율이 낮았고, 영향이 나타나는 데까지 시간도 걸렸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트럼프 1기 때보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미 무역 흑자액은 2022년 280억달러에서 2023년 444억달러, 지난해 557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연이어 기록했다. 트럼프 당선인 입장에서 보면 한국은 분명 ‘조치’를 취해야 할 대상인 셈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속한 공화당이 미국 상·하원을 모두 차지하고 있어 공약 달성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기 부진과 가격·기술 추격을 고려하면 중국으로의 수출 전망도 부정적이다. 기업들은 미국 관세 정책과 함께 중국의 경기 둔화도 올해 수출 위협 요인으로 보고 있다. 중국 시장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도체와 중간재 수출 업체들이 타격을 입는다.
중국 업체들은 기술 난도가 낮은 범용 메모리 제품을 싸게 공급하면서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고, 기술력 있는 분야에서도 위협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을 높여온 중국은 반도체 위탁생산인 파운드리 시장에도 진입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자료를 보면, SMIC 등 중국의 3개 파운드리 회사 점유율은 지난해 2분기 8.7%에서 3분기 9.1%로 상승했지만 삼성전자와 대만 기업 등은 점유율이 하락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한국은행은 올해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1.5%로 하향 조정했다. 당초 전망치(2.9%)와 비교하면 반 토막 수준이다. 한은은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에 속도를 내고 미·중 무역 갈등이 격화하면 수출이 더 꺾일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로 1.9%를 제시했는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1.7%까지 밀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한은이 이 전망치를 내놓은 시점은 계엄 사태가 일어나기 전이다.
외부의 파고가 크더라도 내부가 단단하면 버틸 만하다. 문제는 수출보다 경고등이 먼저 켜진 곳이 내수라는 데 있다.
마트나 슈퍼마켓, 소매점 등의 매월 판매액을 조사해 소비자들의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액 지수는 계속 낮아지고 있다. 소매판매액 지수(2020년=100, 계절조정)는 2021년 4분기 107.3을 기록한 이후 쭉 떨어져 지난해 3분기 101.3까지 내려왔다. 사람들이 밖에서 돈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연말은 계절적으로 소비가 늘어나는 시기이지만 계엄 사태 여파로 지난해에는 연말 특수도 사라졌다.
내수를 구성하는 건설투자도 건설경기 부진으로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고, 기계·설비 구매지표인 설비투자도 지난해 말 감소세를 보였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보수적으로 잡아 새해 투자가 확대될 여지도 크지 않다.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의 고통은 더 크다. 폐업을 신고하는 자영업자 숫자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23년 국세청에 폐업 신고한 자영업자는 98만6476명으로 2006년 통계 시작 이래 역대 최대 규모였는데, 지난해는 100만명을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은 한 달 소득이 100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생명보험협회에 따르면 생명보험사의 지난해 3분기 해약환급금(39조3648억원)은 40조원에 육박한다. 중도 해지를 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인 보험까지 해약할 만큼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는 뜻이다.
가장 뼈아픈 건 대내외 환경 변화에 대응할 리더십이 없다는 점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당장 미국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 행정부의 교체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통상 정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하려고 할지 의문이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 통상 정책 변화에 대응할 ‘골든타임’을 놓칠 우려가 그만큼 크다.
정치 불안이 길어질 경우 투자심리도 더 흔들릴 수 있다. 계엄과 탄핵 이후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한국의 대외신인도를 낮추진 않았지만 외국인의 투자심리는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읽을 수 있다. 환율은 1472.5원(12월30일 주간종가)까지 올라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투자자들이 지금은 관망 중이지만 정치 불안이 길어지면 한국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장·단기 대응이 모두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대외 부분이 큰 한국으로선 트럼프 집권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인데 이를 빨리 해결할 세력이 없다는 점에서 성장률이 1% 중반대로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불안으로 촉발되는 경기 위축은 막아야 한다”며 재정의 역할을 주문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수출 타격이 생각보다 크면 성장률이 1% 초·중반대까지 떨어질 수 있고, 민간소비는 외환위기나 카드위기 때보다 더 긴 침체를 맞을 것”이라며 “재정으로 시간을 벌되, 부동산에 돈이 쏠려 있는 내수 침체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노력이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 보면 2017년을 정점으로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기술 개발을 하고, 인공지능(AI) 첨단 산업과 에너지, 스마트팜 등 큰 틀에서 산업을 전체적으로 바꿀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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