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대상이 가치를 갖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그린 연극 '애나엑스'. 글림컴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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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대상에 막강한 힘이 부여되는 현대사회 시스템을 조명하려 했습니다." 국내 초연 중인 연극 '애나엑스'를 연출한 김지호 연출가(사진)는 현대사회에서 가치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드러내려 했다고 밝혔다. 가치가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모순적 현상을 부각하려 했다는 것이다.
'애나엑스'는 발칙한 거짓말로 뉴욕 미술계에서 수많은 피해자를 양성한 사기꾼 애나 소로킨의 실화를 다룬다. 러시아 거부의 상속녀를 가장한 애나(최연우·한지은·김도연)는 각종 사교 파티에서 인기를 얻으며 중요한 인물이 되고 거짓 이미지로 쌓은 인맥으로 자금을 빌려 예술재단 설립을 추진한다.
'애나엑스'는 예술 작품의 가치가 예술계(평론가, 예술가, 언론 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현대미술의 특성을 활용해 주제를 제시한다. 평범한 예술학교 학생이었던 애나는 수업 시간에 교수가 혹평했던 작품이 미술 시장에서 값비싸게 팔리고, 예술에 조예가 깊은 학우가 자기 집에 있는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을 못 알아보는 것을 보고 현대사회에서 가치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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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는 "'애나엑스'는 사실과 진실, 거짓과 포장에 대한 연극"이라며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연습 과정에서 (스태프들과) 가장 많이 나눴다"고 설명했다.
'애나엑스'는 예술가와 사기꾼이라는 평을 모두 받는 논쟁적 현대미술 작가들도 작중에 소환한다. 애나는 데이미언 허스트가 말했다는 '시대에 맞는 도구를 활용하라'는 격언에 따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거짓 이미지를 구축했고, 애나가 일하는 잡지사 사옥에는 제프 쿤스가 강아지 풍선의 형체를 금속으로 만든 '벌룬 도그'의 미니어처가 전시돼 있다.
김지호는 "현대미술 작품은 해석과 포장에 따라 가치가 결정된다"며 "파편적 사실들을 큐레이팅한 SNS 속 이미지가 현실에서 실체적 힘을 발휘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한 현대사회 모습을 현대예술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판하려 했다"고 밝혔다.
김지호는 주인공 애나를 입체적 인물로 표현하는 데 힘썼다. 극의 초반 애나는 매력적인 사교계 인플루언서로 묘사되지만 진실이 밝혀지며 가증스러운 거짓말쟁이로 밑바닥을 드러낸다. 또 작품 내내 애나가 자신을 '너'라는 2인칭으로 지칭하게 해 진짜 자신과 거짓된 자신으로 자아가 분열된 모습을 묘사했다. 3월 16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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