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62년 만에 정부가 해산되는 사태를 겪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복지 지출 수준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만성적인 재정 적자 국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6.1%에 이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셸 바르니에 총리는 약 600억유로(약 90조원)를 긴축하는 내용의 2025년도 예산안을 추진했다. ‘헌법상 비상 권한’을 이용한 다소 무리한 방식을 통해서다. 이에 정치권은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총리 불신임’과 ‘내각 총사퇴’로 이어졌다.
그런 프랑스가 동병상련으로 지켜보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44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비상계엄은 이내 해제됐지만 정치권은 ‘탄핵 정국’에 빠졌다. 여야는 탄핵과 관련한 모든 사안마다 대치하고 있다. 정치적 불안이 극심하단 점에서 두 나라는 닮은 처지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는 두 나라를 달리 판단했다. 무디스(Moody’s)는 지난달 중순 프랑스의 국가신용등급을 ‘Aa2′에서 ‘Aa3′으로 한 단계 낮췄다. 반면 우리나라는 종전의 ‘Aa2′를 유지했다.
프랑스와 한국이 다른 평가를 받았던 이유로는 ‘예산’이 꼽힌다. 프랑스는 2025년이 시작된 현재에도 아직 올해 예산을 확정 짓지 못했다. 재정 적자 비율과 관련한 정치권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한 탓이다. 급한대로 연초 예산은 지난해 규정에 맞춰 ‘임시 예산’(CR) 형태로 편성해 집행 중이다. 오는 3월까지는 새해 예산안을 채택하겠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목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10일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정부와 정치권이 예산 증감의 각론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지만, 12·3 계엄 사태로 혼란이 극심해지자 일단 삭감된 예산안을 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정부는 ‘신속 집행’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새해 예산을 정상적으로 집행하고 있다.
한 경제 전문가는 “계엄 사태 이후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한국의 ‘예산 처리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고 말했다. 새해 예산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면 프랑스처럼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경제적 불확실성을 하나라도 줄이는 게 대외신인도 평가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보여준 사례다.
다만 신인도 평가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첫 정례 심사를 오는 4월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번 위기로 신용평가 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만약 강등이 현실화한다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나 커진다. 외화 표시 채권 발행 금리가 올라가 기업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그 고통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 전가될 것이다.
정치가 멈춰도, 경제는 나아가고 있음을 국제 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경제 관료들이 애쓰고 있다. 대통령 대행을 수장으로 둔 기관인 기획재정부는 기존 업무 외의 일들을 대거 떠안았다. 그럼에도 경제정책방향과 경제관계장관회의 등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연초 국제협력대사들을 파견하고, 해외 경제설명회(IR)도 준비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하려면, 적어도 행정부 내에서 만큼은 정치적 대립이 돌출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세종=박소정 기자(soj@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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