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밸류업공시 비교해보니
韓 실적자료 '복붙'···내용도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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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가증권 시장(코스피)에 해당하는 일본 프라임 시장 상장사 90%가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밸류업 정책 발표 1년이 지나도록 공시 참여율이 10% 수준일 뿐만 아니라 분량 채우기에 급급할 정도로 내용도 충실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프라임 상장사 1635개사 가운데 1488개사(91.0%)가 일본판 밸류업인 ‘자본 비용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 실현 방안’을 공시했다. 도쿄증권거래소가 2023년 3월 자율 공시를 요구한 지 2년 만에 참여율 90%를 넘어서면서 사실상 표준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코스닥 시장과 비교되는 스탠다드 시장의 공시 참여율도 49%까지 확대됐다.
프라임 상장사 433개사, 스탠더드 상장사 57개사는 기존 공시를 업데이트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한 일회성 공시에 그친 것이 아니라 꾸준히 피드백을 제공하면서 지속적인 기업활동(IR)을 진행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노력을 바탕으로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일본 종합상사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외국인 자금 유입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수십 쪽의 발표 자료를 내고 투자자에게 적극 설명하는데 한국 기업들이 낸 밸류업 공시는 내용이 충분하지 않아 너무 비교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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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외국인 대주주를 둔 코스피 상장사는 밸류업 자료 절반을 현황 분석으로 채웠다. 배당 성향을 2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고 어떻게 투자자와 소통하겠다는 것인지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른 코스피 상장사는 밸류업과 큰 연관이 없는 주요 연혁이나 종속기업 현황을 써놓았다. 정부의 규제를 단순 나열하고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채운 상장사도 있다.
코스닥 시장은 밸류업 참여율이 1%인 만큼 공시에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지를 평가할 수 있지만 내용은 분명 아쉽다. 코스닥의 한 상장사가 낸 밸류업 공시의 경우 프레젠테이션 9장 가운데 기업가치와 관련된 분량은 2장뿐이다. 이마저도 배당, 자사주 매입, 무상증자 등을 해왔고 앞으로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성의 없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정부는 당초 투자자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형식적인 공시만 반복되는 셈이다. 정부가 밸류업 가이드라인을 통해 주요 재무지표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기업 스스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핵심 지표를 선정한 뒤 중장기적인 목표를 세우라고 구체적으로 제시했으나 이를 따른 곳이 거의 없다. 밸류업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의 메시지를 담은 곳도 없다. 기업·산업마다 자본 활용 방안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배당을 확대하겠다는 일률적인 대책만 반복되는 것도 문제다. 정작 투자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충분하게 제공하지 않은 채 프레젠테이션 꾸미기 대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됐다는 평가다.
일본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미쓰이화학은 120장이 넘는 보고서를 작성해 CEO 메시지부터 충실하게 담았다. 투하자본수익률(ROIC)을 2022년 5.4%에서 2025년 7% 이상, 2030년 8%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ROIC 개념 설명부터 왜 높이고자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쓰비시상사는 공시를 통해 주주들과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최고주주활동책임자(CSEO)를 임명하겠다는 내용을 담아 경영 투명성을 높였다는 극찬을 받았다. 스미토모임업은 경영진의 보상을 기업가치와 연계함으로써 주가 향상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인쇄 서비스 스타트업 라쿠스루(92장), 석유화학 업체 이데미쓰고산(65장), 기계 제조 업체 에바라(37장) 등 기업 규모나 산업 구분 없이 대다수가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내용을 충실하게 담았다. 영문 공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본이 한국보다 밸류업 공시를 먼저 시작했지만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은 주가나 자본비용에 대한 기업과 경영진의 이해 부족이 크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C레벨 단계에서 자기자본이익률(ROE)나 총주주수익률(TSR) 등 각종 재무지표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일본이 한국보다 선진 시장인 만큼 기업의 분석 능력이나 소통 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초기 단계인 만큼 밸류업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반응도 나온다. 밸류업에 진정성을 갖고 충실하게 공시를 하는 국내 기업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연 법무법인 광장 연구위원은 “일본은 미국에 가까운 선진 시장이고 시장 참여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만큼 기업들이 적극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 시작 단계라 1년 만에 달라지기는 어렵지만 경영진이 분명 신경을 쓰고 있는 만큼 장기적인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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