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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금)

[고영의 문헌 속 ‘밥상’]바다와 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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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연구의 선구자 방신영(1890~1977)은 어회와 어채로 대표되는 조선식 회 조리법을 설명하며 “절기에 따라 있는 생선들로 하느니”라든지 “절기를 따라 하느니” 하는 말씀을 남겼다. 방신영의 시대에는 웅어·병어·도미·민어·숭어·가오리·상어·조개 등이 회 상차림과 수산물을 쓴 일품요리에 요긴했다. 냉장과 냉동 시설이 미미하던 시절이었다.

이보다 앞선 시기에는 어땠을까? 18세기에 편찬된 <증보산림경제>를 펼치면 이렇다. 숭어는 음력 8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즐길 만하다. 다른 때는 맛이 없단다. 농어는 봄가을에 먹으란다. 여름에는 기름이 너무 올라 별로란다. 홍어는 진달래 필 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끓는 물 부어 홍어 표면의 점액질을 제거한다든지 살을 떠 된장물에 데쳐 먹는 방법을 소개했다. 대구는 겨울에 잡아 말린 반건조 대구를 제맛으로 쳤다. 또는 음력 3월 조기, 4월 도다리나 넙치, 5월 준치, 6월의 송어·연어알·전복, 7월 숭어, 8월 민어, 9월 농어, 10월 이후의 명태를 전국적으로 거래하는 이야기가 묘사된 문학작품도 전해온다. 조선의 미식가들은 음력 3월에 하구에서 잡은 복어를 먹다 죽어도 여한 없을 만한 진미로 손꼽았다.

이러나저러나 오늘날 한국인의 수산업과 소비에 비추어 모두 사뭇 다른 감각이다. 당연하다. 바닷속 환경의 변화는 역사적으로도, 지금 당장만 해도 함부로 아는 체할 수 없을 만큼 복잡다단하다. 수산업의 현장은 하구와 연안을 넘어 원양으로 넓어졌다. 대체로 물고기 등 수산물은 산란방정을 앞두고 살지고 기름져 맛이 좋게 마련이고, 산란방정 직전에는 알집과 이리에 양분이 집중되어 맛이 떨어진다고들 하지만, 대체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구에서 원양에 이르는 물속의 생태환경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한 어패류의 산란방정 시기마저 일도양단하기 어렵다. 또한 한반도 해역 곳곳, 지역 곳곳 사람들의 수산물 기름기와 질감에 잇닿은 기호와 선호가 각각이다. 바닷가와 내륙의 생활 감각과 소비 방식이 딱 맞아떨어질 수도 없다.

이러나저러나 봄 같잖아도 봄은 왔다. 계절은 늦봄을 건너 여름의 입구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새 바다는 분주하다. 그래도 어물전에는 새벽에 포구에 부린 ‘국민 생선’ 고등어가 보인다. 고등어와는 또 다른 고소함과 개운함을 뽐내는 전갱이도 보인다. 깨끗한 가운데 운치 있는 풍미가 일품인 서대와 박대도 보인다. 서남해역 사람들이 5월을 제철로 치는 군산과 목포 바다의 병어도 이미 날 데려가라고 장바구니 든 사람들에게 아우성이다. 어물전 앞에서 독자 여러분께 굳이 여쭌다. 먹방이 쥐어짠 제철과 억지 제철 수산물에 너무 기대지 마시라. 겨울 대방어, 여름 민어 때문에 너무 허둥대지 마시라. 가짜 계절감쯤 웃어넘기시라. 제철 하면, 계절 하면 부디 저마다의 추억을 먼저 떠올리시라. 고향으로 생각을 돌리시라. 살아오며 내 몸에 아로새긴 저마다의 생활과 실감 속에서 이즈음의 수산물, 계절의 먹을거리를 건져 올리시라. 억지 제철에 넋 놓고 있는 사이에 올해의 봄날도 어느새 속절없이 사라지고 없을 테다.

경향신문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고영 음식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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