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훈 변호사 |
20여년 전 대학 교정에서 한 선배에게 어느 은밀한 곳에서는 졸업도 하지 않은 80년대 학번 선배가 지금도 북한으로부터 송출되는 단파 라디오를 수신하는 시대착오적인 운동권으로 남아 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여전히 미국의 압제에 맞서 민족해방을 부르짖고 대한민국 정부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오로지 수령의 영도 아래 통일의 한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1996년 즈음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직후였으니 '단파 라디오' 운운하는 게 얼마나 웃기는 말로 들렸는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내가 입학한 대학교의 한가운데엔 바로 직전 해에 발생한 한총련 사태로 시커멓게 불탄 건물 역시 자리하고 그 기묘한 풍경과 함께 선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진 않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2013년 8월 국가정보원이 수년간 추적해 통합진보당 정치인과 주변 인사들이 지하혁명조직(RO)을 결성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수사결과를 대중에게 공개했다. 단파 라디오를 듣던 80년대 운동권들이 여전히 암약하고 있었던 걸까. 그들에게는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두 번이나 이룩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라는 실체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RO라는 기괴한 말을 들었을 때 느낀 충격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다만 이후 RO는 법원에 의해 내란죄의 주체로 인정받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3일 밤 나는 한국을 떠나 해외에 머물고 있었다. 해외여행에서 즐거운 술자리를 갖고 있던 중 소셜미디어부터 갑자기 메시지가 쏟아졌다. "대통령에 의해 계엄이 선포됐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스마트폰을 통해 먼저 도달했고 술자리에 있던 동료들이 아연실색해 그 진위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TV를 켜니 이미 CNN 등에서 한국의 상황을 속보로 전하는데 화면 아래 큼지막하게 표시된 빨간색 'Martial Law'가 초현실적으로 보였다.
10여년 전 RO로부터 느낀 감정이 기괴함이었다면 그날 밤 국회에 난입한 무장군인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두려움과 무서움, 공포 그 자체였다. 이 일이 도대체 2024년 수도 서울 한복판에서 가능한 일인가. 눈으로 보고도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 현실인식 아래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계엄령을 선포했을까. 최후까지 체제의 수호자가 돼 공화국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어떻게 스스로 헌법질서를 일거에 무너뜨리기 위해 폭동의 우두머리가 됐는가.
단파 라디오를 듣던,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80년대 운동권처럼 그 역시 용산 어느 골방에서 은밀하게,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유튜브 채널을 과몰입해서 봤기 때문일까. 그런 설명은 오히려 너무 문학적이고 낭만적이어서 대통령을 애처롭게 보이게끔 만든다. 체제의 정점에서 온갖 정보와 보고를 한꺼번에 섭렵할 수 있는 공화국 수반이 그깟 채널 몇 개에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인가, 합리적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좇아 과거 윤석열의 언행을 따라가 보면 섬뜩한 장면들이 발견된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반국가세력' 용어를 남발했고, 특히 계엄선포 석 달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반국가세력에 대한 노골적 반감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때 더 면밀하게 대통령의 인식방법이나 정신세계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던 것이다.
형법 제87조의 내란죄는 국가의 존립과 헌법질서, 즉 국가의 내부적 안전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범죄다. 2013년 내란사건의 통합진보당 세력은 헌법재판소에 의해 해산됐고 내란의 실행에도 나아가지 못한 '선동' 범죄로 이석기는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대통령 윤석열은 어떤 법적,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 볼 때도 그 책임이 작지는 않을 것이다.
양지훈 변호사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