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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화)

지하철역서 쓰러져 울 때…낯선 여성이 꼭 안아주었다[인류애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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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 찾아 주저앉은 대학생에게 다가가 "괜찮아요?" 병원 함께 가고 밥 사준 50대 여성
시집 사이에 끼워둔 편지엔 "가슴 시리도록 예쁘고 귀한 사람"이라고
"최악이었을 하루를 가장 따뜻하게 만들어준 건, 처음 보는 '타인'이었다"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기사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사진./사진=머니투데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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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신경이 따끔거리고 사람 냄새가 짙게 느껴졌다. 대학생 샛별씨(가명)의 감각이 곤두섰다. 온몸이 통제를 벗어날 듯한 불안이 엄습했다. 지난 1월부터 심해진 불안장애. 증상이 시작되면 멈추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

하필 사람 많은 지하철 안이었고 병원에 가던 길이었다. 한 정거장을 남기고 바삐 내려야 했다.

샛별씨는 사촌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조언을 구하려 했다. 목소릴 듣자마자 불안장애 증상(공황)이 더 심해졌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쉬기 버거워졌다.

아무 말도 못 하고 헉헉거리고만 있었다. "일단 근처 벤치에 가서 앉아 있어." 사촌 언니 조언대로 힘겹게 몸을 옮겼다.

오가는 많은 이들 사이에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그런 일은 아주 처음이었다. 짧고 가쁜 숨에 의지하면서도 행인들 시선이 너무나 두려웠다. 꾸미지도 않고 누추한 것 같아 더 그랬다. 모든 이들이 그를 보는 것 같았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였다. 낯선 이가 다가와 그에게 물었다.

"학생 괜찮아요? 119 불러줄까요?"


수 분간 꼭 안아준 아주머니…비로소 진정되었다

기사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사진./사진=머니투데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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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니 체구가 작고 마른, 50대 정도 돼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염려하는 눈빛이었다. 조심스레 곁에 들어온 이는 물도 주고 약이 있는지, 어디 가는 길이었는지 물었다. 병원에 가고 있었다고 하니 함께 가주겠다고 했다. 역 한 정거장만 가면 되니 괜찮다고 했으나, 아주머니는 같이 걸어주었다.

샛별씨는 순간 그가 엄마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주머니도 고등학생 딸이 있다며, 그가 딸 같다고 말했다. 샛별씨는 저도 모르게 아주머니에게 이리 요청했다. 너무 무섭고 불안해 견딜 수 없어서였다.

"죄송하지만…혹시 잠깐만 안아 주실 수 있을까요?"

그날 처음 본 이는, 샛별씨를 주저 없이 꼭 안아 주었다. 그러면서 토닥토닥, 다독여주었다. 그러면 다 괜찮을 거란 듯. 그 품이 압도적으로 따뜻해 가쁜 숨마저 진정이 되었단다. 그게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다고 했다. 이미 두 달이 지나 회상하던 말에도 고마움을 머금은 울음이 다시 섞였다.

기사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이해를 돕기 위해 생성한 사진./사진=머니투데이 자료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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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함께 가는 길. 짧은 한 정거장을 이동하는 동안, 아주머니는 그와 함께했다. 지하철 노약자석에 샛별씨를 앉힌 뒤 "친구가 몸이 안 좋아서 양해를 구할게요"라고 대신 말해주기도 했다. 걸어가는 동안에도 샛별씨의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주었다. "아줌마라 이런 거 잘 들어요"라 웃으며.


병원도 기다려주고…나무엽서 선물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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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가 샛별씨에게 선물한 나무 엽서들. 나무 사진가인 이열 작가의 '남도 나무' 사진전에 전시됐던 사진이다. 이 작가는 "제 나무 사진이 학생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길 바란다"고 전해왔다./사진=샛별씨 제공


병원 예약이 늦어졌다. 두 사람은 함께 의자에 앉아 진료를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그날 마침 전시회에 다녀왔다며 나무가 그려진 엽서를 잔뜩 보여주었다. 나무를 좋아한다고, 나무를 보면 맘이 편해진다고. 그러니까 선물로 주고 싶다고, 샛별씨에게 엽서를 골라보라고 했다.

밤하늘 아래 놓인 초록 나무가 멋있어서, 샛별씨는 그 엽서로 골랐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밝은 나무가 있는 엽서를 선물로 더 주었다. 밝은 무언가를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던 것 같았다.

샛별씨도 아주머니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단다. 한껏 움츠러들었던 시절, 친한 동생이 "시를 보며 언니 생각이 났다"고 선물해준 소중한 시집이 있었다.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그걸 선물해주고 싶단 말에도, 아주머니는 사서 읽겠다며 책을 돌려주었다.

병원 진료를 마친 샛별씨에게, 아주머니는 닭 한 마리 식사를 사줬단다. 많이 먹으라고, 다정히 챙겨주었다고./사진=샛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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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나온 뒤 함께 밥을 먹게 됐다. 샛별씨는 아주머니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닭 한 마리가 유명한 집으로 가서 이런저런 얘길 나눴다. 밥을 결국 산 이 역시 아주머니였다. 그는 먹고 싶은 것 다 시키라고, 더 먹으라며 다정하게 챙겨주었다. 그러면서 자기 딸 얘기를 했다.

"학교에서 연락이 온 뒤에야 알았어요. 딸이 그동안 그토록 힘들어하고 있었단 걸요. 너무 충격적이었지요. 온 마음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샛별씨에게, 절박했던 딸의 모습이 겹쳤던 걸까. 아주머니는 이리 말했다. 샛별씨를 그날 도와주지 않았다면 평생 후회했을 거라고. 도와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시집에 껴 있던 손 편지…"가슴 시리도록 예쁘고 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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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씨가 선물하려던 시집. 이를 다시 돌려주며, 아주머니는 손편지까지 껴두었다./사진=샛별씨 제공


기도해주고 싶단 말과 함께, 샛별씨와 아주머니가 함께한 특별한 시간이 저물었다. 아주머니는 끝까지 이리 따뜻한 당부를 했다.

"나중에라도 힘든 일 있을 때, 부모님께도 얘기 못 할 때, 털어놓아도 괜찮으니 연락해요. 언제든 힘이 되어주고 싶어요."

헤어진 뒤 샛별씨는 시집 사이에 껴 있던 아주머니의 손편지를 발견했다. 노트를 북 찢어 한 자씩 써 내려간 거였다. 그가 남긴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아주머니가 샛별씨를 위해 써준 손편지./사진=샛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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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가 아름다운 친구에게.

호흡이 어려울 정도로 힘든 순간에도 진료 예약 시간을 잊지 않고 연락하려던 모습. 가슴이 시리도록 예쁘고 귀해요.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어린 마음속 모든 아픔을, 그 순간 마술사가 되어 거짓말처럼 지워드리고 싶단 생각을 했어요.

저도 20대 때는 많이 어둡고 방황하기도 했었어요. 이제 50대가 되니 세상을 많이 편하게 바라보게 되네요.

까마득한 세월에 짓눌리지 말기를, 내일이 더 좋아지리라 막연히 기대를 가져도 좋아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기다리는 건 우리 몫이잖아요.

조금은 이기적으로, 자신을 우선으로 돌보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나 이모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위로하고 싶습니다.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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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씨가 아주머니에게 보낸 답장./사진=샛별씨 제공


샛별씨도 긴 글을 써서 답장을 보냈다.

"수 분간 절 안아주시며 다독여 주셨을 때, 마음이 녹아내렸고 또 용기가 차올랐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이, 어떻게 제게 그리 친절하고 다정하게 도움을 주실 수 있으셨나요. 저도 선생님을 위해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을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악의 하루가 최고의 하루로…힘든 순간에도 누군가가 있어 주어서

곁에는 늘 도와주려는 이들이 있어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샛별씨가 말했다. 샛별씨가 다니는 학교의 교수님이 힘들어하던 그에게 써준 글./사진=샛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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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까매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준 낯선 사람. 그날 처음 본 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전한 환한 마음은 샛별씨의 삶에도 짙은 여운을 남겼다. 마치 '신이 보내준 천사'인 것 같았단다.

그로 인해 그의 삶과 생각에도 바뀐 게 있다고 했다. 오직 한 사람의 다정함으로 인해.

"극심한 공황의 공포로만 기억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최악의 하루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멋진 최고의 하루일 수 있단 게, 제 인생에도 큰 의미였어요. 힘든 순간에도, 다른 사람이 곁에 있음으로 제게는 좋은 날이 될 수 있단 게 말이죠. 다짐했어요.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 나도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고."

한때 우울증이 심할 땐 그런 생각도 했단다. 나조차도 날 좋아하지 않는데, 누가 날 좋아해 주겠느냐고. 조건 없는 따뜻한 마음. 호의를 베풀어주고 그를 위해 기꺼이 기도해준 사람이 있단 것. 그냥 그게, 아주 큰 마음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홀로 아무것도 못 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을 때, 보고 싶단 말에 한 번에 달려와 준 친구도. 말도 못 하고 눈물만 흘리며 전화할 때에도 끊지 않고 계속 들어준 친구도. 시험 보다가 불안하고 힘들었을 때, "두려움이 나의 삶을 방해하지 못 하도록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이 멋집니다"라고, 따뜻한 말을 적어준 교수님도 있었다. 그들 모두에게 전하고픈 말이 있다고 했다.

"도움 받았던 일들이 계속해서 마음에 남아 있어요. 그 기억으로 또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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