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지난해 12월14일 국회 앞에서 시민들이 탄핵 가결을 기뻐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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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 일본 호세이대 법학과 교수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령 선포에 맞선 한국 야당 정치인들과 시민들의 투쟁은 일본에도 큰 충격을 줬다. 계엄 선포가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지자 시민들이 야당 의원들과 국회의사당에 몰려가 계엄군의 의사당 진입을 막는 모습은 한국 시민사회의 저력을 보여줬다.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 ‘서울의 봄’을 마침 지난해 11월에 봤다. 영화의 가장 큰 교훈은, 위법하고 주도면밀하게 준비하지 않은 체제 전복 시도조차 초동 단계에 진압하지 못하면 폭력이 기정사실화된다는 것이다. 또 상명하복이 기본인 군 조직이 불법적인 반란군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도 영화는 보여줬다. 민주주의는 권력 투쟁을 ‘말’로 하는 데서 성립한다. 최근 얼굴을 맞댄 토론보다 온라인 논쟁이 정치에 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파괴 시도가 있을 때는 시민이라는 ‘물리적 존재’가 중요한 국면도 있다. 예를 들어, 국회의사당은 민주주의의 물리적 거점이다. 한국에서 국회의원들이 계엄령을 해제한 것도 본회의장 결의가 없었으면 효력을 지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계엄군을 국회에 파견했고, 이에 앞서 의원들은 본회의장에 진입하려 한 것이다. 일련의 사태에서 때로 몸을 던진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게 된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 전두환에 의한 쿠데타,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 커다란 정치적 사건들이 잇따랐다. 탄압에 굴하지 않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웃 나라 젊은이들에게 큰 존경심을 가졌다. 1980년대 말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시민 스스로가 민주주의를 쟁취한 일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이 이어지면서 한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정신이 체화됐다고 할 수 있다.
권위주의적 정치인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무너뜨리려 할 때 이에 맞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단순명료한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통해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책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는 문제와 매일 마주한다. 현재 일본도, 한국도 정부 지도자를 뒷받침하는 여당이 국회(일본의 경우 중의원) 소수 정당이다. 정부가 정책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지 않으면 정부와 국회가 통치 능력을 회복할 수 없다. 일본은 올해 7월 참의원(상원) 선거가 있는데, 이시바 시게루 정부의 낮은 지지도가 계속되면 다시 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로 국회 구성에 민의가 반영되는 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집권당이 안정적 다수당이 못 돼도, 국민의 선택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통치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선 소수 여당 상황이 되면서 의회가 토론을 통해 정치 회복을 하는 좋은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2012년 말 자민-공명당 연립 정부가 부활한 뒤 여당이 국회에서 늘 안정적 다수를 지켜왔다. 하지만 일본에선 다수결과 민주주의가 동일시되는 경향이 있다. 여당에서 합의되면, 정부 정책이 된 것과 다름없다. 국회에서 야당이 질문해도 정부가 답을 회피하거나, 심의 기간이 지나면 표결을 통해 법안이든 예산이든 통과시키는 일이 반복됐다. 국회 심의 과정에 ‘성의 있는 말’이 사라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총리의 권력 사유화와 공문서 조작 같은 심각한 비리도 있었다. 국회에서 야당이 추궁해도 다수파인 여당이 야당의 조사권 행사를 반대하면 의혹은 은폐된 채로 남았다. 소수 여당인 자민당은 자만심을 버려야 한다. 지난 연말 임시국회에서 여당은 소수 정당의 의견을 듣고 정책 조정을 했다. 어떤 의미에서 의회가 진정한 정책 논의의 무대가 된 것이다. 이달 예산과 주요 법안을 처리하는 정기국회에서 여당뿐 아니라 야당의 정책 능력과 책임감을 따져보게 될 것이다. 국민에게는 정치적 학습의 기회가 될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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