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명예훼손과 항명 혐의를 받고 있는 박정훈 대령의 결심 공판이 열린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 들머리에서 박 대령이 지지하는 사람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김혜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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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대령(전 해병대 수사단장)을 군검찰은 민간 경찰로의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정당한 명령’을 거부했다며 항명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군사법원은 이첩 보류 명령이 불분명했고 정당한 명령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군검찰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명령 번복과 그 배경으로 의심되는 ‘윤석열 대통령 격노설’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고, ‘자의적 공소권 행사가 의심된다’며 박 대령을 향한 괘씸죄 수사 행태도 비판했다.
사단장 빼라는 ‘부당한 명령’
군검찰은 △2023년 7월31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내린 이첩 보류 명령 △8월2일 사건 이첩 도중 김 사령관이 내린 이첩 중단 명령을 박 대령이 어겼다고 주장했지만, 군사법원은 첫번째 명령은 존재하지 않으며 두번째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이어서 항명죄가 아니라고 봤다.
항명죄 무죄 판단의 결정적 근거는 박 대령의 일관된 진술이었다. 박 대령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첩 중단 지시가 이미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했던 내용과 달리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부당한 명령에 해당해 이를 따를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혐의자·혐의내용을 빼라’는 내용이 담긴 유재은 당시 국방부 법무관리관과의 통화 기록도 증거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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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이 장관이 수사 내용 수정을 목적으로 김 사령관에게 이첩 중단을 지시했으며, 이는 ‘수사 개입’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장관 지시의 의도에 비춰 볼 때, (이 장관의 지시로 인한) 김 사령관의 사건 이첩 중단 명령은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에서 제외하려는 목적의 사건 이첩 중단 명령은 부당한 수사 개입이라는 판단이다.
군사법원은 이첩을 보류하는 김 사령관의 명령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박 대령은 이첩 보류를 망설이는 김 사령관의 자필 메모, 2023년 7월31일~8월1일 해병대 회의에서 했던 김 사령관의 발언을 증거로 제시했다. 김 사령관은 법정에 나와 ‘수차례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김 사령관이 박 대령에게 이첩 보류 명령을 구체적, 개별적으로 명확히 했다기보다 사령부 부하들과 함께 이첩 시기 및 방법에 대해 회의나 토의를 주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자의적 공소권 행사” 괘씸죄 수사
재판부는 “김 사령관의 이첩 중단 명령은 특별한 이유는 없고 이 장관의 지시를 따를 목적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했다. 임성근 사단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자로 특정한 해병대 수사 결과를 보고받고 경찰 이첩을 승인했던 이 장관이 갑자기 사건 이첩을 보류하며 승인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겠느냐’는 윤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고 다수의 군·정치권 인사들이 증언하고 있다. 실제로 2023년 7월31일 오전 11시 윤 대통령이 국가안보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격노’한 뒤 11시54분 이 장관은 대통령실 내선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고 3분 뒤 이 장관은 김 사령관에게 전화해 사건 이첩 보류와 당일 예정됐던 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했다. 재판부는 “군검찰은 이 사실(혐의자를 변경하라는 지시)을 확인하기 위해 이 전 장관,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관계자, 김 전 사령관을 조사하거나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한 확인 등의 면밀한 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군검찰은 박 대령에게 상관 명예훼손 혐의도 적용했고, 이 전 장관은 법정에 나와 처벌 의사도 밝혔다. 윤 대통령 수사 외압을 폭로하고 ‘이 장관이 수사 결과 변경 지시를 했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문제 삼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상관 명예훼손의 피해자이며 김 사령관 지시의 원인이 된 지시를 내린 이 장관에 대한 대면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점에 비춰 보면 박 대령의 방어권과 변론권이 침해됐다”며 “박 대령의 적극적 방어권 행사의 일환인 언론 인터뷰 내용으로 추가 기소한 건 박 대령의 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함으로써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밝혔다. 격노설을 폭로해 윤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린 박 대령에 대한 괘씸죄 수사가 의심된다는 지적인 셈이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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