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리투아니아-독일 국제 군사훈련 ‘그랜드 쿼드리가 2024’에서 훈련 중인 독일군 모습.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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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까지 거론하며 나토에서의 미국 역할 축소를 주장하는 가운데, 유럽 주요국들은 향후 유럽이 미국의 책임을 대신할 수준의 독자적 안보방위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미국이 나토에서 졌던 재정·군사적 부담을 향후 5∼10년 동안 유럽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및 북유럽 국가들이 비공식적이지만 체계적인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오는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나토 정상회의 전에 미국에 제시한다는 복안이다. 유럽의 구상은 미국이 나토에서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시나리오를 대비하는 차원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짚었다.

이들의 계획엔 유럽이 국방비 지출을 늘리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확고한 공약이 포함된다. 안보 전략의 무게추를 유럽에서 아시아로 전환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점진적인 권한 이양에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문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 억지력을 제외하고 유럽의 역량을 미국을 대체할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면 5∼1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신문에 “지출 증가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대화를 시작하고 있지만, 정말 큰 일이라 많은 이들이 그 규모에 압도됐다”고 했다.

미국은 유럽에 나토 조약 5조(동맹국 중 한 곳이 공격받으면 모든 동맹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에 따른 집단방위를 약속하고 있지만, 유럽의 신뢰는 크지 않아 보인다. 여러 유럽 국가는 백악관이 병력이나 장비 배치를 축소하고, 나토 공동 임무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위해 군 파견을 논의하는 ‘의지의 연합’도 미국을 제외하고 대화가 진행 중이란 점에서 유럽의 독자적인 군사적 역할 구상은 이미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나토 안에서도 미국의 역할이 줄거나 거의 없는 상태로 동맹을 유지하는 것이 아예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륙 방위와 목표 능력, 규칙, 나토의 지휘구조 및 조약 5조 등을 다시 만들거나 협상하는 것보다 낫다는 의미다.

지난 13일 미국 백악관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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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블룸버그 통신은 나토가 유럽 동맹국과 캐나다에 무기 및 장비 비축량도 30% 늘리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5∼15년 소요될 이 목표 또한 유럽과 캐나다의 방위력을 강화해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인다는 목적이다.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의 3% 이상으로 올려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 설정된 나토의 군사력 목표를 대체할 새 목표 개발도 논의 중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6월 초 열릴 국방부 장관 회의에서 이를 채택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유럽의 자체 역량을 키운다고 해도, 정보 공유와 정찰, 핵잠수함 등 첨단 분야에서 미국의 역할은 여전히 핵심적일 것이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전했다.

현재 미국은 핵 억지 능력과 더불어 유럽 내에 운영하고 있는 공군과 해군 기지 등에 약 8만4000명의 미군을 주둔한 상태다. 국가별로는 지난해 기준 독일(3만5068명), 이탈리아(1만2375명), 영국(1만58명), 스페인(3292명) 등의 순으로 미군 병력이 배치돼 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등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국방비 증강에 힘쓰고 있지만, 이탈리아는 국가부채 부담으로 방위비 확충에 소극적이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