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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8 (수)

‘명태균 수사’가 진짜 불법계엄 방아쇠를 당겼을까[횡설수설/신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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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망상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건 지난해 3, 4월경부터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과 김용현 경호처장 등에게 시국 걱정을 하며 “비상대권 외엔 방법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그 후 5, 6, 8월에도 비상조치 운운하는 자리가 이어졌고, 9월 초 김 처장을 국방부 장관에 앉힌 것도 계엄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 이때만 해도 계엄은 아직 구상 단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9월은 안 그래도 휘청이던 윤 대통령에게 치명적 한 방이 더해진 달이다. 윤 대통령 부부가 명태균 씨를 통해 공천에 개입한 의혹이 처음 보도된 게 이때다. 혐의가 짙어질수록 윤 대통령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명 씨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다음 날 윤 대통령은 관저에서 비상대권을 모의했고, 윤 대통령의 김영선 공천 관련 통화 녹음이 공개된 지 열흘 만인 11월 9일에는 계엄 선포 시 동원 가능한 군 규모를 논의했다.

▷“내가 구속되면 정권이 한 달 안에 무너진다.” 명 씨는 지난해 11월 15일 검찰에 구속되면서 이런 으름장을 놨다. 윤 대통령 부부와 벌인 불법 행위를 낱낱이 폭로할 수 있다는 선언으로 해석됐다. 검찰의 김 전 장관 공소장을 보면 적어도 윤 대통령은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다. 명 씨의 구속 9일 만에 구체적인 계엄 준비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11월 24일 김 전 장관에게 명태균 의혹 등을 언급하며 “이게 나라냐. 비상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 전 장관은 그날부터 비상계엄 선포문, 포고령 초안 등을 준비했다. 명태균 의혹이 계엄 선포의 방아쇠가 됐다고 볼 만한 대목이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지난해 12월 3일 명 씨가 기소되고 불과 몇 시간 뒤 이뤄졌다. 전날 명 씨는 윤 대통령 부부와 2년 넘게 연락하며 써온 황금폰을 공개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 판도라 상자가 열리는 게 시간 문제가 된 이상 윤 대통령으로선 특단의 대책을 더는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명 씨가 검찰에 제출한 황금폰 3대에는 저장된 메시지만 15만 개가 넘고, 윤 대통령이 2022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이던 윤상현 의원에게 김영선 공천을 독촉하는 통화 녹음 등이 담겨 있었다.

▷한 달 안에 정권이 무너진다던 명 씨의 말은 결과적으로 현실이 됐다. 그의 구속 딱 한 달 만에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명 씨는 계엄 사태로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에게 “단단한 콘크리트는 질 좋은 시멘트(아첨꾼)만으론 안 되고 모난 자갈(쓴소리꾼)을 잘 섞어야 만들어진다. 그게 국정 운영”이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정치 브로커마저 아는 이 자명한 이치를 끝까지 외면해 온 윤 대통령은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금도 아첨꾼들을 방패 삼아 관저에 숨어 있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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