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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사임' 트뤼도의 추락…진보정치 아이콘서 트럼프의 놀림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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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연예인급 인기' 총리 취임…국민 피로감에 9년여만에 사임

'트럼프 관세' 대응과정서 동맹세력 잇따라 등돌리며 '예고된 퇴장'

연합뉴스

사임 계획 발표하는 트뤼도 총리
[오타와 AFP=연합뉴스]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쥐스탱 트뤼도(53) 캐나다 총리가 6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히면서 9년여 만에 '진보 정치의 아이콘'에서 역대 캐나다 총리 중 가장 인기 없는 인물로 정치 경력을 마무리 짓게 됐다.

한때 캐나다는 물론 외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키는 40대의 '훈남 스타 정치인'이었지만 고물가와 이민자 문제 등에서의 정책 실패 등으로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진 탓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이 의회에서 대선 승리를 최종적으로 공식 인증받는 날 사임 계획을 발표한 트뤼도 총리는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는 트럼프 당선인의 조롱까지 받아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트뤼도 총리를 '주지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 연예인급 인기 '스타 정치인'으로 등장…오바마와 브로맨스 과시

트뤼도 총리는 지난 2015년 총선에서 보수당을 누르고 10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 국내외에서 연예인급 인기를 거머쥔 스타 정치인이었다.

트뤼도는 캐나다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968∼1979년, 1980∼1984년까지 무려 17년 동안 총리를 지낸 캐나다 정치의 거목 피에르 트뤼도(1919∼2000년)의 장남이다.

부친의 후광을 엎고 사교적 성품과 진보적 가치를 앞세워 2013년 자유당 당수로 선출되는 이변을 일으켰으며, 2015년 11월 총리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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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오바마 미 전 대통령(2016년 )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총리 취임 당시 '캐나다의 오바마'로도 불렸던 트뤼도는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았고, 취임 직후 미국을 국빈 방문하며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장면을 연출하며 '브로맨스'(남성 간 우정)를 과시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지도자가 됐다는 공통점에 더해 진보적인 정책 기조, 다양성과 포용성을 중시하는 이념 성향 등 여러 면에서 닮은 점이 많았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트뤼도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우정을 이어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6년 처음 대선 승리를 거머쥐자 그와의 정치적 차별점을 부각하며 진보 성향 지도자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난 2019년 조디 윌슨-레이볼드 전 법무부 장관이 비리 수사를 받은 캐나다 최대 건설사 SNC-라발린을 선처하도록 자신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폭로하면서 정치적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가 이끄는 집권 자유당은 2019년 총선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SNC-라발린 스캔들 등 여파로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연정으로 국정을 운영해야만 했다.

이후 팬데믹 위기와 고물가 충격 등이 닥치면서 그의 인기와 명성은 하락세를 지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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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승리 후 어머니와 마주한 트뤼도 총리(2015년 10월)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 고물가 여파 가계 고통 …이민자 문제로 인기 하락 가중

트뤼도 총리의 인기 추락을 불러온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는 팬데믹 이후 나타난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가계의 고통이 커진 점이 꼽힌다.

또한 고물가 상황에서 탄소세 인상을 야당과 지방정부의 강력한 반대 속에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도 지지율을 낮추는 데 한몫했다.

나아가 트뤼도 행정부 기간 늘어난 이민자 유입이 주택 부족 등을 야기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국민의 피로도가 커졌고, 이는 보수 야당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2023년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한 시크교 사원 주차장에서 캐나다 국적의 시크교 분리주의 지도자가 괴한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일을 계기로 인도와 상대국 외교관을 맞추방하는 등 외교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 트럼프 폭탄관세 대응 속 동맹세력 잇따라 등돌리며 '사면초가'

고물가와 주택가격 상승 등에 따른 국민 불만으로 트뤼도 총리에 대한 지지도는 하락세를 보여왔고, 이에 따라 트뤼도 총리의 당 안팎에선 일찌감치 그를 향해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제기돼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1년 6개월간 여론조사에서 집권 자유당은 선거 시 야당인 보수당에 패배할 것으로 나타났다.

트뤼도 총리의 지지율은 약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보수당과의 지지율 차이는 20%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진 상태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핵심 지지 세력이었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이 재정 정책을 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충돌하며 지난달 16일 전격 사임한 이후 트뤼도 총리의 퇴진론은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가 예고한 25% 고율 관세 대응 문제 등을 두고 쥐스탱 트뤼도 총리와 충돌한 게 계기였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프리랜드 장관의 사퇴는 트뤼도 총리 취임 후 직면한 가장 큰 위기 중 하나"라며 "다음 총선에서 야당인 보수당에게 패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핵심 동맹을 잃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프리랜드 장관 사임 발표 나흘 뒤인 20일 집권 자유당과 정책 연합을 맺어왔던 진보 성향 신민주당(NDP)이 정부 불신임안 제출을 예고하고 나선 것은 트뤼도 총리에게 결정타가 됐다.

자유당이 의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야당이 불신임안을 지지한다면 트뤼도 총리는 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되며 캐나다는 조기 총선 실시가 불가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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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 기자회견하는 트뤼도 총리
[오타와 AFP=연합뉴스]


결국 크리스마스 및 새해 연휴가 끝난 6일 트뤼도 총리는 추운 겨울 날씨 속 관저 앞 야외에서 기자들 앞에 서며 "이제는 리셋할 시간"이라며 사임 계획을 발표했다.

캐나다의 정치평론가 브루스 앤더슨은 WSJ에 "지난 몇 년간 트뤼도는 효과적인 정치인이 아니었다"며 "마치 정치적 안테나를 잃어버린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선 승리를 공식 인증받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자신이 설립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 소셜에 올린 글에서 "캐나다의 많은 사람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좋아한다"라며 또다시 조롱성 발언을 했다.

그는 "미국은 캐나다가 버티기 위해 필요로 하는 막대한 무역적자와 보조금을 더는 감내할 수 없다"며 "트뤼도도 이를 알고 사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캐나다가 국경 문제와 무역수지 불균형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취임 첫날부터 모든 캐나다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미 폭스뉴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29일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을 찾은 트뤼도 총리와의 만찬에서 고율 관세 부과 시 캐나다 경제가 죽을 것이라고 호소하자 "미국의 51번째 주가 돼라"라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트루스 소셜 글에서 "캐나다가 미국과 합병하면 관세도 없고 세금도 내려갈 것이며 그들을 끊임없이 둘러싸는 러시아와 중국 배의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안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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