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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노란색, 보라색, 그리고 검은색 리본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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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가 달고 다니는 세월호 리본(노란색)과 이태원 리본(보라색) 옆에 새로 생긴 제주항공 리본(검은색). 사진 @hazel_h_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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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미 | 뉴콘텐츠부장



제주에서 태어난 저는 한두달에 한번은 비행기를 탑니다. 20년 넘게 그래왔습니다. 초등학교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를 부모님 집에 잠시 맡기려고 이달에는 제주도를 두번 왕복합니다.



제주를 오갈 때마다 항공료가 비슷하면 제주항공을 이용했습니다. 2006년 첫 취항 한 저비용항공사(LCC)이니 안전과 서비스 관리에 노하우가 쌓였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제주 도민의 돈도 들어간 지역 항공사라서 다른 곳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일요일 아침, 낯익은 주황색 제주항공 여객기에서 검붉은 불길이 치솟는 장면을 끝까지 볼 수 없었습니다. 해외여행 성수기인 연말에 항공기를 빼곡히 채웠을 승객의 숫자를 짐작하고 나니, 앞으로 벌어질 일을 당장은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활주로에 착륙했다며 가족, 친구와 손잡고 안심한 순간 죽음을 맞이했을 얼굴들이 온종일 맴돌았습니다. 얼마 전 제주항공 항공기를 타고 친구와 타이 방콕 여행을 다녀온 엄마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내 가족만 생각했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에스엔에스(SNS)에 들어가 뉴스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한 건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28명, 47명, 122명, 151명…. 무섭게 늘어나던 사망자 수는 179명에 이르러서야 멈춰 있었습니다. 애도할 말도 생각할 수 없던 그때,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들이 남긴 글을 보며 저도 희생자의 명복을 빌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들이 여행 중 즐거웠던 기억으로 영원한 행복 속에 잠들기를 바란다. 비행기 안에서의 공포와 두려움은 잊혀지고 부디 행복한 기억만을 가지고 평온하게 잠들기를 부디 바란다.”(@WoW***) “영혼이 붕괴되는 기분이다. 유가족분들 마음은 나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그러할 것이니 위로하고 회복할 힘을 드릴 수 있게 정신을 차려야겠다. 아프고 슬픈 영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333******)



애도와 기도는 시작이었습니다. 서로 역할 나누기라도 한 듯, 누군가는 어린이에게 이번 참사를 잘 설명하는 방법을 담은 카드뉴스를 올리고, 누군가는 재난 상황에서 ‘추측성 보도와 모욕적인 메시지를 생산·공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미디어 이용 가이드를 공유했습니다. 또 누군가는 유가족 입장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알렸습니다.



하나로 모이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사고의 성격을 ‘제주항공 참사’로 규정한 시민들은 ‘무안공항 참사’라 이름 붙인 정부와 언론사에 수정을 요청했습니다. 사고 원인은 정부 진상조사와 경찰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안전 운항의 책임이 있는 항공사의 과실이 은폐되거나, 특정 지역을 향한 혐오가 부각돼선 안 된다는 염려가 강했습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도 삼성중공업 관련인데 모르는 사람 많잖아. 제주항공 사고라고 불러야 됨”(@ott******)이라며 삼성은 사라지고 충남 태안 지역만 남은 2007년 사고를 떠올리는 이도 있었습니다.



참사 직후 많은 시민이 왜 정부나 언론의 프레이밍(틀 짓기)에 관심을 뒀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재난에 이름 붙여온 권력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세월호 사고’로, 2022년 이태원 참사를 ‘이태원 사고’로 고집했던 박근혜·윤석열 정부를 기억합니다.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국가의 책임을 지우려고만 했던 두 정부가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에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도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시간을 지나온 시민들은 이번 참사를 마주하고는 충분히 아파할 새도 없이 정부가 쓰는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여론에 영향받았는지 최초 ‘제주항공 2216편 사고’라 했던 국토교통부는 잠시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라 명명했다가 지금은 다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열흘간 마음에 머물렀던 글을 전하며 다시 한번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가방에 세월호 리본 이태원 리본 달고 다니는데 오늘 집회 갔다가 하나 더 추가됐다. 검은 리본….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를 애도합니다.”(@haz******) 노란색과 보라색, 그리고 검은색 리본 옆에 더는 슬픔이 달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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