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업체 “브로드컴에 시제품 공급”
그래픽=백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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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가 한국과 대만이 주도해 온 반도체 ‘2나노 공정’ 경쟁에 뛰어들었다. 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라피더스가 미국 브로드컴에 올 6월까지 2나노 시제품을 공급한다”고 보도했다. 4월 가동하는 생산라인에서 세계 5위 반도체 업체 브로드컴의 시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2나노 공정은 세계 1·2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가 올해 상반기 시험 생산에 들어가는 최첨단 공정이다. 이 경쟁에 기술력에서 한발 뒤처진 것으로 평가받는 라피더스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라피더스는 이를 위해 속도전에 들어갔다. 일본 홋카이도의 소도시 지토세시(市)에 첫 생산라인 ‘IIM-1′을 짓고, 극미세 공정의 필수 장비 ‘EUV(극자외선)’ 등 설비 반입과 설치가 한창이다. 라피더스의 고이케 아쓰요시 사장(CEO)은 “2월이면 생산라인 설치도 모두 끝나며 4월부터 2나노 반도체 시제품 생산을 시작한다”며 “2027년 대량 생산도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일, 2나노 판도 흔들 변수 되나
일본은 신흥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를 앞세워 대만과 한국, 미국에 이어 넷째로 2nm 반도체 시장 진입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라피더스는 일본이 ‘반도체 재기’를 위해 도요타·소니·키옥시아 등 기업 8곳의 출자를 받아 2022년 8월 세웠다. 라피더스는 2나노 기술을 미국 IBM의 도움을 받아 개발했다. 라피더스는 직원 수백 명을 IBM에 파견해 2나노 기술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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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최첨단 공정은 대만 TSMC가 독주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뒤쫓고 있다. 미국 인텔도 도전하고 있지만, 최근 경영난을 겪으며 뒤처져 있다. 이런 판도에 라피더스가 가세했다.
라피더스가 미국 브로드컴에 2나노 시제품을 공급하게 되면, 미국 빅테크를 고객으로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브로드컴은 최근 챗GPT와 같은 AI 애플리케이션(앱)에서 데이터 처리를 돕는 첨단 네트워킹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서버에 전력 공급을 지원하는 반도체를 만들면서 AI 수혜 기업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라피더스 입장에서 만약 브로드컴으로부터 물량을 받게 된다면, 첨단 공정 경쟁에서 존재감을 보일 수 있게 된다.
◇2나노 경쟁에 사활 건 삼성전자
라피더스의 도전이 성공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현재 5나노 이하 최첨단 파운드리 양산은 삼성전자와 TSMC만 가능하다. 그만큼 기술 진입 장벽이 높고, 시험 생산에 성공해도 본격 양산에 들어가기 전까지 수십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새로운 공정을 개발하고 생산 시설을 가동하기 위한 전문 인력도 확보해야 한다. 설립된 지 2년밖에 안 된 라피더스가 수십 년 업력의 TSMC, 삼성전자와의 격차를 단숨에 없앤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한 전문가는 “라피더스가 2나노 칩 생산을 위해 적용한 IBM 반도체 기술은 양산이 아니라 개발 기술이라 지금 시점에선 양산 성공을 장담하긴 어렵다”며 “라피더스는 과거 첨단 칩 생산 경험이 없는 데다, 대량 생산에 필요한 공장 건설 비용 5조엔(약 46조원)도 아직 확보하지 못해 자금난을 겪는 등 취약점이 적지 않은 것이 맞는다”고 했다.
◇삼성전자, 낮은 수율 고민
글로벌 첨단 반도체 시장은 삼성전자조차 점유율을 늘리기 어려울 만큼 TSMC의 아성이 견고하다. 흔히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1·2위를 TSMC·삼성전자라고 하지만 실제론 TSMC의 독주에 가깝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의 TSMC 점유율은 64.9%(지난해 3분기)인 데 반해 삼성전자는 9.3%에 불과하다. 5나노 이하 최첨단 반도체에선 TSMC의 점유율이 90%를 훨씬 웃돈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현재 2나노 경쟁에서도 TSMC가 가장 앞서 있다. TSMC는 작년 11월 대만의 2나노 공장에서 시험 생산을 시작했고, 올 하반기에 2나노 대량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다. 2나노는 어려운 공정이지만 TSMC는 이미 수율(생산품 가운데 정상품 비율) 60%에 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2나노의 시험 생산을 시작하고 하반기에는 대량 생산에 나설 계획이다. 시차는 거의 없지만 문제는 수율이다. 삼성전자는 3나노 공정에서도 수율을 높이기 위해 애를 먹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시제품 생산과 양산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특히 최첨단 제품일수록 공정 노하우와 경험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라피더스의 한계도 분명하다”고 말했다.
☞2나노 반도체
반도체 회로 선폭(線幅)이 2나노미터(㎚·1 ㎚는 10억분의 1m) 수준인 첨단 반도체. 선폭이 좁을수록 집적도가 높아져 반도체 성능은 좋아지고, 한 웨이퍼(반도체 원판)로 더 많은 칩을 만들 수 있다. AI 반도체 등 첨단 칩 제조에 활용된다. 현재는 반도체 기업들이 3나노까지 양산 중이다.
[치토세(홋가이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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