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검사의 배틀필드(battlefield·전장)는 법정”이라고 했다. 2020년 11월 검찰총장 시절이었다. 그는 “검찰 업무에서 재판이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수사도 재판의 준비과정”이란 말도 남겼다. 그것은 검찰이 조서를 ‘꾸민다’는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 던지겠단 선언이자,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해 모두가 바라보는 법정에서 피고인의 혐의를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하기 위해 보다 성실하게 수사하자는 다짐으로 해석됐다.

배민영 정치부 기자

그때 그 말들은 지금 윤 대통령 자신의 행동 탓에 빛바랜 금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사법 리스크를 자초한 그는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선 정작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도,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에도 불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생에 검찰청은커녕 동네 파출소도 한 번 갈 일이 없는 선량한 대다수의 일반 국민은 엄두도 못 낼 일을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 연일 거리낌 없이 해내고 있다. “대통령 임기 5년이 뭐가 대단하다고 너무 겁이 없다”고 거침없이 말했던 그 사람이 맞나 싶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행태에 그가 했던 ‘수사가 재판 준비과정’이란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고 ‘재판이 중요하다’는 말은 무의미하기 그지없게 됐다. 수사도 제대로 안 받는데 무슨 재판인가. 걸핏하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고선 정작 나라의 온갖 실권을 군대에 몰아주는 위험천만한 계엄을 선포한 것으로 그의 언행불일치는 정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내로남불’이란 표현도 많이 모자란 감이 있다. 비판을 위한 마땅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12·3 계엄 때 국회 본관에서 계엄군을 목격했을 때와 비슷한 당혹감이 다시 밀려와서 그런 것 같다.

윤 대통령은 현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선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저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의 선언으로 관저 앞 도로는 이제 제2의 광화문, 대한문, 서초동이 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배틀필드를 아스팔트 위로 정한 듯하다.

배민영 정치부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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