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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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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줄’ 정체는 방화문…분당 복합 상가 화재의 ‘기적’ [오상도의 경기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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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마다 방화문 닫혀 실내 유입 막아…인명 피해 적었던 요인

중상·사망자 없이 310명 구조·대피…신속한 경보·대피·진화

합동 감식에선 “1층 김밥집 튀김기 발화”…배기덕트가 통로?

복구까지 최소 한 달, 입주 상인들은 ‘한숨’…“날벼락에 막막”

“숙박업소 3곳 중 1곳은 방화·소방시설 불량입니다.”

지난달 31일 소방청은 숙박업소의 층별 방화문이나 객실 출입문 자동개폐장치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화재안전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세계일보

3일 오후 경기 성남시 야탑동 복합건축물 화재 현장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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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9개 시·도 소방본부가 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숙박업소 3325곳을 점검해 내놓은 집계입니다.

지난해 8월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부천시의 한 호텔 화재를 계기로 안전조사를 벌인 것으로 보입니다. 조사에선 일부 업소가 아예 방화시설을 폐쇄·훼손하거나 경보기 수신전원을 차단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같은 ‘안전불감증’은 연례행사처럼 대형 화재로 이어졌습니다.

◆ 방화문이 유독가스 막아 중상·사망자 ‘0’

이런 면에서 경기 성남시 분당구 복합상가(분당 BYC 빌딩) 화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이달 3일 화재는 다행히 중상·사망자 없이 마무리됐습니다. 이는 신속한 경보·대피·진화의 ‘삼박자’를 갖춘 덕분으로 파악됐습니다. 300명 넘는 상인과 이용객들은 화재경보에 따라 지하층과 옥상으로 차분히 대피했고 층마다 설치된 방화문이 유독가스의 실내 유입을 막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방 당국 역시 곳곳에 분산된 대피자들을 차례대로 구조하며 1시간 만에 화재를 진압했습니다.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불은 지난 3일 오후 4시37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에 있는 BYC 빌딩 1층의 김밥집 주방에서 시작됐습니다. 건물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시뻘건 화염으로 변해 삽시간에 큰불로 번졌고, 검은 연기는 8층짜리 건물을 집어삼킬 듯 매서운 기세로 외벽을 타고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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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복합 상가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관들이 인명 수색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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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행인들조차 메케한 연기에 코와 입을 막고 주변을 지나며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쩌냐”고 발을 구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재는 심각한 인명 피해 없이 단순 연기흡입자 등 경상자 30여명만 나온 채 진화됐습니다. 걱정과 우려도 눈 녹듯이 깨끗하게 사라졌습니다.

소방 당국이 공개한 내부 사진에선 검게 그을린 벽면이 잘 보이지 않는 등 연기가 많이 유입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불이 시작된 1층 바로 위인 2층 내부는 물론 3층, 4층 복도 벽면은 연기에 그을린 부분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5층과 6층 복도 역시 벽면이 그대로 유지돼 있습니다.

소방 관계자는 “화재 때 발생하는 유독가스는 소량만 흡입해도 의식을 잃을 수 있고 통로에 확산하면 시야 확보가 어려워 대피가 힘들다”며 “층마다 설치된 철제 방화문 대부분이 닫혀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화재 초기에 신속하게 경보가 울렸고 이를 인지한 시민들이 차분하게 대피한 것도 인명 피해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수영장 강사와 20여명의 초등학생은 “불이야” 소리에 비상계단을 이용해 지하 5층으로 대피했습니다. 건물 6층 사무실에 근무하던 직장인들도 경보기 작동과 동시에 비상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피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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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화재 현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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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옥상문도 개방돼 대피를 도왔습니다. 지상층에 있던 다른 시민들도 도착한 구조대원들의 안내에 따라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질서를 지켰다고 합니다.

소방 당국은 1100건 넘는 화재 신고가 몰리자 장비 84대와 인원 260여명을 동원해 기민하게 움직였습니다. 성남시도 안전문자 발송과 모포 지원 등으로 힘을 보탰습니다.

이번 화재에서 구조된 인원은 240여명이고 70여명은 스스로 대피했습니다. 구조자들은 옥상과 지상층, 지하층 등으로 분산돼 있었고, 앞서 70명은 걸어서 건물 바깥으로 나오는 등의 방법으로 탈출했습니다.

◆ “기적은 스스로 노력한 뒤 은총 구하는 것”

기적은 막연히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하고 준비한 뒤 신의 은총을 구한 결과라는 얘기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무안공항 참사 이후 잇따라 대형 참사가 벌어질 것이란 걱정에 발을 구르던 대다수 국민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돌렸습니다.

이달 4일 합동 감식에서 경찰과 소방 당국은 화재가 1층 김밥집 주방 튀김기에서 발화돼 인근 배기 덕트를 타고 확산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습니다. 불이 난 곳은 지하 5층~지상 8층 연면적 2만5000여㎡ 규모로 음식점, 병원, 수영장, 운동시설, 판매시설, 업무시설, 소매점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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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8층짜리 복합건물 1층 음식점에서 화재가 발생해 건물 벽면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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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 상인들은 “막막하다”며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음식점, 판매시설 등 70여개 점포는 전기가 끊기고 설비가 불에 타는 등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경기침체로 손님들의 발길이 뜸한 가운데 불까지 났기 때문입니다.

야탑역세권의 핵심 상권인 이곳에선 일부 상가의 월 임대료와 관리비는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상가 복구까지 최소 한 달이 걸리는 만큼 보험으로 보상할 수 없는 큰 피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사람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향후 복구 과정에선 지방자치단체가 힘을 보태고 소방 당국이 진일보한 안전대책을 내놓는 등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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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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