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비판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펴낸 노한동 전 문체부 서기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의 저자 노한동 전 서기관이 3일 경향신문사 본사 여다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때처럼
공직자는 자칫하면 범죄에 연루
조직 안에서 말 꺼내기는 불가능
친정 위해 전하는 제 나름의 충언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체계를 자처하면서도 대다수의 관료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영리하게 움직이며, 정작 본질적인 일은 그만큼 치열하게 외면하는 기형적인 세계가 바로 공직사회다.”
노한동 전 문화체육관광부 서기관(38)은 최근 출간된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사이드웨이)에서 한국 관료사회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노 전 서기관은 2023년 서기관으로 승진한 직후 사직했다. 대학 재학 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최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그는 안정적인 공직자 생활을 그만둔 이유와 관련해 위로부터의 압력에 떠밀려 부당한 일을 해야 했다거나 괴팍한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렸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했다. 드라마에 나올 법한 극적인 사건은 없었다. 사직은 해를 거듭할수록 공직사회의 문제점들이 시야에 점점 더 선명하게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닥친 결과에 가깝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가랑비에 옷이 젖듯 그만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에서 쓴 에피소드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평범한 ‘범생이’의 눈으로 봐도 공직사회는 지극히 이상한 사회”였다. 공직자는 정권의 부침에 따라 자칫 범죄자가 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인사 블랙리스트 작성 사건이 대표적이다. 재학 중 행시에 합격해 블랙리스트가 실행되던 시기에 뒤늦은 군복무를 하고 있던 그는 위법행위에 연루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공무원과 나 사이에는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었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개개인의 영혼은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라 면피와 행운으로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그가 목격한 공직사회의 첫번째 민낯이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무언가 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 회식 자리 건배사로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이라고 외치지만 정부 부처 장관들의 현장 간담회는 “잘 짜인 극본”과 같다. 장차관 등의 현장 행보가 인사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실무자들은 아무런 계기가 없는데도 간담회를 “일년 내내” 만들어야 한다.
장관이 국어 사용을 중시하는 사람일 때는 ‘K’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보고서에 ‘K컬처’ 대신 ‘신한류’, ‘K팝’ 대신 ‘케이팝’이라고 쓰다가도 장관이 바뀐 뒤에는 ‘K챗GPT’처럼 정체불명의 신조어를 남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공직사회의 무기력을 해소하려면 공직사회에 만연한 ‘가짜 노동’을 걷어내야 한다고 본다. “작성할 땐 밤을 새우지만 정작 발표하고 나면 누구도 달성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매년의 업무 계획,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지만 심하면 몇 만 페이지에 달하는 부처별 예산 사업 설명 자료, 어차피 한 페이지로 정리하여 보고할 수십 페이지의 경제장관 회의 자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풀 버전, 요약 버전, 장관 버전, 차관 버전, 국장 버전으로 한없이 나눠서 작성하는 법안 자료” 같은 것들이다.
지난달 말 출간된 노 전 서기관의 책은 이미 2쇄에 들어갔다. 우리 공직사회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이 좀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 사무관급들은 지금 대부분 녹초가 된 것 같아요. 무기력함에 치를 떨면서 조직의 무능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제가 밖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우리 공동체와 ‘친정’인 공직사회에 대한 제 나름의 충정입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계엄, 시작과 끝은? 윤석열 ‘내란 사건’ 일지 완벽 정리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