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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토)

남을 베끼던 중국, 이젠 “남이 베낄라” 겹겹 방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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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중국 상하이에서 개막한 '2025 상하이 글로벌 공작기계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로봇 시연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국내외 1200여 곳의 기업이 참여해 전기차, 전자장비, 항공장비 등 첨단 산업 맞춤형 제조 솔루션을 선보였다./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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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첨단 AI(인공지능)와 맞먹는 수준으로 알려져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중국 ‘딥시크(DeepSeek)’ 직원들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최근 출국 금지령을 내렸다고 알려졌다. 테크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소식통을 인용해 “딥시크 연구원들이 여권을 당국에 압수당해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졌다. 딥시크 직원에게 이직(移職) 제안을 한 중국 헤드헌팅 회사는 당국으로부터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전했다. 딥시크 관련 기술이 미국 등 다른 국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조치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이 중국에서 국가 원수급의 경호를 받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딥시크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베이징의 테크 업계 소식통은 “지난 1월 딥시크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후 프랑스 파리에서 2월 열린 ‘AI 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하려던 량원펑의 출국 일정이 취소됐다. 량원펑 보호를 위해 비행기 탑승까지 통제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월 이후 량원펑이 모습을 드러낸 공개 석상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창 총리가 각각 개최한 좌담회가 전부였다.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트럼프 1기(2017~2021년) 이후 이어진 대(對)중국 기술 봉쇄에 대응해 중국이 첨단 기술 자체 개발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기술 탈취국’으로만 여겨졌던 중국이 이제 기술 유출 방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최상급 첨단 기술 개발을 달성한 기업들이 배출되면서 오히려 중국의 산업 정보가 미국 같은 경쟁국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차단하고 나선 모습이다.

중국 정부는 미국 대표 전기차 회사 테슬라를 누르고 3년 연속 전기차(하이브리드차 포함) 세계 판매 1위에 오른 중국 기업 BYD의 멕시코 공장 설립 계획 승인을 미루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 19일 보도했다. FT는 “BYD의 첨단 기술이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유출될 가능성을 걱정해 취해지는 조치”라고 전했다. 라이다(LiDAR·자율주행용 영상 센서) 세계 점유율 1위인 상하이의 허사이는 내년 첫 해외 공장 가동을 앞두고 핵심 부품을 모두 중국에서 생산한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업계 관계자가 20일 말했다. 허사이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어느 나라에 공장을 설립하는지도 비밀에 부치고 있다.

◇1만㎞ 양자 통신, 공중돌기 로봇 … 세계 최대·최초 휩쓰는 중국

트럼프는 1기 때부터 중국에 대한 ‘기술 봉쇄’를 밀어붙였고 2021년 트럼프를 이기고 대통령에 취임했던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정부도 이런 기조를 이어갔다. 첨단 부품·기계 수출을 막아 중국을 고사(枯死)시키겠다는 계획은 하지만 역풍을 불러와, 오히려 중국 지도부가 총력전을 펼치는 형국의 기술 자립 굴기(崛起)를 촉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중국 기업은 이미 드론(대표 기업 ‘DJI’), 전기차(BYD), 배터리(CATL), 로봇 개(유니트리), 통신 장비(화웨이) 분야에서 세계 선두에 올라섰다. AI 스타트업 딥시크와 더불어 알리바바 등 기존의 빅테크 기업들까지 지도부의 지원 아래 AI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그동안 뒤처졌다고 여겨졌던 AI와 첨단 반도체 분야까지 미국을 바짝 따라붙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중국 AI의 발전은 미국 기업 및 트럼프를 포함한 정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중국이 미국의 목을 조여오는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 제조 2025(2015년 시작한 첨단 기술 육성책)’ ‘쌍순환(2020년·내수 확대와 기술 자립)’ 정책에 따른 성과가 나오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BYD는 전기차·하이브리드차 분야에서 미국 테슬라의 점유율을 두 배 이상의 격차로 따돌리고 있고, 최근엔 5분 충전으로 470㎞를 주행할 수 있는 급속 충전 시스템을 출시·시연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 CATL은 4년 연속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이다. 드론 시장에서 DJI의 점유율은 독식 수준인 80%에 달한다. 라이다 기업 허사이는 BYD·유니트리 등 중국 전기차·로봇 기업뿐 아니라 독일 메르세데스-벤츠까지 고객사로 최근 유치했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약 37%로 1위인 허사이의 올해 라이다 생산량은 지난해의 세 배인 150만 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가 전체가 기술 실험장이 되어 기업들의 기술 상용화를 앞당긴 것도 눈에 띈다.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최근 잇따라 ‘레벨 3(L3·운전자가 시스템이 요청할 때만 운전)’ 단계 자율주행 차량의 양산 계획을 발표하며 올해를 ‘자율주행 원년’으로 삼고 있다. 지리자동차 산하 지커는 L3급 자율주행 플랫폼 ‘H9’을 최근 공개했고, 샤오펑은 올해 하반기 L3급 자율주행 기능의 상용화를 본격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 ‘로봇 대여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다. 중국의 대표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19일 자사 휴머노이드가 세계 최초로 제자리에서 옆으로 공중회전을 하는 데 성공한 영상을 공개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진은 한편 19일 소형 양자통신위성 ‘지난 1호’가 중국 베이징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까지 약 1만2900㎞ 떨어진 거리로 암호화된 이미지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양자 통신 역사상 최장 기록이다.

중국의 기술 유출 대비는 정책 방향과 법 제정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CAC)은 오는 5월부터 중국 내 1000만 명 이상의 개인 정보를 처리하는 플랫폼 기업에 대해 2년마다 최소 1회 감사를 진행한다.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거액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영업 정지 처분까지 받게 된다. 중국이 해외 상장 기업의 안보 심사(2021년), 중국 내 외국계 조사기관 단속(2023년), 개정 반(反)간첩법 시행(2023년 7월)에 이어 중국 내 기술 유출을 막는 장치를 추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술 유출과 관련한 법 집행의 강도 또한 높아졌다. 19일 중국 최고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중국 연구소에서 보조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사직한 류(劉)모씨가 6개월간 국외 정보기관과 접촉해 기밀을 유출했다”면서 “간첩죄, 국가기밀 불법 제공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정보기관이 ‘기술 유출은 사형감’이란 경고 메시지를 낸 셈이다.

다만 중국이 첨단 기술 도약을 자축하기엔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와 고민이 많은 상황이다. 중국 경제는 2021년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장기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대통령 2기에 취임한 트럼프는 중국 견제의 수위를 높이겠다고 예고한 상황이다. 트럼프는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잇따라 인상하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이미 2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큰 중국 경제엔 미국이 주도하는 관세 전쟁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지도부는 아울러 자국 내 과도한 기업 규제와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가 해외 자본의 중국 이탈을 가속화한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이달 23~24일 글로벌 기업인들을 대거 초청해 베이징에서 개최하는 중국발전포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최고경영자(CEO)들과 면담하며 대(對)중국 투자를 독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독일 공영방송 DW가 전했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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