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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0 (금)

10년 만의 베르테르 롯데... 전미도 “못다 한 감정 풀어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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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 롯데 役 배우 전미도 인터뷰

조선일보

17일 개막하는 뮤지컬 ‘베르테르’ 무대에 여주인공 ‘롯데’ 역으로 10년 만에 복귀하는 배우 전미도는 “나이 들어가며 작품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더라. ‘베르테르’는 아직 풀지 못한 숙제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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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음치 여의사 채송화와 드라마 ‘커넥션’의 냉정한 사회부 기자로 더 익숙하지만, 사실 전미도는 라이브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배우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로 1회 대한민국연극대상(2008) 신인상을 받고, ‘스위니 토드’와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1·2회 한국뮤지컬어워즈(2017·18) 여우주연상을 연달아 거머쥐었다. 지금의 전미도는 무대와 매체를 종횡무진하는 ‘대세’ 배우다.

하지만 그가 17일 개막하는 뮤지컬 ‘베르테르’에 주인공 ‘롯데’ 역할로 10년 만에 복귀한다는 소식은 의외였다. 초연에 참여해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캐릭터를 빚어나가는 도전을 즐기는 쪽. ‘번지점프를 하다’ 등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한번 출연한 작품은 좀체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세 번째 ‘베르테르’라니.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나 이유를 물었을 때, 전미도는 “미처 풀지 못한 숙제 같았던 작품”이라고 했다. “10년 전에 이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려웠어요. 알아내지 못한, 표현해 내지 못한 것들이 아직 많이 남은 것 같았죠.”

그는 “체호프의 ‘갈매기’를 가장 좋아하는데, 나이 들어가며 계속 다르게 읽히더라. ‘베르테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학생이던 20대에 ‘베르테르’ 초연을 봤을 땐 ‘롯데’의 약혼자 ‘알베르트’가 악역이라고 생각했어요. 롯데와 베르테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만 눈이 가니 ‘그냥 두 사람 사랑하게 내버려둬!’ 하는 마음이었던 거죠. 30대에 이 뮤지컬에 출연할 땐 알베르트가 불쌍해 보이더군요. 롯데와 베르테르가 이기적인 것 같았고요. 근데 40대가 돼 보니, 알베르트 역시 결국 마지막에 베르테르에게 총을 건네더라고요. ‘아, 모두가 흔들리는 존재, 나약한 인간들이었구나’ 하는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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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베르테르’의 ‘롯데’ 전미도(왼쪽)와 ‘베르테르’ 엄기준.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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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도는 “함께 연습하며 오래 이 작품을 해온 배우들과 처음 함께 하는 배우들의 해석이 부딪히고 융화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라고 했다. “좋은 사람인 것만 같던 알베르트의 차가운 면을 보여주겠다는 배우도 있어요. 약혼자이지만 거리감 있는 롯데와 알베르트 사이 미묘한 심리도 들여다보게 됐죠. 얼마든지 더 섬세하게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걸 함께 연습하는 동료 배우들을 통해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무대 위 전미도의 커리어를 보면 ‘베르테르’의 롯데 같은 공주형 캐릭터는 오히려 드물다. 돈키호테를 재해석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선 비참한 삶에 찌든 술집 하녀 ‘알돈자’였고, 연극 ‘비(Bea)’에선 난치병으로 침대에 갇혀 죽음을 꿈꾸는 여자였다. ‘메피스토’에선 여자 메피스토펠레스를 보여주기도 했고, 피와 칼이 난무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선 비현실적인 악당 ‘러빗 부인’도 너끈히 소화했다.

배우의 유형을 ‘자신을 배역에 칠하는 배우’와 ‘배역을 자신에게 칠하는 배우’로 거칠게 나눌 수 있다면, 전미도는 후자, 그것도 배역에 푹 젖어 그 색깔로 물드는 배우처럼 보인다. 그는 “극단적으로 다른 역할을 하는 게 즐겁다. 한 작품 뒤에 비슷한 역할을 제안받을 때면 ‘아냐, 이건 너무 그냥 사람 같잖아’ 하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대학 때부터 여려 보이는 외모와 체격 때문에 저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이 있었어요. 그들이 내 한계라 생각하는 것을 깨뜨리고 싶었죠. 대학 땐 단역, 조연도 흥미로우면 가리지 않고 맡았고, 프로로 무대에 서게 된 뒤에도 이 역할 저 역할 ‘멀티’로 변신하는 게 즐거웠어요. ‘저, 이런 것도 잘해요!’란 느낌일까요, 하하.” 도전을 즐기는 자세가 오히려 그의 커리어를 풍성하게 했다. 체호프의 연극 ‘청혼’에서 못생긴 외모 탓에 시집 못 간 여주인공을 맡아 천박하면서 수다스러운 인물을 만들어 놓고 나니 ‘스위니 토드’의 욕쟁이 살인광 러빗 부인 역할이 찾아오는 식이었다.

연기로 언젠가 가닿고 싶은 지점을 묻자, 그는 “제가 가고 싶은 지점이 분명하게 있다. 장민호(1924~2012) 선생의 연극 ‘3월의 눈’”이라고 했다. “보통 정극 연기를 오래 하면 어쩔 수 없이 가진 화술이나 발성에 연극적 습관이 생겨요. 근데 선생님은 그런 게 하나도 없으셨어요. 귀가 너무 감미롭다고 해야 하나. 선생님이 들어가시면 ‘빨리 나오셨으면 좋겠다. 언제 나오시지’ 하면서 저절로 몸이 앞으로 기울었어요. 진짜 경지에 이른 연기란, 배우한테 매료되는 순간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했었죠.” 그는 “공연 뒤 기립 박수를 치면서, 나도 여든 나이에 저런 연기를 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당시 장민호 선생을 만나 인사한 뒤 연극 ‘갈매기’ 대본 앞에 사인을 받았다. 여전히 전미도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보물이다.

여전히 부딪히고 도전하지만, 결국 마지막 목표는 무대라고 믿는다. “제게 무대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게 해주는 공간이에요. 무대 위에 있을 때의 내가 제일 좋아요. 제가 제일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전미도의 ‘베르테르’는 서울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3월 16일까지, 7만~16만원.

[이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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