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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국민연금 개편과 미래

    적립식, 고갈…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국민연금 '정체성' [視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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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덕 기자]

    우리는 '국민연금 개혁, 공전의 기록' 1편에서 여야 정치권의 '공허한 연금 논쟁'을 살펴봤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기금 적립금 유지'를 위한 모수개혁(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점도 꼬집었다. 2편에선 국민연금의 정체성을 정리해 봤다. 국민연금의 오해가 '불분명한 정체성'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논의해야 할 의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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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행 국민연금 제도를 개혁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건 뭘까. 바로 지속 가능성이다. "보험료가 한없이 오르고 소득대체율은 더 줄어들 것"이라거나 "기금 고갈로 연금을 못 받을 것"이라며 불안해하는 국민이 많다는 건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이들이 많다는 거다.

    그래서 국민연금 제도의 개혁은 불안이 어디서 시작했는지부터 따져 보고, 이를 해소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만큼 따져 볼 것들이 숱하다. 여기엔 구조개혁도 포함된다.

    ■기금 고갈의 함의 = 먼저 '기금 고갈'이라는 공포부터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2050년에 기금 적립금이 고갈된다"는 말이 나오면 다음과 같은 논리가 전개된다.

    "적립금이 고갈되면 보험료율이 급격히 오른다.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꾸준히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 이를 통해 적립금 고갈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그래서 보험료율을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식의 모수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국민연금의 존재 목적이 '노후소득 보장'이기에 소득대체율을 무작정 낮추는 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지난해 TV 토론회로 진행된 '연금개혁 공론화 500인 회의' 이후 시민대표단이 '보험료율도 높이고 소득대체율도 높이는 개혁'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적립금 고갈 시기는 조금 더 앞당겨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모수개혁을 통해 적립금 고갈을 늦출 순 있어도 이를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라 연금을 받는 사람이 늘고, 보험료를 내는 사람은 줄어들 거라는 것도 필연이다.

    그럼 적립금이 사라진 미래는 어떨까. 국민연금공단 설명에 따르면 '국가가 망하지 않는 한' 연금은 반드시 지급한다. 특히 '적립금이 모두 고갈되면 연금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그해에 걷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해서라도' 연금을 지급할 것이라 밝히고 있다.

    아마 그때의 보험료율은 지금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심지어 보험료가 모자라 세금을 투입해야 할 수도, 정부재정이 나빠질 수도 있다. 세금을 투입하지 않으면 국민연금 제도가 자립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자는 이들이 걱정하는 건 이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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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기금 적립금 고갈 이후'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보험료율은 어디까지 올려야 적절한지, 소득대체율은 어디까지 낮춰야 하는지 등을 인구구조 시나리오에 따라 명확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래야 과학적 토대 위에서 공론의 장을 펼칠 수 있다.

    연금지급액이 모자라면 세금을 투입할 것인지 여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만약 적립금 고갈 이후 세금 투입을 원치 않는다면 지금의 보험료율 조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도의 존립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서다.

    ■ 적립과 고갈의 균형점 = 따져봐야 할 건 또 있다. 기금 적립금을 어떻게 운영할지, 기금 적립금을 어떻게 현금화할지 등이다. 지난해 정부는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추진계획을 발표하면서 기금 적립금 고갈 시점에서의 기금운용수익률을 1%포인트(4.5%→5.5%) 이상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게 별것 아닌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만큼 더 위험한 투자를 감행해야 한다는 뜻이어서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동의할지 알 수 없다.

    더구나 기금 적립금을 어떻게 0원으로 만들 것이냐에 따라 최종 기금운용수익률도 달라진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누적 적립금은 1185조원이다. 이 가운데 1183조원을 금융시장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주식(11.9%), 해외주식(35.5%), 국내채권(29.2%), 해외채권(7.1%), 대체투자(16.0%), 기타(0.3%) 등이다. 여기서 국내주식과 국내채권에 투입된 자금만 487조원이다. 코스피 총액(2011조원)의 4분의 1에 달한다.

    이만한 규모의 자금을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빼는 건 불가능하다. 결국 일정 기간에 걸쳐 공개 매각해야 한다. 시장은 출렁일 것이고, 파급효과에 따라 기금운용수익률이 얼마나 하락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기금 적립금은 지금부터라도 줄이는 게 현명한 것인지 모른다. 이런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 또다른 대안들 = 이런 논의들만 해도 국민의 불안감은 한층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구조로는 국민연금의 불안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공론의 장에선 새로운 대안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의 기본 구조는 적립식과 부과식이 혼재된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적립식과 부과식의 특징이 곳곳에 섞여 있어서다.

    [※참고: 그해 걷은 보험료로 그해의 연금을 지급하는 게 부과식 구조다. 적립식은 수급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차곡차곡 모아 이를 적절히 운용하고, 원금에 운용수익을 더해서 지급하는 구조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모수개혁이 반드시 필요한 부과식 구조다. 다만 일정 시기까지는 연금을 받는 사람보다 보험료를 내는 사람이 더 많아서 기금 적립금이 쌓였을 뿐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국민연금을 마치 '저축'처럼 인식한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기본 구조를 '적립식'으로 오인한 결과다. 그래서 '적립금'이 고갈되면 국민연금 제도 자체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부과식 구조가 섞여 있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무너질 일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 정부도 '적립금이 모두 고갈되면 연금지급에 필요한 재원을 그해에 걷어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전환해서라도' 연금을 지급할 것이라 명시해 놨다. 부과식 구조에서 '보험료율'이 변동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료율이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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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오해들을 없애려면 국민연금 제도의 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부과식이라면 세금 투입을 인정해야 한다. 적립금이 모두 사라져도 별문제가 없으니 '기금 고갈론'의 공포를 내세워 보험료율을 인상해서도 안 된다.

    더구나 부과식은 노동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부과식을 유지하려면 어떻게든 보험료 부담자들을 늘려야 하고, 이는 노인일자리나 정년문제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국민연금=부과식'이라는 전제를 깔고 다양한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 만약 부과식 구조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적립금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으로 청산하고, 완전 적립식으로 거듭나는 방법도 없지 않다.

    정체성이 명확해야 벤치마킹도 가능하고, 제도의 신뢰성이 올라간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제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래야 정부도, 정치권도, 국민연금공단도 오해 없이 발전적 논의를 꾀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은 여기서 시작하는 게 순리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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