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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KYD 폴리티션 스토리](하) 천하람 "정치란 답이 아닌 질문을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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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9일 방송된 정치인의 인생 여정을 돌아보는 뉴스핌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정치란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해당 방송은 지난달 23일에 촬영됐다.

천 대표는 '뉴스핌 TV'를 통해 공개된 폴리티션 스토리에서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를 치르면서 '앞으로의 보수 정치는 뭘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졌다"며 "개혁신당에 와서는 '우리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관점도 조금씩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이 공감하고 함께 답을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을 던지는 그런 정치인 수준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며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납득할 만한 가치 체계와 어떤 답을 낼 수 있는 논리 체계를 정립하면, 그 정도가 된다면 제가 대권주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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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 [사진=뉴스핌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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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대구에서 태어난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고려대 법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지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최연소 대한변호사협회 제2법제이사, 대법원 사법정책 분과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후 천 대표는 정치 단체 '젊은보수'를 창립하며 정치에 입문, 2020년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미래를향한전진4.0이 추진한 보수대통합에 합류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23년 3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14.98% 득표로 최종 3위를 기록했고, 같은해 12월에는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이준석 신당에 합류했다. 이후 지난해 4월 22대 총선에서 개혁신당 비례대표로 당선, 국회에 입성해 개혁신당의 원내대표가 됐다.

다음은 천 대표와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전문이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21대 총선에서 이제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순천 갑에 출마하셨잖아요. 당시에는 좀 순천에 연고도 없는 데다 보수 불모지인 곳인데 어떻게 출마하시게 됐는지

▲(천하람 원내대표, 이하 천 대표) 그러니까 당에서도 '네가 연고가 있는 출마 가능한 지역을 좀 쭉 써봐라' 그랬는데 제가 쓴 데 중에 공천을 줄 만한 데가 없는 거예요.

제가 태어난 게 대구 중구 그다음에 부산 영도구. 부산 영도구에서 꽤 살았거든요.

그다음에 그 직전에 살았던 데가 송파인가 그랬어요. 그다음에 인천 연수 뭐 이런 식이니까 이제 쭉 보더니 '야 이거 이 중에 너한테 공천 줄 만한 데 하나도 없는데 그나마 인천 연수가 좀 덜 눈치 보이니까. 대구 중남구 쓰면 이건 완전 약간 얘 또라이인가 이렇게 생각할 거니까 덜 우세 지역인 인천 연수 써놓고 구체적인 건 당과 협의하자' 이렇게 된 거예요.

거기는 민경욱 의원도 있고 이제 다른 괜찮은 후보도 있고 이래가지고 애초에 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고 당에서는 저보고 수원 광교 쪽이나 이번에 이준석 의원이 당선된 동탄 쪽 나와보면 어떻겠냐 그중에 제일 괜찮았던 건 의왕 과천 거기서 이소영 의원하고 김앤장 매치 같은 걸로 한번 해볼까 이런 얘기도 조금 나왔었었고요.

막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저는 속으로 그때 미래통합당이 보수 통합은 막 했지만 수도권에서 특히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요.

물론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공천 받아서 수도권에 출마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큰 일이긴 하지만 여기서 떨어지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이게 그냥 중고 신인처럼 되고 사실은 선거 한 번 치르고 약간 낭인처럼 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연고가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열세 지역에 조금 표현이 그렇지만 이름은 퓨처 메이커라고 하면서 학도병처럼 밀어넣는 분위기 였고 당시에. 그러다 보니까 제가 이제 주변에 그때 젊은 보수 그룹을 같이 했던 사람들하고 논의를 조금 했는데 그중에 한 분이 저한테 그때 저희가 처음에 만들 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내가 보수의 블루오션은 호남이라고 생각한다. 호남도 성향상 보수인 분들이 많은데 과거의 역사적인 어떤 부채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보수 정당을 선택 못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 호남에서도 통할 만한 건전한 보수를 한번 해보자 그 얘기를 저희끼리 많이 했었는데 그거 얘기를 하면서 '야 하람아 호남으로 가자' 막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는 내가 고향이라도 호남이면 갈 텐데 내가 고향이 지금 대구고 산대가 부산이고 이런데.

근데 그분들이 약간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하더니 '고향에서 지역주의의 벽을 깬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있다. 김부겸도 있고 이정현도 있고 홍의락도 있고 노무현 대통령도 있고 정운천도 있고 많이 있는데 고향이 아닌 데서 지역주의의 벽에 도전한 사람은 지금까지 자기가 알기로는 잘 없는 것 같다. 니가 정치를 참 한 번 하고 말 건 모르겠지만 길게 놓고 본다면은 이거는 떨어지더라도 의미 있는 도전이 될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생각해 보면 생각해 볼수록 어차피 경기도 권에 어디 나가서 떨어질 바에는 길게 보고 의미 있는 도전을 하자. 그래서 당에다가 가서 '나 호남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처음에는 광주에 출마하겠다고 했었고 당에서는 이정현 의원하고 상의하고 와라 그래가지고 상의를 해 본 결과 광주보다는 순천이 좋을 것 같다고 이정현 의원님이 강하게 설득을 하셔서 결과적으로 순천에 출마하게 됐습니다.

-(최연혁 교수, 이하 최 교수) 그러면 분위기는 싸했었겠는데요. 어땠습니까?

▲(천 대표) 정말 안 좋았습니다. 그때 광주 말고 순천을 가자고 하셨던 이정현 의원님이 대표적인 이유가 그때 황교안 체제에서 대구가 고향인 젊은 친구가 광주에 출마한다 그러면 광주든 순천이든 안 뽑아주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불쾌하실 거다. 그러니까 언짢아 하실 거다. 이거는 이제 본인들을 도발하는 거라고. 그래서 정치인에게 있어서 출마라는 건 굉장히 소중한 건데 유권자를 불쾌하게까지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제가 순천이라고 뭐 다릅니까? 그랬더니 순천은 그래도 이정현 대표님이 본인이 재선이나 한 지역이고 똑같이 이상한 사람 취급은 하겠지만 그렇게 불쾌까지는 안 할 거다. 그냥 이정현이 누구 젊은 사람 하나 보냈나 정도로 그냥 최소한의 이해는 하실 거다 그랬는데 막상 맞닥뜨려 보니까 유권자들이 그렇게까지 이해합니까?

당연히 정신 나갔나라는 반응이셨고 당연히 거의 투명인간 취급은 물론이고 온갖 괄시 당연히 다 받고 근데 입장 바꿔서 제가 유권자였어도 그랬을 것 같아요.

갑자기 이 동네 출신도 아닌 친구가 와가지고 이 동네에서 인기 없는 정당 뽑아달라고 하고 있으니까 약간 약간 멀쩡해 보이는데 왜 그런 상황이었고 근데 다행이었던 거는 기점이 그래도 나름대로 TV 토론이었습니다.

TV 토론을 한 번 하고 나서부터는 저 친구가 당연히 이번에 당선은 안 되겠지만 좀 독특한 시도는 한 친구지만 완전히 깊이가 없거나 완전히 이상한 친구는 아닌 것 같다 라고 해 주셨고 그러면서 저도 득표는 얼마 안 되지만 이제 조금 싸늘한 시선이 약간 가시면서 여기서 정착해도 되겠다 그런 생각을 그때 하게 됐죠.

-(최 교수) 그때 몇 퍼센트를 받으셨어요?

▲(천 대표) 제가 3.02%를 받았는데요. 이게 되게 적다면 적은 표지만 그때 당시에 지역에서 평생 활동해 오셨던 정의당 후보, 그다음에 민생당 후보를 합친 것보다 제가 많이 받았었습니다.

그래서 지역에서는 사실은 제가 할 얘기는 아닌데 얘 생각보다 되게 꽤 선방했네 이런 얘기들을 순천에서는 하셨었어요.

-(신 기자) 지난해에는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도 출마를 하셨잖아요. 당시 어떤 포부로 출마하셨었는지

▲(천 대표) 제가 그때 당대표 선거 뛰어들기 한두 달 전에 몇몇 정치 선배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요. 나경원 의원이나 유승민 전 의원이 둘 다 안 나오면 내가 한번 해보고 싶다. 내가 최고위원을 해서 친륜계 당 대표 밑에서 최고위원 할 자신 없고 혹시 둘 다 안 나와서 약간 소신파 포지션이 좀 비면 나도 한번 나가서 어쨌든 경험도 쌓고 이름도 알리고 플러스로 어쨌든 더 큰 생각을 하게 되니까 한번 도전해 보고 싶다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 생각을 하고 유승민 대표님이 안 한다고 했을 때 저랑 이준석 의원이 거의 동시에 저도 나간다고 얘기를 했고 이준석 의원도 저한테 전화가 와서 '야 너 이번에 출마하면 용 되는 거 알지? 나가자' 그래서 저도 웃으면서 '내가 안 그래도 나가려고 다른 사람들하고 지금 상의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의기투합이 됐고 이준석 의원의 관점에서는 본인이 축출당한 이후에 당내에 어쨌든 이준석계라고 할 만한 표현이 그렇지만 이준석 대표를 지지하는 지지층이 얼마나 되는지 본인도 한번 실증적으로 보고 싶었고 저도 그 와중에 어쨌든 제 정치적 체급도 올리고 나도 그러면 이 보수 정치의 미래에 대해서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전국 선거를 치러볼 수 있는 기회를 잡고 싶은 게 있었고 하니까 그게 딱 맞아떨어졌던 거죠.

근데 이제 조금 아쉬웠던 거는 제가 정치적 체급이 사실 지금도 높지 않지만 그때는 더 낮았기 때문에 제가 아니라 이준석 본인이나 유승민 의원이 나갔더라면은 조금 더 그 포션이 더 많이 움직였을 것 같아요.

-(신 기자) 그러면 이제 그렇게 되고 나서 탈당하신 이후에는 바로 개혁신당 창당 준비위원장으로 합류를 하신 거죠. 그럼 그거는 좀 이준석 의원님의 영향이 컸는지

▲(천 대표) 그렇죠. 저는 지금도 아무도 물어보지 않지만 제 정치 인생에서 조금 명분이 약하다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사실은 국민의힘 탈당과 개혁신당 합류입니다.

이게 개혁신당에 와 있는 사람이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때 이준석 의원이나 국민의힘에서 근본적인 개혁이 어려운 상황, 또 한국 정치에서 어떤 새로운 세력이 태동해야 되는 그 명분 필요성 이거는 공감을 했는데 제가 끝까지 굉장히 망설였던 거는 제 개인적인 이득도 있었겠지만 제가 직전 당대표 선거에 나갔잖아요.

그럼 제가 원하는 방향성을 이야기를 했지 않습니까? 당 개혁 이렇게 가야 되고 대통령과 좀 떨어져서 독자성 확보하고 좀 이렇게 가야 된다 개혁적으로 가야 된다 막 얘기를 했는데 어쨌든 민주적으로 붙어가지고 제가 졌지 않습니까?

그럼 사실은 제가 민주적인 프로세스를 생각하면 승복을 하고 당 내에서 어쨌든 세력을 키우면서 다음 기회를 노려야 되는 거거든요. 제가 출마를 안 했으면 모르겠는데 그래서 그때는 저는 지금도 생각해 보면 명분적으로는 이 민주주의 프로세스에서는 좀 안 맞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래서 많이 망설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당내에 개혁 성향의 당원이 많지도 않은 상황에서 이준석 의원이 탈당해서 신당을 차린다고 하면 그분들의 대부분이 다 그쪽으로 갈 거고 그러면 여기서 제가 밭을 간다고 했을 때 수확이 과연 언제쯤이나 가능할까라고 하는 현실적인 측면을 보면서 그러면 그냥 신당에서 뭐라도 작지만 개혁을 시도해 봐야겠다 라고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겁니다.

-(신 기자) 대표님께서 당에 굉장히 애정이 많으신 것 같은데 좀 지금까지 만들고 지켜봐 오신 개혁신당을 좀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당일지

▲(천 대표) 저는 과하게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가 해온 거는 이준석 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건 맞습니다.

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신당에 애착을 갖고 있는 거는 이준석이라고 하는 리더가 타당의 리더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슨 사법 리스크를 가지고 있거나 아주 이상하거나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짓을 하거나 이런 사람이 아닙니다.

나름대로 본인의 어떤 서사나 합리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리더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그래도 기존의 다른 정당에 비해서는 잘해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저희 개혁신당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다양한 생각들 그리고 또 조금 더 다변화된 지지층 구조 같은 것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이준석이 주장하는 아젠다와 아이디어들을 지지하는 거는 좋죠. 그것이 스펙트럼이 넓어져서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오면 좋은데 이준석 개인이 좋아서 모인 팬클럽처럼 되면은 사실은 이거는 좀 곤란한 겁니다.

이게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스펙트럼을 그렇다고 막 마구잡이로 넓히자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 지지층을 넓히는 과정을 이번 대선이 이루어진다면은 해야 되고 저도 어떤 의미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역할들을 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요새는 많이 하고요.

어쨌든 좀 장기적으로는 당의 사이즈도 조금 키우면서도 정체성은 잃지 않으면서 조금 더 뭐랄까요 조금 더 벌크업이라고 해야 될까요? 조금 더 뭔가 다양성을 당내에서 만드는 그런 작업들을 해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신 기자) 대표님 정치 하시면서 우여곡절도 많이 겪으셨는데 그래도 좀 정치하길 참 잘했다라고 생각하시는 좀 그런 뿌듯한 때가 있으신지 아니면 혹은 좀 반대로 정치를 좀 후회했던 때가 있으신지

▲(천 대표) 뿌듯할 때는 사실 너무 많이 있는데요. 그냥 감성적인 측면에서는 저는 처음에 정치를 좀 굉장히 어렵게 시작했기 때문에 누구 음료수라도 하나 이렇게 주실 때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그때 순천에서 선거운동할 때도 옆에서 차가 막 빵빵빵하는 거예요.

그래서 또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하려고 그러니까 유세차가 이렇게 가는데 옆에 있는 차가 막 빵빵하길래 왜 그러십니까 그랬더니 창문을 내리고 아 그래도 당신 TV 토론에서 봤는데 사람 괜찮아 보이는데 너무 고생하더라 하면서 음료수 하나 주실 때 그랬더니 막 눈물 나죠.

그러니까 그런 거는 이제 개인의 감성적인 거고 최근에 뿌듯했던 거는 작지만 의미 있는 정책적 변화들을 일으킬 때 되게 좋습니다. 제가 이제 조세 소위라고 이제 말 그대로 세법을 이제 이렇게 다루는 소위에 들어가가지고 그런 게 있었어요. 저희 보좌진들이 잘 잡아낸 건데 저희가 이제 청년들이 기업이랑 청년이랑 같이 이제 매칭해서 돈을 넣으면 그걸 국가에서 많이 이제 세제 혜택도 주고 덧붙여서 주는 그런 제도들이 몇 가지 장치들이 있는데 그게 보통 5년을 채워야 되는 것도 있고 약간 기간 제한들이 있어요.

근데 5년을 못 채우면은 세제 혜택도 확 떨어지고 이자도 확 떨어지는데 그게 제도에 루프홀(규제 허점)이 있어가지고 근로자가 자기 귀책으로 예를 들면 나 회사 때려 그전에 그만둘래 해서 나갈 때야 당연히 그거 안 줘도 되는데 기업이 그 사이에 망할 때도 있잖아요. 아니면 기업에서 해고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때도 혜택을 확 줄여버리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는 말이 안 된다. 왜냐하면 이거는 근로자 귀책도 아니고 5년을 못 채운 게 이 사람 잘못이 아닌데 기업 측 귀책일 때는 이거 다 주자 라고 이번에 제가 소위에서 얘기를 열심히 했고 여당 야당 간사들도 그거는 천하람 의원 얘기가 맞는 것 같다. 이거 왜 지금까지 안 줬냐 해가지고 기재부에서는 약간 (망설이고) 이랬는데도 저희가 밀어붙여서 소위에서는 그걸 관철을 시켰어요. 그런 거 할 때 아 이런 거는 진짜 규정 하나 살짝 바꿔가지고 단 사용자 측 귀책 사유인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제가 처음에 이제 정치인 하려고 할 때 법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했을 때 그거를 제가 그래도 실현을 하는 거니까 그런 거는 굉장히 뿌듯하죠. 그거는 이제 국회의원 모두가 자기가 어떤 법률에 있어서의 변화를 일으킬 때 뿌듯한 거는 다 마찬가지.

그거보다 조금 더 큰 스케일에서 이제 국민들의 삶을 바꾸는 경험들을 좀 해 나가야 되는 거죠.

-(최 교수) 지역구의 당협위원장으로서 시청하고 계실 시청하실 유권자들을 위해서 한 말씀해 주시죠.

▲(천 대표) 그러니까 우선 제가 서론으로 말씀드리면은 제가 처음 순천을 간 거는 미국식 표현으로 하면 정치적 스턴트인 게 맞습니다. 근데 제가 어쨌든 험난한 선거운동 과정을 겪으면서 그래도 아 이 친구가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니구나 그리고 조금 나아가서 순천 시민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해 주셨어요. 이게 천하람이가 또라이인 거면은 또라이인 건데 만약에 이 친구가 또라이가 아닌데 이런 도전을 하는 거면 대단한 거 아니냐 그러니까 얘는 둘 중에 하나다 완전 또라이거나 완전 대단한 놈이거나 라고 이제 좀 생각을 해 주셨어요.

순천 지역 현안은 다 마찬가지지만 결국 지역의 도시들이 갖고 있는 거 다 대부분 비슷합니다. 일자리 그다음에 병원 학교 일자리가 저희가 순천 같은 경우는 여수와 광양의 일자리를 공급하는 베드타운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요즘은 여수 산단도 석유화학 공업이 워낙 안 좋고 광양의 철강도 요즘 중국에서 워낙 과잉 생산을 해가지고 덤핑을 하고 있어서 양쪽 다 요즘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서 순천에서는 콘텐츠 사업이나 한화 에어로스페이스(Aerospace)가 들어와가지고 이제 우주 항공 이런 쪽을 사천 창원이랑 같이 해서 좀 해보려고 하는데 그런 것들 저희 적극적으로 좀 지원을 하려고 하고 근데 사실 근본적으로는 여수 광양의 산업 경쟁력이 사실 올라와야 됩니다.

그다음에 의료 병원 면에서는 이거를 보시는 전국의 시청자들도 한번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는 게 전라남도에 의과 대학이 아직까지 한 개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드리면 야 무슨 소리야 전남대 있잖아 하시는데 전남대는 아쉽게도 광주에 있고 저희가 전라남도 전체의 의과 대학이 하나도 없는데 이게 세종을 제외한 아마 그 광역단체 중에는 유일할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순천에 의과 대학을 만들어서 괜찮은 대학 병원을 좀 만들고 싶다라는 염원을 좀 가지고 있고요. 그게 이번에 의료 대란 터지고 뭐 하고 하면서 사실 굉장히 어렵게 지금 가고 있습니다. 이거는 참 쉽지 않지만 어쨌든 풀어내보려고 열심히 노력은 하고 있고 그다음에 마지막으로 학교인데요.

순천이 옛날에는 순천고등학교를 비롯해 가지고 완전 거의 최고의 교육 중심지 같은 거였습니다. 근데 그게 이제 평준화되고 막 이렇게 되면서 예전 같지 않고 인구가 전반적으로 좀 빠지다 보니까 학교 자체가 작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부분들을 좀 학교 통폐합을 하면서 차라리 중고등학교의 기숙 학교를 좀 늘려서 학부모들의 사교육 부담도 좀 덜고. 특히 순천에 직장 때문에 이사 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양질의 기숙학교에 우리 아이들을 보낼 수 있다라고 하면은 이사 오는 게 훨씬 덜 겁납니다.

이렇게 저희가 직장 의료 교육. 원래 셋 다 순천이 나쁘지 않았는데 지금도 아주 나쁘진 않지만은 약간 쇠락해 가고 있는 거를 좀 반전을 시켜야 되지 않겠나 그런 것들을 지금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고 또 노력도 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최 교수) 정치인으로서의 시각이랄지 또 비전이랄지 이런 거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나에게 정치란 지금 현재 뭐라고 보십니까?

▲(천 대표) 답이 아니라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제가 정치 경험이 조금 더 쌓이면서 제가 내놓는 답의 퀄리티보다도 제가 어떤 상황 이 상황에서 어떤 질문을 하게 되느냐가 수준이 조금씩 올라간다라고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가 있는 조직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서 어떤 생각들을 모으고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에 대해. 오히려 저는 하면 할수록 더 헷갈립니다.

당대표 선거를 국민의힘에서 치르면서 물론 우리가 주류 경제학적 어떤 자본주의적 사고나 어떤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질서 여러 가지들이 있지만 산업화의 유산을 계속해서 얘기하는 꼰대가 아니라 뭔가 앞으로의 그런 보수 정치는 뭘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고.

요즘에 개혁신당 와가지고는 우리가 개혁, 개혁 얘기하는데 우리가 말하는 개혁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과연 뭘까 라는 질문의 수준들이 어떻게 보면 조금씩 조금씩 관점도 바뀌고 이렇게 하면서 국민들이 공감하고 함께 답을 찾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질문을 던지는 그런 정치인 정도의 수준에서 저는 지금 있다라고 생각을 하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가지고 납득할 만한 가치 체계와 어떤 답을 낼 수 있는 논리 체계를 제가 정립을 하게 되면 그 정도 되면 제가 대권주자가 되겠죠.

-(신 기자) 좀 돌아봤을 때 2024년은 대표님께 어떤 해였는지 궁금합니다.

▲(천 대표) 제가 한 경험 중에 '300번째 당선인이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요.

실제로 끝까지 몰랐습니다. 굉장히 아슬아슬한 격차로 됐는데요.

저는 제가 올해 계엄도 겪었고 원내대표로서 경험도 쌓고 했지만 저에게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거는 낙선했다고 생각했을 때 저는 오전 개표 날 아침에 각 언론사에서 당선 유력 확정이 붙었다가 다 떨어졌어요.

그냥 개혁신당 당선인 2명 이렇게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할 때 그때 겪었던 그 어떻게 보면 한두 시간의 경험이 제 평생의 거름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죽다 살아난 한 해다' 그렇게 평가합니다.

-(최 교수)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듯 30대, 그러니까 38에 초선으로 이제 들어오셨고 그리고 전남 순천 당협위원장 그리고 원내대표를 하시면서 어떻게 보면 초선이면서도 상당히 이제 큰 정치적 역정을 이제 시작하신 셈이신데 앞으로 우리 20대 30대 우리 우리 국민들이 유권자들이 바라보는 좀 희망을 주는 정치 그리고 천하람 얘기는 '뭔가 그래도 그 안에 뭔가 뜻이 있어' '우리에게 희망을 줘'라는 어떤 그런 메시지 있는 정치를 좀 펼쳐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2025년이 될수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천 대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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