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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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 가수
2024년 12월은 참 힘들었다. 어깨 위 삶의 무게가 마치 물에 젖은 솜 같았다. 고단한 살림살이에 마음의 여유까지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무안 제주항공 참사 당시의 영상이 계속 나오니까 보통의 나날과 일상의 안녕이 대단한 일로 여겨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고 황망한 그날의 처참함!!! 식구가 며칠 집을 비웠다 돌아온다고 공항으로 마중 나간 식구들의 눈앞에 펼쳐졌을 처참한 광경과 충격을 생각하면 늪에 빠진 듯 계속 가라앉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기가 막힌 가운데 한해가 저물고 새해가 밝았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12월을 다른 세상의 달,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는 달, 큰 곰의 달, 무소유의 달, 얼음이 얇은 달, 큰 눈의 달, 추운 달, 침묵하는 달, 존경하는 달로 표현했다. (부족별로 표현이 다양했다.) 1월은 어떨까? 눈이 천막 안으로 휘몰아치는 달,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 연못에 물이 고이는 달, 눈이 쌓인 달, 늑대의 달, 늑대들이 울부짖는 달 등등이다. 원주민 수우족의 구전 기도문을 찾아 적어본다. “내 형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새해에는 부디 얼결에 타협하지 말고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힘과 똑바른 눈과 깨끗한 손을 지킬 수 있기를….
1970년대 명동을 기억했다. 모처럼 통금이 해제되는 날이면 명동은 그야말로 사람들 물결로 넘쳐났었다. 가수들은 일이 두배로 늘어서 30분씩 두번 하던 무대를 4번씩 하고 또 심야방송 라디오까지 출연하고 집에 오면 새벽이었다. 통금이 없던 날은 늘 식사도 못하고 노래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그런 멀미가 있냐고? 요샌 맥없이 뉴스 멀미도 난다!
며칠 전 24년 마지막 아쿠아 수업날 일찍 도착한 이들끼리 어쩌다 옛 이야기 잡담이 시작됐다.
“당뇨라서 보리밥 먹으라는데 죽어도 싫어. 보리밥 지겹도록 먹었어. 들기름도 절대 안 먹어. 왜냐고? 장판 위에다 들기름을 먹였잖아? 그 냄새가 싫어서 지금까지 들기름 안 써요. 어쩌다 쌀밥 먹는 날, 조금 준 밥 위에 간장을 냅다 부어버리면서 짜서 도저히 못 먹겠다면 엄마가 밥을 한술 더 얹어준다고…. 그렇게 해서 더 얻어먹었지. 그땐 다 못살았어. 김도 얼마나 비쌌게? 들기름 발라 연탄불에 구운 김은 얼마나 향긋하고 맛났는데? 아버지상에 겸상하는 막내가 앉아 반듯하고 네모로 자른 김을 먹었지, 우리 딸 다섯에게는 그냥 김을 낱장으로 한장씩만 줬어. 김 구탱이 조금 잘라 밥을 산같이 올려놓고 먹지.”
“우린 서울서 살았는데 김은 먹고 살았어” 하며 다른 이가 받았다.
“두레반상에 빙 둘러 앉아. 참!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도 많았어. 국민학교(초등학교) 졸업하면 끝이지, 진학은 무슨? 학교 안 보내고 일 시키고 동생 보라 하면 자기만 한 남동생 업느라 힘들어서 배가 짜개진다고도 했어.” (웬 귀남이 후남이 얘기가 이리도 많을까?) 아들 또 보려고 딸 다섯을 내리 낳으신 친정엄마 얘기가 이어진다. “죄 그저 아들아들 했지. 이제 세상은 달라질 거야. 요새 애들은 다르더라. 우리 때 같겠어? 울 아버진 아들 여섯 중 막내셨는데 명절 때 큰집으로 모이면 우리집 딸 다섯은 발도 못 들여놨어. 요즘 세상이야 하나나 둘이니까 제삿밥 얻어먹겠다고 아들 찾는 세상은 아니지.”
새해 예순아홉이라는데 자주 아프다는 이가 그런다. 아홉수 넘기기 힘들다는데 정말 그러냐고. 내가 답했다. “마흔아홉일 때 힘들다 푸념했더니 친구 어머니가 그러셨어. 헉헉 대고 마흔아홉 고개 넘으니 쉰이 되니까 쉬지근해. 쉰에는 나아진다. 염려 말아라. 정말 그랬거등? 예순다섯부터 예순아홉까지가 힘들었어. 깊은 잠 못 들고 새벽에 잠 깨면 말똥소똥 그래. 실컷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해. 새벽 2시거등? 눈 아파 책도 못 읽고 티브이 보자니 식구들 깰 것 같고 휴대폰도 피곤해. 그냥 눈 감고 누워 있지.”
아쿠아 수업은 비슷한 또래들이 모이니까 무얼 얘기해도 그래, 맞아, 하며 맞장구를 쳐주니 좋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무슨 뜻인지 알아먹는 또래들이 좋다. 답답한 체기가 느껴져 무얼 해 먹을까 궁리하던 중에 맛있는 포기김치에 돼지고기 쑹덩쑹덩 썰어 넣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달걀 부치고 구운 김을 곁들여 먹으니 왠지 비위가 가라앉으며 속이 편안해졌다.
엄마 가신 지 1주기가 되는 날 증손주까지 다 모여 할머니께 들러 인사하고 다 함께 점심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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