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오른쪽)이 지난해 11월 미국 텍사스 브라운스빌의 스페이스엑스 스타십 로켓의 여섯번째 시험비행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영국) 개혁당엔 새로운 대표가 필요하다. 패라지는 그만한 자질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최측근이자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이번엔 친분을 과시하던 영국 포퓰리즘 정당 영국개혁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를 향해 돌연 쓴소리를 했다. 새해 들어 세계 정치에 쏟아낸 훈수의 연장선상이다.
머스크는 5일(현지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갑작스런 입장 변화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이렇게 올렸다. 한 시간 뒤 패라지는 “흠, 이거 놀라운데! 일론은 굉장한 인물이지만 이 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고 엑스를 통해 화답했다. 패라지는 “토미 로빈슨이 개혁당에 맞지 않다는 내 입장은 변함이 없으며 난 결코 내 원칙을 굽힐 생각이 없다”고 덧붙였다. 머스크는 다시 “토미 로빈슨을 당장 석방하라”고 포스트를 올렸다.
둘의 포스트를 보면 머스크의 불만은 영국 극우 활동가 토미 로빈슨 석방을 주창하는 머스크에 패라지가 동조하지 않으면서 발화한 것으로 보인다. 본명이 스티븐 약슬리-레논인 로빈슨(42)은 폭행(2005), 모기지 사기(2014)로 수감된 바 있는 영국의 극우 활동가다. 이슬람 혐오 관련 사건을 둘러싼 법정 모독 혐의 등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지난 10월부터 복역 중이다. 패라지는 3일 지비뉴스에 “로빈슨이 정치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다음 총선 승리를 목표로 하는 정당이며 로빈슨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머스크가 2일 로빈슨을 옹호하는 글을 올린 뒤였다.
나이절 패라지 영국개혁당 대표가 지난해 11월 런던의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머스크와 패라지의 간극은 지난달만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지난달 패라지가 플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머스크를 만나 한 시간 남짓 개혁당에 대한 기부를 논한 뒤 패라지는 머스크를 “친구”라고 자랑했다. 패라지는 영국 언론에 머스크가 많게는 1억달러(1470억원)까지 기부할 수 있다고 했으나, 머스크는 이런 기부가 합법적인지 모르겠다고만 했다. 영국 선거법에 따르면 미국 시민인 머스크가 영국이 정당에 정치자금을 기부하려면 자신의 영국 사업체를 통해야 한다.
비비시 방송은 머스크가 패라지와 만남 이후 영국 정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며 특히 키어 스타머 총리에 대한 비판에 집중했다고 전했다. 머스크는 이날도 “스타머는 사임해야 한다. 국가적 수치”라고 올렸다. 머스크의 잇단 스타머 비판은 스타머 총리가 왕립검찰청 청장 시절 맨체스터 지역에서 벌어진 갱단 조직의 아동 성착취 사건을 제대로 기소하지 않았다는 데 맞춰져 있다. 그는 최근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영국 의회를 해산하고 영국 노동당 정부를 불신임하는 선거를 해야 한다는 글에 동의하기도 했다. 이는 영국 헌법상 불가능한 일이다. 5일 기준 24시간 동안 그가 엑스에 올리거나 재게시한 글 일흔여덟건 가운데 절반인 서른아홉건이 영국 정치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앤드류 그웬 영국 보건장관은 3일 영국라디오 엘비시(LBC)와 인터뷰에서 “일론 머스크는 미국 시민”이라면서 “대서양 건너편 문제들에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닐까”라고 비꼬았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넘치는 자금력과 엑스를 마이크로 삼아 트럼프를 추동하며 미 정치판을 지배한 머스크가 올해는 국제무대로 정치적 영향력을 넓히려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머스크는 다음 달 열릴 독일 총선을 앞두고 독일 국내 정치에 개입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에 대한 공개 지지를 거듭하는 한편 독일 지도자들을 향해서는 막말을 쏟아내며 독일사회를 들쑤셨다. 지난달 30일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을 “반민주 폭군”이라고 했고, 지난 11월에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무능한 바보”라고 놀렸다. 워싱턴에서 “그림자 대통령”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그가 다가올 유럽의 선거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한겨레는 함께 민주주의를 지키겠습니다 [한겨레후원]
▶▶실시간 뉴스, ‘한겨레 텔레그램 뉴스봇’과 함께!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