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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6 (월)

이슈 전두환과 노태우

고 정아은 작가 “12·3 계엄, 처단받지 않은 전두환 쿠데타의 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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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파헤친 작가가 본 윤석열의 비상계엄

※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본 많은 이들이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를 떠올렸습니다. ‘전두환’과 ‘전두환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을 분석한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2023년에 출간됐지만, 지금도 한국사회에 숙제를 던집니다. 주간경향은 지난해 12월 17일 이 책의 저자인 정아은 작가를 만났습니다. 정 작가는 인터뷰를 마친 그날 저녁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정 작가의 마지막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경향신문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쓴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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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을 우상화하는 것은 가벼운 후과라고 봤어요. 그가 퇴임 후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냈으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했을까요? 윤 대통령의 경우엔 제대로 사법적 단죄가 이뤄져야 하죠.”


[주간경향]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이 일으킨 ‘12·3 비상계엄 사태’는 ‘전두환의 그림자’를 현현하게 했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벌인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그리고 시민에 총을 겨눈 군인의 모습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윤 대통령의 계엄 모의 과정과 계엄 포고령, 군병력 투입 이유·과정 등을 볼 때, 그가 전씨의 쿠데타를 모방 혹은 답습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정아은 작가가 쓴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사이드웨이, 2023. 5)은 문헌 자료와 관련 인물 인터뷰 등을 통해 12·12 쿠데타의 실행 과정과 그 이후 전씨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과정, 국정운영 방식, 퇴임 후 여생을 어떻게 보냈는지 등을 파헤친다. 이를 통해 ‘전두환씨가 왜 군사반란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는지’란 질문에 답을 찾는다. 정 작가는 우리 사회가 그를 단죄하지 않아서 그의 파편이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다고 본다.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정 작가는 12·3 비상계엄 사태를 “처단받지 않은 쿠데타의 후과”라고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단죄는 물론 ‘내란’의 재현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정치적 담론을 만들고 이를 학교 등에서 교육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2·3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너무 비현실적이라 대부분 사람이 현실이라고 체감하기까지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믿기지 않았지만 ‘윤석열’이라는 캐릭터(‘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를 생각하면 ‘진짜이겠다’ 생각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25년 동안 검찰이라는 최강의 권력 집단에서 일했습니다. 검찰의 힘은 ‘수사’가 아니라 오히려 ‘수사하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보는데 검찰은 내부의 범죄를 향해서는 관대합니다. 모든 검사가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기소 권력을 휘둘러온 검사의 법의식은 시민들의 법의식과 굉장한 괴리가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누군가를 단죄하는 일로 명성을 쌓았지만, 자신과 주변인에게는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불투명한 검사의 세계에서 투명한 대통령의 세계로 넘어왔는데, 그걸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은 어떤 정치적 낭떠러지 상황에 내몰리자, 저는 ‘명태균씨의 핵심 증거폰’이라고 보는데, 자기가 휘두를 수 있는 극단적인 조치를 한 것이죠.”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에서 역사적 사실로서 12·12 쿠데타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분석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계엄을 오래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일단 국내외 환경을 보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쿠데타였다고 봅니다. 먼저 국제 정서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북·미 상황이 완전히 달라요. 1979년은 한국전쟁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고 북한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지금보다 나았어요. 북한이 정말 쳐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또 미국은 지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는 걸 바라지 않을 거예요. 비상계엄을 하려면 미국에 사전 통보를 하게 마련인데, 그런 절차도 없었어요. 지금 미국이 상당히 화가 난 상황인 걸로 보입니다. 국내 사회·문화적 환경도 많이 바뀌었죠. 1979년에는 유선전화 보급률이 9.2%밖에 안 됐어요. 1980년 5월에는 군부가 언론 통제부터 나서면서 광주가 고립되고 많은 피를 흘리는 일도 벌어졌죠. 지금은 1인 1미디어 시대예요. 이런 투명한 사회에서 쿠데타는 성공할 수가 없어요. 군인 출신인 전씨가 군의 생리를 알았다면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자기 명령에 대해 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 작가는 “결국 실패했겠지만 다만 우려했던 건 우발적인 인명 피해 상황이었다”며 “현장에 투입된 군인들의 세련된 감각과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저력으로써 계엄을 막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1979년과 달리 이번엔 계엄 선포 이후 시민들이 그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곧바로 국회로 모여서 군의 진입을 막아섰습니다.

“계엄을 막은 것도,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한 것도 시민들의 힘이죠. 비상계엄으로 국가 경제적 손실이 막대하고 대외 이미지가 망가져 버렸죠. 미국 CNN 방송에서 군인이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는 장면이 송출될 때, 시민들이 이룬 경제·사회·문화적 성과들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는 것에 화가 났어요. 그런데 최근에 CNN에서 ‘탄핵봉’(응원봉)을 들고 시민들이 집회를 여는 영상이 나와요. 거기에 있었던 시민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희망이 있는 거죠.”

-전씨는 12·12 쿠데타가 나라를 위한 일,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선 ‘용공 세력’을 언급하며 자기 행위에 대한 합리화를 합니다. 윤 대통령이 계엄의 명분으로 ‘반국가 세력 척결’, ‘야당의 폭주에 대한 경고’, ‘부정선거 의혹’ 등을 이유로 대는 모습과 겹칩니다.

“윤 대통령의 담화문 어디에서도 합법적인 항목은 없어요. 혹여 부정선거가 의심되더라도 다른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야지요. 그가 얼마나 법에 대한 의식이 없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시이죠. 제가 전씨의 쿠데타 관련 책을 쓴 걸 아는 지인들은 전씨와 윤 대통령이 똑같지 않으냐는 질문을 종종 합니다. 내면 깊게 들어가 사유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믿고 싶지 않은 건 안 믿고 끝까지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죠.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포할 때보다 그 이후 담화 때 혈색이 더 나아요. ‘희망 회로’에 올라 타 버린 거예요. 책에서는 전씨의 이 같은 특징을 ‘특별한 가벼움’이라고 했는데, 윤 대통령도 그 부분이 비슷하죠.”

-책에서는 전씨와 그 이후 대통령들의 기질, 성격, 국정운영 방식, 정치철학, 국내외 상황 등을 비교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전씨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는 점에서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굉장히 컸어요. 또 군인 출신이라서 자기가 모른다고 판단한 경제와 법 등의 영역에서는 인재를 등용했어요. 반대로 윤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법조인 출신이라서 그런 부분을 조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야당 대표를 한 번도 안 만난다든지 미국을 신경 쓰지 않는다든지 그런 걸 보면 ‘내가 말하는 건 법이야’의 태도로서, 자신은 뭘 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이전 대통령들과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차이는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들은 대개 사적 이익을 우선하긴 해도 어느 정도는 공적 이익에 관심을 둡니다. 윤 대통령은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사적 이익만을 추구한 캐릭터였다고 봐요. 그래서 아무 거짓말이나, 아무 일이나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경향신문

정아은 작가가 지난해 12월 1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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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 윤은 내면 깊게 들어가 사유하지 않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믿고 싶지 않은 건 안 믿고 끝까지 ‘정신승리’를 하는 것이죠.”


-책에서는 12·12 쿠데타가 가능했던 건 당시 최규하 대통령, 노재현 국방부 장관 등이 자신의 직무에 합당한 일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동의 선(線)’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와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나의 이익 또는 가까운 사람의 이익만 보죠. 그런데 더 발전한 사회라면 그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모든 사람의 이익에 맞는다고 설정된 규약대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이죠. 2020년 미국에서 흑인 인권 시위가 한창일 때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폭동’ 진압을 위해 연방군 동원을 검토하겠다고 했을 때,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했습니다. 나의 임명권자에 반기를 들어도 공동체 대다수가 나를 지지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회가 공동의 선이 있는 사회죠. 한국사회가 그런 선을 지키는 사회였다면,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하거나 대통령이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애초에 항명했어야 맞죠.”

-12·3 비상계엄 사태의 단죄는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요.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은 전씨가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 우리가 왜 그를 단죄하지 못했는가 질문에서 시작했어요. 그를 우상화하는 것은 가벼운 후과라고 봤어요. 그가 퇴임 후 남은 생을 감옥에서 보냈으면 윤 대통령이 계엄을 했을까요? 그의 유령이, 잔상이 남은 거예요. 그의 후과가 가장 세게 나타난 게 이번 계엄이라고 봐요. 윤 대통령의 경우엔 제대로 사법적 단죄가 이뤄져야 하죠. 그후에 흐지부지 사면하면서 일종의 ‘후렴구’ 같은 게 그대로 울려 퍼지는 게 제일 안 좋죠. 정치적 반대파들을 잡아들이고 복수하고 그다음 또 복수하면, 코너에 몰린 누군가 이상한 일을 또 벌일지도 모르니 그런 상황도 안 좋죠.”

-그다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번에 깨달은 건 ‘폭력’이라는 것이 굉장히 가까이에 있구나라는 점이었어요. 폭력이 항상 도사리고 있고, 이 폭력의 유혹을 우리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누르고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윤 대통령이 자기 마음대로 하려다가 안 되니까, 폭력으로 가버린 거잖아요. 어떤 식으로 법을 만들어 폭력의 유혹을 막아낼지 토론해 나가야 하고, 전씨와 윤 대통령의 사례를 엮어서도 담론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어요. 현대사 교육에서도 많이 다뤄서 토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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