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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8 (화)

모조품으로 상표 등록까지… 짝퉁 성지된 동대문 새빛시장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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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역사 주변 천막 우후죽순

새벽 2시까지 야시장 열고 ‘북적’

가방·시계… 유명브랜드 마구 베껴

구매 위해 지방서 상경한 손님도

‘짝퉁’ 해마다 2000건 이상 적발

일부제품 특허 등록돼 처벌 난항

국제사회 무역상 불이익 우려도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위는 날이 어두워지자 노란색 천막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늦은 시간이면 한산해지는 주변과 달리 노란 천막에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사람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짝퉁 성지로 불리는 새빛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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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새빛시장’엔 명품을 흉내 낸 짝퉁 물건들이 사고팔린다.


새벽 2시까지 열리는 야시장에는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을 베낀 가방부터 옷, 시계 등이 잔뜩 쌓여있다. 외국인에게도 익히 알려져 늦은 시간에도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기도 한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은 당시에는 한 관광객이 100만원이 넘는 명품 지갑의 ‘짝퉁’을 5만원에 샀다면서 웃었다.

지난해부터 경찰과 지방자치단체, 특허청이 나서 새빛시장의 명품 거래에 대한 합동 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상인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간을 심야로 조정하며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상표까지 등록한 짝퉁 제품이 버젓이 판매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짝퉁 거래로 ‘저작권 위험국가’라는 오명이 각인되고 있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이곳을 찾는 이유로 저렴한 가격을 꼽았다. 실제 동대문 일대와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지하상가 등에는 정가 335만원 상당의 명품 백팩과 유사한 제품이 3만∼2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인 셈이다.

짝퉁이 상표로 등록된 경우도 17일 확인됐다. 패턴과 디자인이 한 명품과 비슷한데 브랜드 이름만 살짝 바꾸고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하는 식이다. 상인들은 명품을 흉내 낸 상품이지만 상표로 등록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단 입장이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상인 A씨는 “비슷한 디자인이나 패턴이어도 상표만 다르면 사고파는 데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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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지구대 경위는 “가품 여부 파악 등 단속 자체가 어려운 것도 있다”면서 “유사한 로고를 특허청에 등록해 둬서 상표법 위반으로 신고해도 처벌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유관 기관의 합동 단속에도 짝퉁 시장 규모는 여전히 크다. 특허청 통계를 보면 위조상품으로 단속해 형사 입건하거나 시정 권고한 건수는 2021년 2458건, 2022년 2259건, 2023년 2092건이다. 감소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해마다 2000건 이상 적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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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저렴한 가격에 명품과 유사한 물건을 살 수 있다’는 유혹에 짝퉁을 찾는 소비자가 적잖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울산에 거주하면서 주말이면 서울에 올라와 쇼핑한다는 20대 여성 정모씨는 “가품을 정식으로 판매할 수 있다면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넓어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짝퉁 천국’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면 국제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 2008년까지 매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정한 ‘우선감시대상국’ 또는 ‘감시대상국’이었다. USTR은 자국의 상표권 등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침해한 나라를 조사하고 필요한 무역상 보복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글·사진=윤준호·소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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