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가 2015년 1월 6일 서울 서초경찰서로 압송되는 모습./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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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인 2015년 1월 8일. 아내와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딸을 살해한 혐의로 강모씨(당시 48세)가 구속됐다. 잘나가던 엘리트 가장은 하루아침에 가족들을 죽인 살인자가 됐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강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IT기업에서 임원급으로 승진하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촌'으로 불리는 서울 서초구에 아파트를 갖고 있었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웠던 그는 왜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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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대로' 걸어온 강씨…실직 후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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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까지 마친 강씨는 외국계 기업 재무팀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직장인 IT기업에서는 상무이사까지 지냈다. 2009년에는 강남구 대형 한의원으로 이직해 재무를 담당했다. 당시 연봉은 9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다 2012년 11월 한의원 원장이 바뀌면서 강씨는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는 곧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들어오는 일자리는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
강씨는 실직한 사실을 가족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그는 출근하는 척 집에서 나와 선후배들이 일하는 오피스텔을 전전했다. 취업 대신 주식 투자로 돈을 벌기로 한 강씨는 고시원을 얻어 주식 공부를 하기로 했고, 매일 아침 고시원으로 향했다가 퇴근 시간 무렵 귀가하는 생활을 1년간 반복했다.
생활비가 부족해지자 강씨는 자신 명의로 된 서초구 한 아파트를 담보로 5억원을 대출받아 매달 400만원씩 생활비로 썼다. 강씨 가족이 살던 아파트는 단지 내에서 가장 큰 평수(145.5㎡·약 45평)였다. 나머지 대출금 4억원은 주식에 투자했으나 실패해 2억7000만원을 잃었다.
강씨는 실직 상태에서도 씀씀이를 줄이지 않았으며 외제차도 그대로 몰고 다녔다. 아내와는 어떠한 논의도 하지 않았다. 성공 가도를 달려온 그는 오로지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만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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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실패에 자괴감…참극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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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3일 서울 서초동 한 아파트에서 강씨가 현장 검증을 한 가운데 사건 현장에 불이 켜져 있다./사진=뉴시스 |
통장 잔고가 줄어들고 재취업도 어려워 보이자 절망감에 빠진 강씨는 잘못된 생각에 빠졌다. 처음에는 극단적 선택을 결심했으나 남은 아내와 딸들이 불행해질 거라고 생각, 결국 가족들을 모두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했다.
범행 전날 밤 강씨는 미리 처방받은 수면제를 와인에 섞어 아내에게 건넸다. 그동안 가족들이 잠들기를 기다리며 유서를 작성했다. 유서에는 '미안해 여보. 미안해 딸들아. 천국으로 잘 가렴. 나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를게'라는 내용이 담겼다.
다른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는 '죽을죄를 지었다. 통장에 남은 돈은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의 치료비와 요양비로 써라'라고 적었다.
2015년 1월 6일 새벽 3시쯤, 강씨는 거실에서 자는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어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작은딸도 죽였다. 강씨는 큰딸도 살해하려고 방으로 갔으나 딸은 "배가 아프다"며 잠에서 깬 상태였다. 이에 강씨는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라고 속여 수면제를 먹였고, 잠든 큰딸까지 살해했다. 세 모녀를 살해하는 데 걸린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범행 직후 강씨는 승용차를 타고 도주하다 119에 전화해 "아내와 딸들을 죽였다. 우리 집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나도 죽으려고 한다"고 신고했다. 이후 충북 청주시 대청호에 뛰어들었으나 살아남았다.
출동한 경찰은 강씨 집에서 숨진 세 모녀와 강씨가 쓴 유서를 발견했다. 강씨는 다시 차를 몰고 경북 문경시로 향했다. 같은 날 오후 12시10분쯤 그는 별다른 저항 없이 경찰에 체포됐다. 손목에는 흉기로 자해한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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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무기징역'…"가족을 부속물로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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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가 2015년 1월 13일 서울 서초동 자택으로 현장검증을 위해 이동하는 모습./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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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에서 강씨는 범행을 시인하며 "죽여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는 "저 혼자 죽고 나머지 가족들이 살아남은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강씨는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숨지면 아내와 두 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질 것을 비관해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강씨 아내가 생활비로 받은 400만원을 아껴 2억원 이상 예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점과 강씨가 소유한 차량이 2대였던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강씨는 항소했다. 그는 재판부가 항소한 이유를 묻자 "죽기 전에 아내와 아이들이 안장된 곳에 가서 사죄하고, 아빠와 남편으로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도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내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피해자들 생각을 들었어야 했다"며 "스스로만의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들 생명을 빼앗아 갔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은 아내와 딸들을 인격체가 아닌 자신의 부속물로 여기고, 자신을 가족 구성원 중에 절대적 우위에 있는 존재로 생각한 것처럼 보인다"고 판시했다. 강씨가 대법원 항고를 포기하면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류원혜 기자 hoopooh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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