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인 인상적인 다리 ‘콰이강의 다리’. 최갑수 여행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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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20년 넘는 경력의 여행작가 최갑수가 그동안 자신의 여행 노트에 꽁꽁 숨겨둔 여행지를 소개합니다. 유명하지 않아 비(B)급 같지만, 에이(A)급보다 더 근사한 여행지라고 작가는 자신합니다.
지난해 9월 한겨레에 경북 안동·영천 여행 이야기를 쓰면서 ‘비급 구루메’에 관해 잠깐 언급한 적이 있다. “유명하거나 제대로 된 요리(에이급 구루메)와는 달리 가격이나 소재가 흔하고 저렴한 것들로 만들어지는 음식”을 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급 구루메’가 있다면 ‘비급 여행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도산온천과 송강미술관(안동), 만취당(의성) 등을 소개했다.
여행작가로 20년 넘게 일하며 느낀 건 ‘에이급 여행지나 비급 여행지나 여행자 입장에선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둘 사이엔 교통편 차이 정도가 있으려나. 케이티엑스(KTX)와 비둘기호 정도의 차이지만, 어쨌든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점에선 같다. 케이티엑스가 속도나 안락함 등에서 나은 점이 있는 반면, 여행자 입장에선 비둘기호를 타는 게 나름의 낭만과 운치를 즐길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여태껏 경험한 바로는 시간이 흘러 여행을 재구성하는 것은 동행인과의 추억, 우리가 만났던 풍경, 그 풍경 앞에서 느꼈던 감정 같은 것이다.
붉은색인 인상적인 다리 ‘콰이강의 다리’. 최갑수 여행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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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볼 만큼 가본 나는 ‘유명한 곳이 반드시 좋은 곳은 아니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들끓는 인파와 바가지요금에 시달리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젠 ‘여행지 백배 즐기기’ 시리즈 책을 들고 다니던 시대는 지나갔다. ‘모든 것을 다 보겠다’며 결기 어린 자세로 다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오히려 ‘적당히 즐기다 오면 되지’ 하는 느긋한 자세가 더 각광받는 시대다. 여행의 정의는 ‘새로운 것을 보고 배워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함양시킬 기회’에서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떨어진, 조금은 비일상적인 공간과 시간 속으로 떠나 자신만의 방식으로 즐기다 오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다.
설명이 다소 장황했지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유명한 곳이 다 좋지만은 않고, 여행은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즐기면 된다’ 정도가 아닐까. 그래서 조금 덜 알려졌지만(B급), 내게는 정말 특별했던(비급·祕笈, 소중히 보존되는 책) 여행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얼마 전 마산에 다녀왔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나는 대학을 마산에서 다녔다. 30년 전이다. 그땐 창원이 아닌 마산이었다. 마산이 ‘시’(市)였으니까. 창원도 시였고, 진해도 시였다. 지금 마산과 진해는 ‘구’가 됐고, 창원은 ‘특례시’가 됐다.
대학 시절 산복도로에 있는 집 방 한칸을 빌려 자취를 했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에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마당에서는 마산 앞바다가 보였다. 가난하던 시절이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친구들과 나는 삼겹살조차 사 먹을 돈이 없어 어시장에서 가자미회무침과 전어회를 놓고 소주를 마셨다. 가끔 선배들이 부를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고향에서 ‘장학금’이 왔을 때다. 그럴 때면 우리는 택시에 여섯명씩 구겨 타고 저도로 가 광어회를 먹었다.
‘콰이강의 다리’에서 바라본 저도 앞바다. 최갑수 여행작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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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도에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붉은 철제 다리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직접 잡은 물고기로 회를 떠서 파는 작은 횟집이 여럿 있었다. 우리는 방을 잡고 회를 먹으며 시와 소설을 이야기했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와 파도 소리가 문턱을 넘어 밀려오곤 했다.
붉은 철제 다리를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렀다. 왜 하필 ‘콰이강의 다리’였을까. 내 눈엔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 나오는 다리와 닮은 점은 철골 구조물이라는 점 외에는 별로 없고 강이 아니라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지만, 어쨌든 그때는 이국적인 모습 때문에 그렇게 불렀지 않나 싶다. ‘다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 제목이 ‘콰이강의 다리’니까 말이다.
정식 이름은 ‘저도연륙교’다. 구산면 구복리와 저도를 연결하는 다리는 차량을 통행시키기 위해 1987년 만들어졌다. 길이가 170m, 너비가 3m다. 2004년 그 옆에 새로 다리를 놓으면서 사용하지 않다가 2017년 오래된 다리의 바닥을 일부 걷어내고 투명 강화유리를 깔아 ‘저도 콰이강의 다리 스카이워크’로 만들었다.
다리 양쪽으로는 커다란 프랜차이즈 카페가 자리하고 있어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넓은 주차장도 있고 요즘 유행인 사랑의 자물쇠를 다는 곳도 있다.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으니 청춘의 추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젠 다 잊히고, 어느 봄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수동 타자기를 꾹꾹 누르며 시를 쓰던 장면만 희미하게 남아 있다. 시가 써지지 않을 때면 바라보던 마산 앞바다, 알 수 없던 미래처럼 언제나 뿌연 해무에 휩싸여 있던 마산 앞바다가 떠오른다.
비급 음식
창동분식의 냄비우동과 박고지김밥. 최갑수 여행작가 제공 |
마산의 번화가는 창동이다. 거기에 창동분식이 있다. 45년 업력의 오래된 분식집이다. 냄비우동과 ‘박고지김밥’으로 유명하다. 박고지를 넣어 만든 김밥을 이 집만의 비법으로 만든 겨자소스에 찍어 먹는다. 보기엔 평범한 김밥이지만 겨자소스에 찍는 순간 비급(祕笈)을 발휘한다.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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