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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스타교수 떠나고 강의실은 낡아 … 대학 등록금 '인상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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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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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에서 연봉 35만달러(약 5억820만원)를 받던 7년 차 교수 A씨는 최근 귀국해 한국 교수들의 임금 수준을 듣고 깜짝 놀랐다. 국립대 교수들 초봉이 해외 유수 대학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 10년 이상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교수들의 임금도 계속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교수뿐 아니라 대학들도 답답한 마음은 마찬가지다. 교원들의 보수가 낮다 보니 능력 있는 교수들을 채용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는 공과대학 교수 채용이 어려워 상시 채용으로 전환했는데도 여전히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 대학 관계자는 "해외 대학은 물론이고 국내 일반 기업의 처우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계속되는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어렵다 보니 학생들은 해외 학술자료도 마음껏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서울 지역의 모 사립대는 최근 해외 저널 구독료가 대폭 인상되면서 구독 계정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대학 도서관 담당 교직원은 "도서관 연간 예산이 60억~70억원인데 최근 해외 저널 구독료가 크게 올랐다"면서 "첨단 산업 분야는 최신 논문을 보며 연구 동향을 익혀야 하는데 다양한 저널을 구독하지 못하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16년간 대학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국내 대학들의 경쟁력이 뒷걸음을 치고 있다. 대학들은 첨단 실험 실습 기자재 확충과 우수 교직원 채용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대학들은 매년 1월만 되면 등록금 인상 필요성을 역설하지만 실행에 옮기는 대학은 극소수다. 고등교육법에는 최근 3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등록금 인상을 허용하고 있지만, 교육부가 등록금 인하 및 동결을 대학 재정 지원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어 인상을 강행하는 대학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학 등록금 동결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8년 하반기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민 고통 분담 차원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는 대학들이 자발적으로 등록금을 동결했다. 2012년에는 반값등록금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장학금이 신설되면서 5% 내외의 일률적 등록금 인하가 있었다. 이후 2~3년 내에 등록금 동결 정책이 끝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16년째 등록금 동결 정책이 이어지면서 대학들이 재정난을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부총리가 한나라당 의원 시절이던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하라'고 제안한 뒤 2012년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돼 직접 이를 실행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 부총리가 결자해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처럼 대학 재정이 악화되면서 등록금 인상은 대학 총장들의 현안 1순위가 됐다. 7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90개 회원 대학 총장을 대상으로 대학 현안과 관련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사립대 총장들은 '대학 등록금 인상'을 대학 현안 1순위로 꼽았다. 사립대 총장 100명 중 98명은 대학 등록금 동결로 첨단 실험 실습 기자재 확충 및 개선이 어렵다고 호소했고, 100명 중 97명은 우수 교직원 채용과 충원이 힘든 상황이라고 답했다.

대학 등록금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매년 오른 점을 감안하면 지난 10년 새 실질등록금은 20% 넘게 하락한 것으로 추산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재작년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평균 실질등록금이 2011년 대비 각각 20.8%, 19.8% 인하된 수준이라고 밝혔다.

대학들의 재정이 한계치에 다다르면서 최근 대학들이 등록금을 속속 인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강대가 2025학년도 등록금을 4.85% 올리기로 한 데 이어 국민대도 등록금 4.97% 인상을 결정했다. 연세대, 경희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 서울 주요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논의하고 있다. 등록금은 교직원과 학생 등으로 구성된 각 대학 등록금심의위원회가 매년 1~2월에 결정한다. 사립대 총장 10명 중 5명은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답해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학교수는 "등록금 동결은 교수 임금 동결 문제를 떠나 우수 이공계 인재들이 한국에 들어오는 걸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면서 "대학 재정난 해소를 위해서는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립대에서도 등록금 인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거점국립대 총장들이 "올해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교육부에 사전 협의를 요청했다. 이와 관련해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8일 오후에 9개 거점국립대 총장들과 영상회의를 할 예정이다.

총장들은 등록금을 올리면 가장 먼저 재정을 투입할 분야로 '우수 교수 유치 및 직원 채용'을 꼽았다. 학생 복지 지원 시스템 및 시설 강화를 2순위로, 디지털 시대에 맞는 학사조직 및 교육과정 개편을 3순위로 꼽았다.

[권한울 기자 / 이용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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