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규(국제시사문예지 PADO 편집장) |
이제 국민이 왕이다. 명실상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국민이 폭군이 되면 어떻게 되나. 사서나 사극에서 간신이 왕에게 솔직한 고언(苦言) 대신 감언(甘言)만 들려주면서 왕의 호의를 얻는 장면을 자주 접하는데 그럴 때마다 왕과 간신을 욕한다. 쓴 것보다는 단 것을 좋아하는 게 인지상정일진대 국민이 그런 왕보다 잘 처신할 수 있을까.
현대의 정보기술(IT)은 '알고리즘'이라는 간신을 개발했다. 눈치가 100단이라 사용자의 선호와 취향을 기가 차게 알아채고는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골라 내놓는다. 알고리즘의 눈치가 빠를수록 사용자들은 그 앱이나 사이트를 자주 방문하고 그 앱이나 사이트의 개발자는 큰돈을 번다. 우리는 왕에게 직언하는 신하를 '충신'이라고 부르면서도 우리 자신의 눈과 귀에 거슬리는 콘텐츠는 피한다. 이렇게 국민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폭군이 돼가고 간신에게 둘러싸여 즐거워하다 우연히라도 충신을 만나면 역정을 내고 피한다. 정보기술이 만든 가상공간 역시 폭군이 충신을 피하기 좋게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였다. 몸소 물리적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면 동네에서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시내 서점에서 다르거나 낯선 생각이 담긴 책을 우연히 만나기도 하고 신문가판대에서 평소 안 읽는 신문의 낯선 헤드라인을 우연히 만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 밖에 존재하는 낯선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가상공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의견과 사람으로만 가득하다. 소셜미디어의 '친구'들은 의견이 비슷한 사람뿐이고 반대되는 의견을 밝히거나 '눈에 거슬리는'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은 '빛의 속도'로 '폐친'(廢親·de-friend)해버린다. 또 정보기술의 세례를 많이 받은 세대일수록 물리적 공간보다 가상의 공간을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젊은 세대일수록 운전면허증을 안 따고 차도 구입하지 않는다.
국민이 폭군이 돼간다는 또 다른 징후는 대의제를 완전히 무시하고 '모든 것을 직접 결정'하려는 '직접민주주의 과잉' 경향이다. 어느 자동차회사의 CEO가 자신도 관심이 많다며 신차의 설계와 디자인 모두에 직접 개입하려 한다면 제대로 된 자동차가 나올 수 있을까. 수많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오랫동안 쌓은 전문성을 가지고 신차를 개발한다. CEO는 최고책임자로서 최종적으로 올라온 신차 설계도 및 디자인 도안 후보 몇 개를 보고 견해를 밝히거나 가부(可否)를 결정하면 된다. '나도 다 알아' 식의 오만함으로 실무단계부터 개입해서 가타부타하면 디자이너, 엔지니어들은 맘 놓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CEO의 권력이 무섭기 때문이다. CEO는 그래서 말을 아껴야 하고 귀가 열려야 하며 최후의 순간에 결단해야 한다. 그런데 권력을 쥔 국민이 국회나 전문가들이 차분히 논의하는 것조차 인내할 수 없어 미리 내린 결론을 통보하면서 이탈하지 말라고 압박한다면 숙의(熟議) 자체가 불가능하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국민이든 똑같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는 감언과 간신만 찾는다면 '폭군'이 된다는 것은 역사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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