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업의 공정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법적 과제 모색 세미나’ 개최
“불공정 거래 방지” vs “과잉 규제 우려”
국회의원 전재수, 강유정, 김승수, 강준현, 이헌승 의원실과 국회입법조사처는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문화산업의 공정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법적 과제 모색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웹툰산업협회]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문화산업공정유통법’(이하 문산법) 도입을 둘러싼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학계와 업계에서는 이 법안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전재수, 강유정, 김승수, 강준현, 이헌승 의원실과 국회입법조사처는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문화산업의 공정 유통환경 조성을 위한 법적 과제 모색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문산법의 쟁점을 논의하고, 어떤 문제점을 해소해야 할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문산법은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목표로 2020년 12월 유정주 의원과 2022년 11월 김승수 의원이 각각 발의했지만 학계, 산업계, 소비자단체, 창작자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반대에 부딪쳐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바 있다.
“불공정 거래 방지” vs “과잉 규제 우려”
문산법은 창작자 보호를 입법 취지로 내세웠으나 오히려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법안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불공정거래의 빈번한 발생과 기존 법률의 실효성 부족, 포괄적인 적용 대상을 통해 불공정거래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범유경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문산법은 법의 적용 대상이 포괄적이어서 플랫폼 등 가장 상위에 있는 유통업체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제작자들도 보호 범위에 포함된다”며 법안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김종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는 “개별 법률에 불공정거래를 명시하는 것보다 문산법처럼 불공정 행위의 유형을 구체적으로 규정해 법 적용의 용이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포괄적인 규정은 과잉 규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기존 법률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규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흥법제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지원이 가능하도록 정의의 범위가 넓어야 하는 반면, 규제법제에서는 해당하는 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문산법은 규제법제임에도 불구,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의 정의를 그대로 가져옴에 따라 문화산업과 사업자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며 “사적 계약에 과도한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은진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보는 “법 제정의 필요성과 타당성을 다각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현재 문체부 소관 법률과 타 부처 소관 법률로도 문화산업 분야의 불공정거래행위 방지가 가능하므로 문체부가 단순히 불공정거래가 많다는 점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마련하고 법 제정의 타당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산법의 금지행위 규정(제13조)과 문체부 장관의 시정조치 권한(제15조 제1항)을 삭제하고, 불공정 행위 유형은 문체부와 관련 부처의 협의를 통해 하도급법, 공정거래법 등 기존 법률의 시행령이나 행정규칙으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릴 수”…주무부처 간 입장차도
세미나에서는 주무부처 간 중복 규제 문제를 둘러싼 논의도 이뤄졌다. 각 부처는 상반된 입장을 보였으며 학계 전문가들은 문체부의 규제 권한 강화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주연 방송통신위원회 과장은 “산업 정책과 규제 정책을 분리해 각각 다른 기관이 담당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진흥 법안은 적용 범위를 가능한 넓게 설정하되, 규제 법안은 적용 범위와 대상 사업자를 명확히 해 규제 예측 가능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산법 제정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준헌 공정위 과장은 “문화산업 업계의 어려움과 불공정성에 공감하며 중복 문제 해결을 위해 문체부와 협력해 해당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했다”고 밝혔다. 김경화 문체부 과장도 “이견에 대해 충분히 듣고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중복 문제는 쟁점이 아니라는 입장 하에 문산법 도입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학계에선 반대 의견을 펼쳤다.
이 교수는 “법안의 포괄적 규정으로 금지 행위와 조치 요청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명시하지 않아 해당 부처인 문체부의 자의적 판단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법안은 문체부가 예술인 권리 보호를 넘어 시장 규제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된다는 점에서 시장 질서 규제에 있어 문체부가 전문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문체부는 본래 문화산업 진흥을 목적으로 하는 부처로서 규제보다는 지원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문산법이 규제법적 성격을 가지면서 금지행위 규정을 포함하고 있어 문체부가 집행 권한을 갖는다면 규제의 혼선과 산업 위축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체부의 규제 강화는 자칫 ‘목욕물을 버리려다 아기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고 강하게 꼬집었다.
한 현장 참석자는 현재 존재하는 법률로 불공정거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주무부처들이 문산법이 초래할 여러 산업적 부작용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법안 입법에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했다. 이어 “작년에도 문산법과 관련하여 문체부가 진흥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규제 권한을 강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있었다”며 “이 문제는 충분한 논의를 거쳐 신중히 입법을 추진하면 될 사안인데, 이렇게 급하게 졸속으로 입법을 시도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과오를 단순히 입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시도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신중론 제기…“학계·업계·창작계 의견 먼저 들어야”
세미나에 참석한 다수의 참석자들은 법안 입법 과정에서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했다.
최 입법조사관보는 “새로운 법안 제정은 사회, 경제, 관련 산업 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사전에 기존 유사 법률과의 충돌 가능성, 법률 간의 관계, 법안 시행으로 인한 비용과 산업 구조 변화 등 파급효과를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며 문산법의 제정 필요성과 타당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상민 한국만화가협회 이사는 “문산법은 창작자 보호 취지에도 불구하고, 당초 문산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창작자에 대한 의견 수렴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현실과 유리된 법안으로 귀결됐다”면서 “국소적 의견 청취는 특정 사례만의 해결을 위한 입법이 될 우려가 있으므로 창작계, 산업계, 학계 대상의 광범위한 설문조사와 산업 직군별 심층인터뷰 등을 통한 의견 수렴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세미나는 논의의 장으로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 의원이 환영사에서 “관계 부처, 이해관계자들, 입법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논의의 자리“라고 언급했으나 업계는 발제자, 토론자에 포함되지 않아서다. 한 참석자는 “세미나 형식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며 “학계, 업계, 창작계, 부처가 협의체를 구성해 처음부터 법안의 필요성을 검토하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서범강 회장은 현장에서 발언이 차단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는 “문산법 제정을 둘러싼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이번 세미나는 입법 과정을 위한 시작 단계로 평가된다”면서도 “특히 만화, 웹툰 분야를 대표하는 협회들과 전문가들이 문제의 소지를 두고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만큼, 앞으로 법안 추진 과정에서 산업계, 학계, 창작자를 포함한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협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