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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3 (토)

    이슈 미술의 세계

    "시대를 위로한 붓질"...우리가 몰랐던 50년 전 구상화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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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화랑 '한국 구상회화 4인전'
    윤중식·박고석·임직순·이대원
    1970~80년대 구상회화 재조명
    한국일보

    윤중식의 ‘고향’(1979). 현대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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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화가 대세인 지금, 구상화(대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림)는 구시대의 미술일까. 여기 '고향'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있다. 황혼 녘 산과 들에 어우러져 있는 비둘기를 그린 작품으로, 세부 묘사를 생략한 과감한 선과 주홍색이 주조를 이루는 강렬한 색채가 인상적이다. 두터운 윤곽선과 유화의 질감에서 실향민 화가 윤중식(1913~2012)의 묵직한 감정선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화가는 1913년 북한 평양에서 태어나 월남해 99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서울 성북동 화실에서 자연 풍경에 꽂혀 지고지순한 향토미를 추구했다. "붉은 태양이 서쪽 산으로 기울어질 때면 석양은 찬란한 빛과 신비의 세계로 물들고 다양한 변화에 가슴이 울렁거린다"는 화가의 육성을 떠올려보면 구상화는 한국적 풍경의 순수와 낭만을 지켜온 붓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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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직순의 '남쪽의 산'(1980). 현대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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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 현대화랑에서 열리는 '한국 구상회화 4인전: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이대원'은 추상 미술에 가려진, 한국 구상화의 내력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독자적인 그림 세계를 키워낸 구상화가 4인의 작품을 모았다. 화랑 개관 55주년인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전시이자, 화랑과 인연이 깊은 박수근, 이중섭과 활동한 동시대 구상 작가를 조명하겠다고 밝힌 전시이기도 하다.

    전시장에는 네 화가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1970~1980년대 작품들이 나왔다. 지금이야 화단의 대세가 추상으로 굳어지고 대중의 취향과도 멀어졌지만 당시 구상화는 사실적 표현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 속에서 발견되는 민족적 정서를 표출하는 중추 사조였다.

    네 화가 중 맏형인 윤중식은 평양 출신으로 1939년 일본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작가는 평생 실향민으로서의 그리움과 상실감을 근간으로 강렬한 색채와 중후한 톤이 돋보이는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박고석(1917~2002)도 평양 출신으로 1939년 일본대학 예술학부 미술과를 졸업한 뒤 1968년부터 국내의 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충북 충주 출신인 임직순(1921~1996)도 1936년 일본에 건너가 수학한 유학파다. 빛의 대비와 강렬한 색면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자연과 여인 등을 소재로 생명력을 탐구했다.
    한국일보

    박고석의 '외설악'(1984). 현대화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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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문산 출신인 이대원(1921~2005)은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조선미술전람회와 국전 등에 입선하며 미술계에 입문했다는 점이 다른 화가들과 다르다. 1950~60년대 미니멀리즘 경향이 주류를 이뤘던 한국 화단에서 이대원은 한국의 산과 들, 나무, 연못, 돌담, 과수원 등 친숙한 자연을 주요 소재로 택하며 고유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이가현 큐레이터는 "네 화가는 우리의 풍토와 체질에서 비롯된 구상회화의 흐름을 주도하면서도 정통 아카데미즘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사실적인 묘사력과 독창적인 화풍을 비교 감상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구상회화의 다양함과 깊이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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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원의 '북악산'(1976). 현대화랑 제공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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