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JTBC 단독 인터뷰
"2월 25일이라는 그 날짜를 많은 팬분들도 기억해 주시고, 잊을 만할 때쯤 꼭 이렇게 기억을 하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
15년 전, 2010년 2월 25일은 대한민국 피겨 역사상 잊지 못할 날입니다. 스무 살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섰습니다. 우리나라 피겨 사상 첫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연아가 15년 전 연아에게]
김연아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태연하게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던 것 같아요. 그날을 위해 수많은 연습의 기간이 있었고 그 연습 기간에도 늘 매일 경기를 치르듯 연습했기 때문에 그날도 별다를 거 없이 똑같은 루틴을 실행해야 최고의 컨디션과 실력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때의 자신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저도 성인이었고 굉장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갓 스무 살 넘은 어린 학생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수고했다, 대견하다 얘기해 주고 싶어요. 이런 생각은 그 당시에는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린 제 모습을 떠올려 보니까 그런 말을 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섯 살 때, 방학 특강으로 언니랑 같이 재미로 탔었어요. 그때 스케이트장에 발을 들인 이후로 이렇게 될 줄 사실 몰랐잖아요. 앞으로의 길이 굉장히 험난할 것이라고,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 좋은 미래가 올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은퇴 후 11년, 여전히 꿈에서도 피겨를 한다]
"아마 평생 (꿈을) 꿀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움찔하시는 때 있잖아요. 높은 데서 떨어진다든지. 그런 순간이 저한테는 스케이팅하다가 넘어지거나 그런 거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수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꿈도 한 몇 달에 한 번씩은 꾸는 것 같아요."
현실에선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올랐고, 올림픽 메달도 두 번이나 땄지만 꿈에선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올 포디움' 기록도 팬들에게 처음 들었다고 했습니다. 올 포디움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 입상해 시상대에 오르는 대기록입니다.
"팬분들이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어요. 앞만 보기에도 너무 벅찬 일상이었기 때문에 생각 못 했었는데 그런 기록이 있다고 해서 저도 놀라웠고, 스포츠라는 게 1등만 기억하고 1등이 주인공인 대회다 보니까 1등에만 좀 집착을 했는데 시상대에 계속 올라왔다는 것도 꾸준히 실력을 잘 유지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도 자랑스러운 기록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열다섯 살]
김연아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보여주는 유명한 영상이 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한 아이스링크에서 거듭 점프 연습을 하며 넘어지다 결국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입니다. 김연아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중학생이었을 거예요. 성장기이다 보니까 몸도 늘 변하고 어제 했던 훈련이 오늘은 까마득하게 그냥 백지상태로 안 되기도 하고. 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텐데 그때 영상이 남아서 제 모습이지만 불쌍하고 안타깝고 이런 감정이 저도 함께 들었던 것 같아요."
대한민국 피겨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 간 김연아. 김연아의 피겨 여정 대부분은 우리가 처음 겪는 일들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데뷔 대회에서 1등 했는데. 그 대회를 출전하기 전에 굉장히 많은 드라마가 있었거든요. 가족끼리도 이제 너무 힘드니까 그만하자고. 그런 상황에서 나간 대회에서 1등을 해버린 거죠. 그전까지는 국내에서만 제 실력을 확인하지 사실 국제대회에서 내가 어떤 성적을 받을까 하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김연아의 등장은 피겨계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부모님, 코치분들도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대회를 준비하는 주최 측에서도 제가 약간 '갑툭튀'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다들 당황했다는 저는 또 말을 전해 듣긴 했었거든요.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한 점프의 비결]
김연아의 대표적인 강점은 시원시원한 점프입니다. 남다른 속도와 비거리를 자랑하는 점프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완벽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점수를 받는 데 큰 영향을 받는 부분도 사실 점프였기 때문에 점프가 더 저한테는 중요했고 그만큼 훈련도 굉장히 많이 했었고요. 당연히 예술적인 요소를 놓치면 안 됐지만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서 훈련을 했고 했지만, 그래도 점프 기술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거침없이 뛰었던 그 점프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점프 스타일들이 있고 그게 저 같은 경우는 스피드가 없으면 점프가 안 되는 타입이어서 스피드를 낼 수밖에 없는 타입이었거든요. 그게 운 좋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또 요소 중의 하나여서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아서 너무 감사했죠."
김연아 이후 등장한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김연아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 스케이팅 이후에도 굉장히 고난도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그 선수들한테도 제가 같은 세대의 선수였다면 또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 피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금메달리스트를 모두 배출하는 피겨 강국이 됐습니다.
"차준환 선수, 김채연 선수 모두 좋은 성적을 동시에 내다보니까 그 기쁨이 두 배로 컸던 것 같아요. 내년 올림픽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절차를 밟는 느낌도 받아서, 선수들에게도 큰 동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연아의 재능, 그리고 노력]
지금의 김연아가 있기까지 재능, 노력, 행운의 비중이 얼마나 될지 물었습니다.
"나누자면 재능 50, 노력 40, 행운 10. 점프할 때 근력이라든지 민첩성, 순발력, 밸런스 그런 것들을 다 복합적으로 가지고 타고나야 점프도 유지할 수 있는 거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좀 타고나지 않았나."
다만 스스로 유연성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특유의 '유나 스핀'은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다리 스트레칭을 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일자로 찢어지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사실 평생 일자를 만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일주일간 늘 매일 운동하면서 늘려놓으면 주말에 쉬면 다시 돌아오고. 그런 게 좀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사실 피겨든 어떤 스포츠든 한 부분만 뛰어나서 잘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점프 부분에서 좀 타고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강심장이란 수식어와 김연아의 속내]
'피겨의 전설' 미셸 콴 선수는 김연아를 "두려움 없는 선수"라고 표현했습니다. 큰 대회에서 떨지 않고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김연아에게 많은 사람이 '강심장'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김연아의 진짜 마음은 어땠을까요.
"두려움이 없진 않았는데 두려움이 없어 보이려고 이제 애를 썼기 때문에 그게 성공을 한 것 같아요. 경기만 보는 게 아니라 그 경기 전후 연습 과정, 어떤 에티튜드, 인터뷰 이런 모든 게 다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스포츠의 일부였다는 겁니다.
"자신이 없고 조금 걱정되고 불안해도 그런 모습을 감추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런 게 잘 감춰지고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그런 모습이 비쳤다면 제가 그래도 성공한 것 같아요."
[김연아가 바라보는 아사다 마오]
일본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아사다 마오는 한국 팬들에게도 유명합니다. 아사다 마오는 작년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등을 하고 싶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해 괴로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김연아는 그런 아사다 마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라이벌로 굉장히 큰 주목을 받고 그만큼 서로한테 많은 자극이 되어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둘 다 아마 서로가 없었다면 그만큼의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저는 해요."
훌륭한 선수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 크고 작은 대회를 많이 하면서 사실 아사다 마오 선수가 더 좋은 실력으로 우승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 결정적인 올림픽에서 제가 1등을 했다 보니까 마오 선수한테는 그 순간이 끝까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 중의 하나일 것 같아요. 충분히 훌륭한 선수였다는 걸 저도 인정을 하고 아마 그 선수도 알고 있을 거기 때문에 서로 수고했다 잘했다 해주고 싶네요."
국가는 달랐지만, 같은 선수로서 얼마나 힘들게 훈련해왔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선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쉽게 얘기할 수 없죠.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두 번의 올림픽, 두 번의 눈물]
2010년 밴쿠버 올림픽과 2014년 소치 올림픽. 김연아는 두 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도 이 눈물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전 경기 끝나고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올림픽 끝나고도 눈물을 흘릴 거라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정말 끝남과 동시에 눈물이 터져서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안도의 눈물이 맞는 것 같아요."
전 국민의 기대 속에 출전한 밴쿠버 올림픽. 김연아는 사실 너무나 기다리고 간절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그만큼 너무 아닌 척했지만 간절했고 이 순간을 너무 기다려 왔는데 이제 잘 경기를 끝냈고 결과 이제 예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도의 눈물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한 번에 터뜨린 게 아닌가 싶어요."
소치 올림픽이 끝난 후 흘렸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일단, 분노의 눈물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치 올림픽 때는 경기 끝나고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고 인터뷰 때 그렇게 했는데, 많은 분들이 또 그때 경기 결과에 대해서 분노를 하셨기 때문에 그 결과가 막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다고 많이 해석을 하셨는데 저는 아니었거든요.
두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힘든 과정들을 제가 겪었고 사실 이미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그 이상 더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는데 그리고 그만한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올림픽이라는 굉장히 큰 데 서는 거여서 두 번째 올림픽을 가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도 굉장히 많이 흔들렸어요.
중간에 포기할까도 정말 생각을 많이 했고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20대 중반을 향해서 가는 게 사실 어린 나이지만 선수로서는 좀 체력도 많이 저하되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보니까 드디어 끝났다는 어떤 참아왔던 그 감정들이 한 번에 터진 그런 눈물이었다고 생각해요."
[김연아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말]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선수인 만큼 김연아에겐 많은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퀸연아, 연느, 피겨퀸 등이 대표적입니다. 김연아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수식어는 무엇일까요.
"말씀하신 그런 멋있는 표현들도 있지만, 팬분들이 하셨던 말씀 중에 빙상 얼음 위에서 귤만 까먹어도 좋다고, 이제 스케이팅을 하지 않아도 귤만 까먹어도 행복하다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냥 장난으로 한 거지만 그 의미는 제가 어떤 선수든 실패를 하든 실수를 하든 성공을 하든 제가 스케이팅을 하는 얼음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제 좋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말 같아서요."
김연아에게 피겨란 어떤 의미일지 물었습니다.
"다섯 글자로 한다면 '애증의 관계', '애증의 피겨'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지만 또 이만큼 날 기쁘게 할 것도 없었다는 느낌. 일을 사랑하지만 또 막 일 때문에 힘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자신의 피겨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일까.
"저는 백 점 줘야 할 것 같아요. 더 제가 그 이상을 할 수도 없었고, 선수로서 일단 단순 성적으로 봤을 때도 베스트를 해줬기 때문에 100점을 주고 싶습니다."
※김연아의 인터뷰 영상과 [다시, 올림픽] 시리즈는 유튜브 'JTBC News' 채널에서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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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2010년 2월 25일은 대한민국 피겨 역사상 잊지 못할 날입니다. 스무 살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섰습니다. 우리나라 피겨 사상 첫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이자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의 연아가 15년 전 연아에게]
김연아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긴장은 하고 있었지만 태연하게 똑같은 아침을 맞이했던 것 같아요. 그날을 위해 수많은 연습의 기간이 있었고 그 연습 기간에도 늘 매일 경기를 치르듯 연습했기 때문에 그날도 별다를 거 없이 똑같은 루틴을 실행해야 최고의 컨디션과 실력이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난 이후 그 과정들은 사실 세세하게 잘 기억은 안 나거든요. 굉장히 정신이 없는 상태고 모든 게 후루룩 지나가고 결과가 나오고 막 많은 축하를 받고. 만약 다시 돌아간다면 그 순간순간을 더 즐기고 피부에 와 닿게 느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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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때의 자신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저도 성인이었고 굉장히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갓 스무 살 넘은 어린 학생이었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수고했다, 대견하다 얘기해 주고 싶어요. 이런 생각은 그 당시에는 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내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 어린 제 모습을 떠올려 보니까 그런 말을 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 피겨 역사를 바꿔놓은 김연아이지만, 첫 시작은 취미였습니다.
"여섯 살 때, 방학 특강으로 언니랑 같이 재미로 탔었어요. 그때 스케이트장에 발을 들인 이후로 이렇게 될 줄 사실 몰랐잖아요. 앞으로의 길이 굉장히 험난할 것이라고, 그래도 끝까지 버티면 좋은 미래가 올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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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11년, 여전히 꿈에서도 피겨를 한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지만, 김연아는 여전히 꿈에서도 피겨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마 평생 (꿈을) 꿀 것 같아요. 많은 분이 움찔하시는 때 있잖아요. 높은 데서 떨어진다든지. 그런 순간이 저한테는 스케이팅하다가 넘어지거나 그런 거로 연결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선수구나 이런 생각도 들고, 꿈도 한 몇 달에 한 번씩은 꾸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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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선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올랐고, 올림픽 메달도 두 번이나 땄지만 꿈에선 아니었습니다.
"근데 대체로 좋은 꿈은 아니고 경기가 잘 안 풀리거나, 지각했거나. 아마 선수 기간 늘 뭐 경기를 앞두고 훈련을 앞두고 걱정이나 불안이나 그런 두려움들이 은연중에 이제 체내화돼 있어서 그게 아직도 조금 남아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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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올 포디움' 기록도 팬들에게 처음 들었다고 했습니다. 올 포디움은 출전한 모든 대회에서 3위 내 입상해 시상대에 오르는 대기록입니다.
"팬분들이 알려주시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어요. 앞만 보기에도 너무 벅찬 일상이었기 때문에 생각 못 했었는데 그런 기록이 있다고 해서 저도 놀라웠고, 스포츠라는 게 1등만 기억하고 1등이 주인공인 대회다 보니까 1등에만 좀 집착을 했는데 시상대에 계속 올라왔다는 것도 꾸준히 실력을 잘 유지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것도 자랑스러운 기록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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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열다섯 살]
김연아의 혹독한 훈련 과정을 보여주는 유명한 영상이 있습니다. 사람들로 가득한 아이스링크에서 거듭 점프 연습을 하며 넘어지다 결국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입니다. 김연아는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중학생이었을 거예요. 성장기이다 보니까 몸도 늘 변하고 어제 했던 훈련이 오늘은 까마득하게 그냥 백지상태로 안 되기도 하고. 어쩌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텐데 그때 영상이 남아서 제 모습이지만 불쌍하고 안타깝고 이런 감정이 저도 함께 들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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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피겨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 간 김연아. 김연아의 피겨 여정 대부분은 우리가 처음 겪는 일들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첫 데뷔 대회에서 1등 했는데. 그 대회를 출전하기 전에 굉장히 많은 드라마가 있었거든요. 가족끼리도 이제 너무 힘드니까 그만하자고. 그런 상황에서 나간 대회에서 1등을 해버린 거죠. 그전까지는 국내에서만 제 실력을 확인하지 사실 국제대회에서 내가 어떤 성적을 받을까 하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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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등장은 피겨계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부모님, 코치분들도 그래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그 대회를 준비하는 주최 측에서도 제가 약간 '갑툭튀'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다들 당황했다는 저는 또 말을 전해 듣긴 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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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따라 하지 못한 점프의 비결]
김연아의 대표적인 강점은 시원시원한 점프입니다. 남다른 속도와 비거리를 자랑하는 점프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완벽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제가 점수를 받는 데 큰 영향을 받는 부분도 사실 점프였기 때문에 점프가 더 저한테는 중요했고 그만큼 훈련도 굉장히 많이 했었고요. 당연히 예술적인 요소를 놓치면 안 됐지만 밸런스를 잘 유지하면서 훈련을 했고 했지만, 그래도 점프 기술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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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뛰었던 그 점프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다양한 점프 스타일들이 있고 그게 저 같은 경우는 스피드가 없으면 점프가 안 되는 타입이어서 스피드를 낼 수밖에 없는 타입이었거든요. 그게 운 좋게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또 요소 중의 하나여서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아서 너무 감사했죠."
워싱턴포스트 스포츠 1면을 장식했던 김연아의 금메달 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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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이후 등장한 많은 후배 선수들에게도 김연아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 스케이팅 이후에도 굉장히 고난도 점프를 뛰는 선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고 그 선수들한테도 제가 같은 세대의 선수였다면 또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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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등장하기 전 피겨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금메달리스트를 모두 배출하는 피겨 강국이 됐습니다.
"차준환 선수, 김채연 선수 모두 좋은 성적을 동시에 내다보니까 그 기쁨이 두 배로 컸던 것 같아요. 내년 올림픽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절차를 밟는 느낌도 받아서, 선수들에게도 큰 동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연아의 재능, 그리고 노력]
지금의 김연아가 있기까지 재능, 노력, 행운의 비중이 얼마나 될지 물었습니다.
"나누자면 재능 50, 노력 40, 행운 10. 점프할 때 근력이라든지 민첩성, 순발력, 밸런스 그런 것들을 다 복합적으로 가지고 타고나야 점프도 유지할 수 있는 거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좀 타고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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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스스로 유연성은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특유의 '유나 스핀'은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이었습니다.
"다리 스트레칭을 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일자로 찢어지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사실 평생 일자를 만들어 본 적이 없거든요. 일주일간 늘 매일 운동하면서 늘려놓으면 주말에 쉬면 다시 돌아오고. 그런 게 좀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사실 피겨든 어떤 스포츠든 한 부분만 뛰어나서 잘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저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점프 부분에서 좀 타고난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강심장이란 수식어와 김연아의 속내]
'피겨의 전설' 미셸 콴 선수는 김연아를 "두려움 없는 선수"라고 표현했습니다. 큰 대회에서 떨지 않고 최고의 모습을 보이는 김연아에게 많은 사람이 '강심장'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김연아의 진짜 마음은 어땠을까요.
"두려움이 없진 않았는데 두려움이 없어 보이려고 이제 애를 썼기 때문에 그게 성공을 한 것 같아요. 경기만 보는 게 아니라 그 경기 전후 연습 과정, 어떤 에티튜드, 인터뷰 이런 모든 게 다 스포츠라고 할 수 있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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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 또한 스포츠의 일부였다는 겁니다.
"자신이 없고 조금 걱정되고 불안해도 그런 모습을 감추려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그런 게 잘 감춰지고 오히려 자신감 넘치는 그런 모습이 비쳤다면 제가 그래도 성공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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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가 바라보는 아사다 마오]
일본 피겨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아사다 마오는 한국 팬들에게도 유명합니다. 아사다 마오는 작년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등을 하고 싶었지만, 그에 미치지 못해 괴로웠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김연아는 그런 아사다 마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라이벌로 굉장히 큰 주목을 받고 그만큼 서로한테 많은 자극이 되어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둘 다 아마 서로가 없었다면 그만큼의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저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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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선수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런 크고 작은 대회를 많이 하면서 사실 아사다 마오 선수가 더 좋은 실력으로 우승한 적도 많았는데, 이제 결정적인 올림픽에서 제가 1등을 했다 보니까 마오 선수한테는 그 순간이 끝까지 뭔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 중의 하나일 것 같아요. 충분히 훌륭한 선수였다는 걸 저도 인정을 하고 아마 그 선수도 알고 있을 거기 때문에 서로 수고했다 잘했다 해주고 싶네요."
국가는 달랐지만, 같은 선수로서 얼마나 힘들게 훈련해왔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선수 생활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이 이럴 거다 저럴 거다 쉽게 얘기할 수 없죠. 이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두 번의 올림픽, 두 번의 눈물]
2010년 밴쿠버 올림픽과 2014년 소치 올림픽. 김연아는 두 번의 올림픽에서 모두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도 이 눈물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전 경기 끝나고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올림픽 끝나고도 눈물을 흘릴 거라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정말 끝남과 동시에 눈물이 터져서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안도의 눈물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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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의 기대 속에 출전한 밴쿠버 올림픽. 김연아는 사실 너무나 기다리고 간절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그만큼 너무 아닌 척했지만 간절했고 이 순간을 너무 기다려 왔는데 이제 잘 경기를 끝냈고 결과 이제 예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안도의 눈물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한 번에 터뜨린 게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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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치 올림픽이 끝난 후 흘렸던 눈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일단, 분노의 눈물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소치 올림픽 때는 경기 끝나고는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고 인터뷰 때 그렇게 했는데, 많은 분들이 또 그때 경기 결과에 대해서 분노를 하셨기 때문에 그 결과가 막 억울하고 분해서 울었다고 많이 해석을 하셨는데 저는 아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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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너무 많은 힘든 과정들을 제가 겪었고 사실 이미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그 이상 더 좋은 결과를 낼 수가 없는데 그리고 그만한 힘도 남아있지 않았고 동기가 없는 상태에서 올림픽이라는 굉장히 큰 데 서는 거여서 두 번째 올림픽을 가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도 굉장히 많이 흔들렸어요.
중간에 포기할까도 정말 생각을 많이 했고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20대 중반을 향해서 가는 게 사실 어린 나이지만 선수로서는 좀 체력도 많이 저하되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보니까 드디어 끝났다는 어떤 참아왔던 그 감정들이 한 번에 터진 그런 눈물이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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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를 가장 행복하게 했던 말]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선수인 만큼 김연아에겐 많은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퀸연아, 연느, 피겨퀸 등이 대표적입니다. 김연아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수식어는 무엇일까요.
"말씀하신 그런 멋있는 표현들도 있지만, 팬분들이 하셨던 말씀 중에 빙상 얼음 위에서 귤만 까먹어도 좋다고, 이제 스케이팅을 하지 않아도 귤만 까먹어도 행복하다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어요.
그냥 장난으로 한 거지만 그 의미는 제가 어떤 선수든 실패를 하든 실수를 하든 성공을 하든 제가 스케이팅을 하는 얼음 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제 좋아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그런 마음이 담겨 있는 말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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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에게 피겨란 어떤 의미일지 물었습니다.
"다섯 글자로 한다면 '애증의 관계', '애증의 피겨' 이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나를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지만 또 이만큼 날 기쁘게 할 것도 없었다는 느낌. 일을 사랑하지만 또 막 일 때문에 힘들기도 하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애증의 관계가 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자신의 피겨 인생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일까.
"저는 백 점 줘야 할 것 같아요. 더 제가 그 이상을 할 수도 없었고, 선수로서 일단 단순 성적으로 봤을 때도 베스트를 해줬기 때문에 100점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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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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