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는가, 죽은 사람이 산 자를 도울 수 있는가?”
이번 12.3 비상계엄을 무너트리면서 이 질문은 만족할만한 답을 얻었다. 위헌적 비상계엄이 터지기 한달 반여 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발표된 한강 작가가 던진 질문이었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국회 본회의 제안설명문에서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다”는 대목이 그 답이다. 역사적 교훈을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5.18 광주민중항쟁이라는 과거의 역사적 교훈이 ‘12.3 비상계엄 사태’라는 현재를 구원한 상황이 자명한 답이었다.
이번 12.3 비상계엄에서 일반시민뿐 아니라 계엄군 지휘관과 병사까지도 과거 역사의 교훈이 크게 반면교사로 살아 움직였다. 전두환 하나회 집단의 5.18 내란에 항거하던 국민주권 정신이 되살아난 듯싶었다. 12.3 비상계엄을 보면서 많은 시민들이 5.18을 떠올렸다고 했다. 계엄군 장병들은 모두 특전사, 수방사, 정보사의 특수부대원으로 상명하복이 특성이었음에도 국회에서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부당한 명령에 적극 따르지 않았다. 특전사 소속 707특임단장 김현태 대령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과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 답변을 통해 내란 지휘부로부터 하달받은 부당 명령들을 국민 앞에 고스란히 공개했다. 그는 “707부대원이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이용당했다”며 울먹였다.
해방 후 ‘내란의 흑역사’는 박정희의 5.16과 유신 선포, 그리고 전두환의 5.17로 점철됐다. 5.16쿠데타가 4.19혁명을 유린했던 역사적 맥락은 별로 공유되지 못했다. 더구나 유신 선포 때 정권 측은 야당 국회의원 20여명을 불법 연행해 중앙정보부, 보안사, 헌병대에 나누어 감금하고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했다. 1975년 2월28일, 이세규, 조연하, 최형우 전 의원 등 13명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고문 악행을 폭로했지만 언론자유가 없던 유신체제 아래서 크게 문제화되지 못했다.
전두환의 하나회를 중심으로 그 후견 장성들이 가담한 신군부는 내란의 흑역사를 한 단계 더 어둡게 덧칠했다. 이들은 1980년 5월17일 밤 이른바 ‘국가기강문란자’와 ‘학생시위 배후조종자’라는 조작명칭으로 전국에서 2699명을 예비검속하고 이중 404명을 기소했다. 여기엔 김대중, 문익환, 한완상 등 재야 민주인사 37명이 포함됐다. 12.3 계엄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반국가세력을 이번에 싹 다 잡아들이라”고 했다는 증언이 계엄군 지휘관에게서 나왔다.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조국, 김민석 등 정치지도자 뿐아니라 판사와 언론인도 포함됐다. 전두환 집단의 ‘국가기강문란자’나 이번 사태를 주도한 자들의 ‘반국가세력’이라는 용어는 일제 식민지배 시기 민족운동가를 지칭하는 ‘불령선인’이 그 뿌리에 해당한다.
특히 이번 ‘12.3 내란사태’는 과거 내란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황당한 반국가 범죄혐의도 안고 있다. 평양에 무인기 침투설이나 북한의 오물풍선 발사지점에 대한 원점타격 지시와 같은 전쟁도발 의혹이 그것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으로 이미 국가신인도가 추락했고 경제 위기가 몰아치는 중이다. 전쟁피해 못지않은 ‘외환 상황’이다. 내란 피의자들을 조속히 법정에 세워 책임에 상응할 만큼 준엄하게 단죄해야 마땅하다.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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