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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5 (토)

계엄이라고? 아차, 이제 블랙코미디는 끝났구나!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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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근처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집회에 참가한 이들이 내란 우두머리에 대한 즉각 파면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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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미가 블랙코미디인 작가에게 계엄은 치명적이다. 솔직히 계엄 사태가 터진 직후에는 이제 문학에서 5(6)86 세대 비판은 끝났구나, 생각했다.”



소설가 이미상의 고백이다. 부모뻘인 86세대의 위선과 타락을 아이러니와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비판한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2022)의 작가에게 뜬금없는 계엄이 초래한 부수 효과가 이러하다. 선과 악의 미묘한 경계, 선을 가장한 악과 악을 내장한 선을 신랄하게 까발리는 데에 특장을 보여온 그로서는 자명하기가 대낮 같은 절대 악과 절대 선의 대립 구도가 반갑지만은 않았을 테다. 이어지는 그의 한탄의 말을 들어 보라.



“절대 악 앞에서 어떤 공간이 있고 복잡성이 있는가. 어떻게 아이러니가 가능한가. (…) 계엄령 앞에서는, 나부터도 윤석열 탄핵과 내란죄 처벌을 위해 하나의 전선이 되어 일단 이것부터 치워야 한다고 자꾸 생각하며 스스로를 향해 ‘정신 차려!’ 외쳐야 했다.”



이미상을 비롯해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15명이 계엄에서 탄핵으로 나아가는 사태를 보고 겪으며 적은 글들이 한데 묶여 나왔다. 계간지 ‘문학과사회’ 봄호가 ‘탄핵-일지’라는 이름으로 발행한 별책 부록 ‘문학과사회 하이픈’이 그것이다. 2024년 12월3일 계엄 선포부터 원고 마감 시점인 올해 1월 말까지 작가들의 경험과 생각이 담겼다.



문학과 사회 149호: 2025 봄(본책 + 하이픈) l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편저, 문학과지성사,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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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는 계엄령을 접한 작가들의 첫 반응은 모멸감과 수치심, 분노 등이었다. “농락당한 느낌이었다. 모멸감이 몰려오고 수치스러웠다.”(소설가 김이설) “악몽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신체적으로 무기력했고 정신적으로 피로했다.”(문학평론가 소영현) “무기력했고 비관주의에 빠져들었다.”(소설가 손보미) 광주 출신으로 중학생 때 5·18을 겪은 문학평론가 김형중은 “몸 깊은 데서 생각보다 먼저 불수의적으로 튀어나오는 공포”를 맛보면서도 유치찬란한 포고령을 보면서는 “공포 속에서 또 웃어버리고 말았”노라고 쓴다.



1980년 5월 이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줄 알았던 계엄령이 40여 년 만에 엉뚱하게 부활한 데 대해서는 기이하고 우스꽝스럽다는 반응이 많았지만, 그런 사태를 예상했다는 이도 없지 않았다. 계엄령 선포 소식을 접하고도 위기감보다는 “어떤 예단이 맞아떨어질 때의 쾌감이 우선했다”는 소설가 김기태가 대표적이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겼던 사람이 정말 제정신이 아닌 짓을 하면 손뼉을 치며 외치고 싶어지는” 법이라며 그는 자신의 그런 반응을 ‘길티 플레저’로 설명한다. “그가 정상인이 아닌 것 같다는 예전부터의 의심이 확신이 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김형중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시인 임유영 역시 “그 바보가 이 정도로 멍청했다고?”라면서도 “어쩌면 내 무의식 어딘가에선 이런 미래를 이미 감지했었는지도 모른다. (…) 드디어 올 것이 왔으며 우린 이제 끝났고 각오해야 한다”는 말로 터무니없는 예감의 현실화 쪽에 손을 들어 준다.



“포고령이 생경했다. 그중 출판을 통제한다는 말에 내일부터 일을 할 수 없는 건가 싶었다.”(시인 서효인)



“지금 쓰고 있는 단편을 실을 지면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그다음, 원고를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지나고 원고를 완성하지 못할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우선 마무리해야 한다.”(소설가 황정은)



문인들인 만큼, 계엄이 현실화할 경우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칠 영향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시를 쓰며 출판사를 운영하는 서효인, 아마도 문예지의 청탁을 받고 단편소설을 마감 중이었을 황정은에게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계엄 포고령은 생활과 생존의 문제로 다가왔을 것이다. 문인들이란 글을 쓰는 존재이고 그에 못지않게 책을 읽는 이들인데, 계엄 이후 이들은 평소처럼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수가 없었노라고 하소연한다.



“2주 동안 뉴스 속보를 따라잡고 정치 유튜브를 시청하느라 책과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이미상)



“쓰기와 읽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황정은)



“그러는 동안 무엇도 쓰지 못했고, 쓰기의 근육을 차츰 잃어가는 듯한 느낌에 휩싸여 종종 무력해졌다.”(시인 송희지)



“비상계엄 이후 도서 판매가 급감했다”(서효인)는 관찰에 이르면, 저들의 책과 독서 말살 정책의 최종 병기가 바로 ‘뜬금 계엄’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기까지 한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김수영을 생각”하고 “김혜순을 읽어야겠다”(시인 김복희) 다짐하는 모습이 갸륵하다. 글을 사랑하고 문자를 신성시하는 문인들 특유의 결벽증(?)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여기까지 쓰는 데도 대통령의 이름을 쓰지 않기 위해 몇 줄을 지웠다”(소설가 박솔뫼)라거나 “그 이름과 그 이름에 붙은 직책을 활자로 적고 싶지 않아”(소설가 김멜라) 다른 호칭을 고민하는 데에서는 사랑하는 모국어를 그자의 이름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읽힌다.



“임시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안이 8분 만에 의결되었다. (…) 공수부대의 폭력적인 진압이 시작되었다. (…) 최초의 사망자가 발생했다.”(서효인)



이것은 물론 현재형 계엄에 관한 서술은 아니다. 서효인은 1980년의 계엄과 지금의 계엄을 ‘교차 기록’(글 제목)하는 방식으로, 미완에 그친 계엄의 끔찍한 가능성을 고발한다.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용산에서,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많은 이가 죽었을 것이다.” 황정은이, “광주는 어떻게 견뎠을까. 1980년 이후로 그 혐오와 오욕을”이라며 새삼 80년 5월 광주를 호명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장 밤이 길었던 동짓날, 강추위에 떨며 자리를 지켰던 시위대를 향한 부채감”(김멜라), “키세스 시위에 함께하지 못해서 빚진 마음”(김이설)을 다수의 여성 문인이 토로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내란 우두머리의 석방 이전에 쓴 글들이라서인지 사태의 결말에 대해서는 낙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들이 무슨 발광을 하건 탄핵은 인용되리라 생각한다”(김형중)는 예측과 “느리지만 옳게 나아가는 중이다”(김복희)라는 판단을 믿고 싶지만, 일말의 불안감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떨치기 어려운 날들이다. “복제 윤석열과 변종 윤석열은 예비되어 있다”(김기태)라거나 “계엄 이후가 더욱 두렵다”(이미상)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럼에도 문인들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어디까지나, 쓰는 존재. “나는 쓸 것이다. 계속”(송희지)이라는 다짐을 그래서 응원하고 싶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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