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1.07 (화)

중대형 지진 앞에서 가장 무서운 건 ‘경험 부족’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2023년에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도입부에서는 대지진으로 서울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는 모습이 묘사된다. 한순간에 도시가 파괴되는 모습은 평소 중대형 지진을 탐구하는 필자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다.

미소지진과 달리 도심지 중대형 지진은 순식간에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 땅의 흔들림이 대형 복합 재해로 이어지는 문제 때문이다. 지표상 건물 등 시설물이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다. 퇴적물로 덮여 비교적 편평한 지형에 놓인 도심지의 경우, 산악지역에 비해 지반이 연약해 지진동이 증폭되고 피해가 커질 가능성이 크다.

중대형 지진은 진동뿐만 아니라 땅이 갈라지는 지표 파열 현상을 동반한다. 지표 파열은 복합 재해 측면에서 지진동에 비해 훨씬 더 큰 피해를 만든다. 도로, 지하철, 수도관, 전기선, 통신선 등 도시 생활을 유지해주는 ‘라이프 라인’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지진 발생 시 화재 등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는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다.

중대형 지진에 대비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단언컨대 지진을 예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진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규모, 위치, 시간이라는 3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현대 과학기술로는 규모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그 신뢰도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시간적인 측면에서 지진의 발생 일시를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이점 때문에 지진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다. 미래 지진의 일시를 예측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특정 단층이 보이는 중대형 지진의 재발 주기가 짧아도 수십~수백년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도심지 중대형 지진은 재발 주기가 수천~수만 년에 달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지각판의 움직임, 즉 ‘지구조적’ 힘이 단층에 더디게 축적돼 지진 재발 주기가 매우 긴 편이다. 중대형 지진의 빈도가 낮고, 그 결과 현대에 들어 아직 중대형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관측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2016년 경주지진은 다행스럽게도 인명피해를 동반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대형지진의 빈도가 낮으면 재해로부터 안전한 것일까. 만에 하나 중대형 지진이 났을 때, 이에 대한 무경험이나 경험 부족은 관련 피해를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전 세계 통계를 보면 지진이 잦은 ‘판 경계부’에 비해 지진이 드문 ‘판 내부’ 지역에서 중대형 지진이 발생할 경우 사망자가 더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경우 중대형 지진이 비교적 흔하게 발생하지만 대형 복합 재해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지진재해 경험을 통해 실효성 높은 대비책을 강구하고 지진재해 예방 및 대비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곳은 역시 지진 다발 지역인 대만이다. 1999년 대만을 강타한 ‘치치 지진’으로 한 초등학교 건물이 파괴되고 운동장 트랙에 계단 형태의 지표 파열이 발생했다. 그 뒤 이곳은 지진박물관으로 개조돼 활용되고 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보존했는데, 필자가 최근 방문했을 때 현지 유치원생들이 이곳을 견학하며 지진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던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

지진은 발생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운 지질 현상으로 평소에는 관심이나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러다가 실제로 지진과 관련 재해가 발생해야 사회적 이슈가 된다. 필자는 지진에 대한 지속적인 간접 경험을 통해 대형 복합 재해를 대비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지진동 체험, 지진 대피훈련 등 간접 경험이 늘어나는 점은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앞으로 더 체계적이고 실효성 높은 지진 경험 기회를 늘릴 필요가 있다.

최진혁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질재해연구본부장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