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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서초포럼] 오징어 게임과 아보하 그리고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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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은 단순한 드라마 이상의 현실감으로 세계를 강타했다. 3년 만에 돌아온 시즌2는 더욱 정교한 시선으로 양극화와 불평등의 현실을 고발한다. 거액 상금을 위한 생존투쟁과 자중지란(自中之亂)은 단순한 설정이 아닌, 엄연한 실태의 명징한 은유다. "이러다간 다 죽어"라는 대사는 일상적 공포를 간결히 드러낸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초유의 상황에 직면했다. 계엄령과 대통령 탄핵, 권한대행의 연쇄라는 정치적 격동 속에서 가슴 아픈 항공기 참사까지 발생했다. 법적 판결은 이뤄질 것이고 사고 진상도 밝혀지겠지만, 더 큰 재난과 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대내외 사방을 둘러보면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현대사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다. 군사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며,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주는 국가로 도약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의 성취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롤 모델로 평가받는다. 이념과 노선의 차이가 있었지만, 국가발전이라는 목표 아래 우리는 단결했고, 그 성과를 함께 누렸다.

물론 정치적 결정은 늘 국민의 몫이었다. 우리는 시대에 적합한 지도자를 스스로 선택해 왔다. 군사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경제를 살리며, 국민통합을 위해 때로는 진보를, 때로는 보수를 세웠다. 필자 역시 선거 때마다 균형과 발전을 이뤄낼 일꾼을 가려내기 위해 깊게 숙고했고, 선택의 최종 기준은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과 기대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의 정치는 소통과 협력은 뒷전이고, 극단적 대립과 진영 논리에 매몰된 모습이다. 갈등은 설득과 타협의 전제로서 민주주의의 근본적 기반이지만, 끝없는 정쟁 속에 날로 피폐해지는 국민의 삶은 추슬러질 희망을 찾기 어렵다. 무비판적인 정치적 확증편향이 친구와 이웃을 갈라놓는 사이, "이러다간 다 죽어"라는 드라마 대사가 귓속을 웅웅대며 절망의 벼랑으로 모두를 밀어내고 있다.

2025년의 엄중한 현실 앞에서, 그러므로 다시, 기업을 생각한다.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은 동북아시아 작은 분단국의 일신된 면모를 세계에 선포했다. 식민의 굴레와 전쟁의 화마가 잦아든 지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점, 기적이라는 말을 넘는 칭송이 가득했다. 이어진 월드컵, G20 정상회의, 평창 동계올림픽의 성공 개최와 그 모든 저변을 일궈낸 경제, 산업의 발전상은 세계의 청춘들을 뒤흔든 K컬처의 소프트파워를 품어내며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끌어올렸다.

이 과정은 온전히 강건한 국민의 저력에 의지했고, 앞에서 길을 열어 간 것은 단언컨대 수많은 기업의 헌신과 도전 덕분이었다.

1983년 '아! 대한민국'이 발표됐을 때, 가사가 좀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국민가요 타이틀도 시대착오적으로 보였다. 개인이 중요하고 개성이 제일인데, 난데없는 나라 타령이라니. '원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하지만 지금, 이 당연한 말들이 아프게 절실하다.

최근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아보하'가 회자되고 있다. '아주 보통의 하루'를 뜻하는 말로, 특별함보다는 평범한 일상 속 행복을 추구하는 태도를 반영한다. 경기 불황과 급격한 변화 속에서 소소한 안정과 평화를 찾으려는 마음의 움직임이다.

소비 트렌드를 설명하는 단어지만, 정치와 공동체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이자 목적에 대한 우화적 질문으로 읽힌다. 대립과 분열을 넘어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 될 수는 없을까.

당연하기에 소홀했던, 소중한 일상의 위대함을 깨닫는 순간 대한민국은 마침내 다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다간 다 죽어"라는 경고가 아닌, "이제는 함께 살자"라는 연약한 희망을 붙들며 새해를 맞이한다.

이호준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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