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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9 (목)

[투데이 窓]K콘텐츠가 아이 낳고 싶지 않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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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드라마 '더 글로리'가 부각해놓은 학교폭력의 모습은 부모의 계층, 혹은 계층과 비례했다. 오히려 부모의 배경이 일탈을 증폭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학교폭력의 변화양상과 접목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게 했다. 이 드라마가 이전 학교폭력 관련 영화나 드라마와 어떻게 다른지 보려면 몇 작품을 회상해야 한다.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말죽거리 잔혹사'에선 그 줄거리가 불량학생들의 일탈에 한정됐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에선 학교폭력 가해자 4명의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지키려고 자신들의 권력과 재물을 이용하는 민낯이 그려진다. '더 글로리'에선 이러한 부모들이 지키려 한 아이들이 어떻게 괴물이 될 수 있는지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과연 최고의 지위와 부를 가진 이들만이 그럴까. 이러한 점을 보인 드라마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경찰서장과 아울러 선후배 사이인 마을사람들이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조작을 서슴지 않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이 드라마에서 강조한 것은 2가지인데 이를 통해 드라마 '더 글로리'와는 다른 맥락을 강조하기에 이른다. 하나는 아이를 위한 조작에는 계급과 신분, 부와 명예의 차이가 없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무리 친한 사이며 마을주민의 자녀라고 해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신의를 저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점들을 통해 어쩌면 인간 이면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런 부모들은 왜 그런 것일까. 이를 사회문화의 심리 차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부모들이 아이들을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유는 가족주의 때문으로 보인다. 부모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돼 가족을 우선하는 것은 부모가 반드시 해야 할 일로 학교나 가정에서 교육받는다. 특히 자녀를 위해서라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당연히 따라야 하는 문화적 가치로 형성됐기에 쉽게 저버릴 수 없다. 근본적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해야 자신의 마음이 편하다. 하지만 가족, 특히 자녀를 위하는 행동은 사실 자신을 위한 것이다. 자신의 명예와 입지의 훼손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할수록 자녀의 잘못이나 허물을 덮어주거나 은폐하는 행위도 마다하지 않아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그 자녀가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수 있고 더 많은 피해자를 낳을 수도 있다. 즉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고 더 심각한 괴물이 된다.

이런 맥락과 상황에서 자녀의 잘못이나 허물을 감추지 말고 법의 심판에 따르게 해야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똑같은 상황에 부닥칠 때 사회적으로 재력과 권력이 없어서 그렇지 분명 수단을 지녔다면 그것을 동원해 자녀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민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애초 아이가 없는 것이 낫겠지 싶다. 아이가 없다면 부모의 역할을 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골치 아픈 일들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녀를 온전히 부모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문화적 가치가 팽배한 나라일수록 아이를 낳지 않는 게 편하게 된다. 이것이 한국이 유례가 없는 저출산(저출생) 국가에 이른 이유일지 모른다. 한국이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은 경제적 원인 같은 물질적 조건과 환경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런 가족문화, 그 가운데 부모의 역할과 노력에 책임을 너무 많이 지우는 과잉된 가족주의 때문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지나친 가족주의 문화, 부모의 도리를 강조하는 문화적 가치가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사회의 갖가지 모순과 한계에 따른 갈등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미래 인구문제의 해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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