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펜실베이니아 유세를 마친 뒤 ‘마가’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유세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AP=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해 미국 하원이 중국 바이오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발의했던 ‘생물보안법’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며 반사이익을 기대하던 K바이오 업계에 실망감이 감돌고 있다. 세계 최대 바이오 시장인 미국에서 퇴출 위기에 놓였던 중국 바이오 기업은 새해 들어 미국 공장 건설을 재개하는 등 수주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중국 기업의 빈자리를 노리던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중장기 기회를 노리고 있다.
━
불발된 美생물보안법
지난해 발의됐던 생물보안법은 미국 연방기관·기업과 중국 바이오 기업 간 거래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시바이오로직스, 우시앱텍, BGI 등 중국의 대표적인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이 규제 대상 기업으로 명시돼 있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지지로 입법 가능성이 90% 이상인 것으로 점쳐졌던 해당 법안은 민주당의 짐 맥거번 하원의원, 공화당 랜드 폴 상원의원 등의 반대로 2025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 2025)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맥거번 의원은 “공식 조사나 절차 없이 특정 회사를 규제 대상 기업으로 지정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이름을 바꾸고 재편입해 제재를 피할 수 있는 상황도 가능하다”고 발언했다.
━
한숨 돌린 中바이오
생물보안법 통과 불발은 중국 바이오기업들이 법안 무력화에 성공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생물보안법상 규제 대상이던 우시바이오로직스·앱텍의 미국 법인이 지난해 2분기를 기점으로 로비 활동을 눈에 띄게 강화했기 때문이다. 한국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우시바이오로직스·앱텍이 최근 1년간 지출한 로비 금액은 약 125만 달러(약 18억원)로 추산된다.
올해 다시 입법 논의가 재개돼도 규제 대상 기업 지정과 해제 절차 등 논란이 됐던 조항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법안을 반대했던 랜드 폴 의원이 상원 국토안보위원장 자리에 오르면서 입법이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CDMO 기업과의 거래가 중단될 경우 의약품 생산 비용이 증가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입법 방어에 성공한 이들 중국 기업은 중단했던 생산설비 건설을 재개했다. 우시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20년부터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3억 달러(약 4350억원) 규모의 바이오 의약품 공장을 짓고 있었다. 이 회사는 미국 내에서 생물보안법에 대한 지지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작업을 중단했다가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진 지난달 다시 공사를 재개했다.
━
셈법 복잡해진 K바이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이 17일 열린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셀트리온그룹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중국 퇴출에 따른 반사이익을 기대하던 K바이오 기업의 아쉬움은 커지고 있다. 글로벌 상위권 CDMO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창립 이래 최대 규모 계약을 따내는 등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생물보안법 통과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글로벌 제약사들이 중국 대신 한국을 협력사로 선택한 영향이 크다.
CDMO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국내 기업도 많았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CDMO 전문기업인 셀트리온바이오솔루션스를 자회사로 설립하고 내년 상반기 중 10만리터 규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온라인 간담회에서 “내년부터 위탁연구(CRO), 위탁개발(CDO) 영업으로 2027년 1000억원, 2030년 5000억원의 매출을, 위탁생산(CMO)으로 2030년 1조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SK팜테코와 SK바이오사이언스를 중심으로 CDMO 사업에 본격 나서고 있다. 이들 회사는 미국 세포유전자치료제 CDMO 기업인 CBM과 독일 CDMO 기업 IDT 바이오로지카를 각각 인수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약 4조6000억원을 투자해 인천 송도에 3개 생산 공장과 부속 건물 등이 들어설 바이오 캠퍼스를 짓고 있다. 공장이 완공되면 총 36만리터에 달하는 생산 역량을 갖춘다. 2022년 인수한 미국 생산공장은 항체·약물 접합체(ADC) 전문 위탁 생산 서비스 센터로 탈바꿈한 뒤, 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
“바이오 공급망 재편 불가피”
생물보안법 통과 불발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업은 글로벌 바이오시장에서 중국에 대한 견제와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미·중 갈등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 바이오 기업의 활동영역이 지금보다 더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로 인해 전 세계 의약품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상황에서 연구·개발과 허가, 생산 전문기업을 필요로 하는 회사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한국바이오협회가 추산한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CDMO 매출은 2029년 438억5000만달러(약 60조575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CDMO 사업의 경우 신약 개발과 달리 시간과 비용에 대한 투자 부담이 적고 마진율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며 “중국 기업의 빈자리를 노리는 유럽,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국내 기업도 지금부터 차근차근 경쟁력을 쌓아야 하는 시기”라고 설명했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