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피셜 네이처의 영상설치 작품 ‘천겹의 표류’ 전시 현장.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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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와 일본 대마도(쓰시마)는 가까운 이웃일까?
지리적으론 걸맞지 않다. 부산과 경남 거제도에서 대마도까지 거리는 50㎞ 정도에 불과한데, 제주에서는 250㎞ 이상 떨어져 있다. 하지만 역사 분야 연구자들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대마도는 숱한 제주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겹겹이 쌓여 있는 제2의 정착지와 같다는 것이다. 고려시대 이래로 20세기까지 제주섬에서 숱한 표류자와 밀항자들이 기착했고, 죽어서 밀려온 주검들도 부지기수였다. 산 자들은 아예 대마도에 터 잡아 살거나 일본 본토로 떠났고, 망자들의 무덤도 해변가에 생겨났다.
이런 표착의 교류사를 가능하게 한 것은 북방 오호츠크해부터 동아시아 주변 해역을 흘러 태평양으로 가는, 검은 물살이란 뜻의 ‘구로시오’ 해류다. 대마도와 한반도의 교류사를 고고학적으로 연구해온 길가은 상주박물관 학예사는 “제주와 쓰시마는 해류의 흐름을 탄 표류와 난민으로 깊이 얽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17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제4회 제주비엔날레 국제콘퍼런스 ‘표류의 섬, 제주’에서 제주도-대마도 사이의 숨은 근대 비사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1948~1954년 제주 4·3 사건 때 해류에 의해 제주에서 떠내려온 주검이 쓰시마 해안으로 쓸려왔는데, 대마도 주민들이 수습하고 무덤을 만들어주었지요. 살아서 떠내려온 제주 사람들은 쓰시마 내륙 산골로 들어가 숯을 구웠습니다. 한국전쟁 발발 뒤엔 부산으로 건너가 숯을 팔며 생계를 이어나갔어요. 전후 이들은 쓰시마에 남거나 제주 또는 오사카로 옮겨갔어요. 쓰시마에 남은 일부 제주 사람들의 아이들은 일본 아이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며 정착했지요.”
제주섬의 유일한 격년제 국제미술제인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길 학예사가 발표한 내용대로 구로시오 해류의 흐름과 ‘표류’·‘이동’의 맥락 등에서 영감과 상상력을 길어올린 색다른 현대미술품을 소개하는 자리다. 지난 11월부터 제주도립미술관, 제주아트플랫폼, 제주현대미술관 등 5곳에서 14개국 작가 87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레이저 투사기 등을 활용한 부지현 작가의 설치 작품 ‘궁극공간’ 전시 현장.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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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엔날레는 7세기 일본에 표착한 제주 왕자 아파기의 표류 기록을 바탕으로 한 가상과 상상의 기록을 통해 표류를 통한 문명의 여정, 자연과 문화예술의 이동과 이주, 생존과 변용의 생태계 등에 대한 유럽·아시아권 작가의 현대미술 작업과 담론을 소개한다. 제주의 역사와 생태,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한 국내 작가 작업이, 비슷한 지정학적 특징을 지닌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권역의 작업과 함께 어울려 관객을 만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작업은 대마도에 흘러들어온 한국의 폐기물과 부유물 등을 조합해 거대한 유령 혹은 괴물의 조형물을 만든 양쿠라 작가의 제주도립미술관 전시장 작업이다. 수년간 섬의 부유물 수집 작업과 함께 현지 섬 주민의 증언을 수집한 아카이브를 토대로 만든 이 조형물은, 구로시오 해류 속을 부유하는 느낌을 푸른 천을 기워 만든 덩어리 모양의 물살 조형물 속으로 들어가 감각해보라고 만든 대만 작가 왕더위의 설치 작업과 맥을 같이한다.
인간과 인공지능(AI) 협업으로 천겹 가상세계 속을 헤매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가그룹 ‘아티피셜 네이처’의 몰입형 영상 공간(제주현대미술관)은 ‘표류’의 동시대적 의미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제주아트플랫폼 건물 안에 레이저 투사기와 분무기, 폐집어등을 활용해 마치 수면과 같은 형태로 내부 공간을 구성하고 관객이 해류 흐름 속으로 잠기는 듯한 착시를 연출한 부지현 작가의 설치 공간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2월16일까지.
제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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