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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일)

MBK의 고려아연 ‘자산매각’ 시나리오 [헤럴드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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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노현탁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홈플러스의 기업회생절차 개시와 함께 고려아연의 운명에 대한 우려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단기 수익 추구형 경영 방식이 국가기간산업인 고려아연에 적용될 경우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과 국가 경제안보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먼저 홈플러스 사태로 드러난 MBK의 실체를 살펴보자. 2015년 MBK는 7조2000억원을 투입해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주목할 점은 인수 자금의 약 70%인 5조원을 차입금으로 조달했다는 사실이다. 이후 MBK는 차입금 상환을 위해 홈플러스의 핵심 점포들을 매각하며 3조4000억원의 자금을 회수했다.

자산 매각에 집중하는 동안 홈플러스의 경쟁력은 급격히 하락했다. 141개였던 할인점은 126개로, 371개였던 슈퍼마켓은 308개로 축소됐다. 매출액은 10년 만에 7조9334억 원에서 6조9315억 원으로 12.6% 감소했고, 한때 3209억 원(영업이익률 4.0%)에 달하던 영업이익은 2021 회계연도부터 적자로 전환, 3년 연속 손실을 기록했다.

MBK가 고려아연 인수에 성공할 경우, 홈플러스 사태의 재현 가능성이 크다. MBK는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위해 약 1조5000억원을 투자했으며, 이 중 약 70%가 차입금으로 알려져 있다. 이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해 고려아연의 핵심 자산들이 매각 대상이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호주 계열사인 썬메탈코퍼레이션스(SMC)가 1순위 매각 대상으로 거론된다. 세계 6위 규모의 제련소인 SMC는 호주 현지 법인 아크에너지를 통한 풍력발전소와 그린수소 사업 등 상당한 기업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 MBK는 이미 고려아연의 신사업 영역에 대해 ‘낮은 성공 가능성’을 언급하며 투자 축소를 암시한 바 있다.

이외에도 울산 온산 제련소의 올인원 니켈제련소와 미국 이그니오 등 자원순환 사업들까지 매각 대상이 될 경우, 전문가들은 3조원에서 4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회수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홈플러스 사태와 영풍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은 단순한 기업을 넘어 국가기간산업으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특히 ‘하이니켈 전구체 원천 기술’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어 정부의 엄격한 관리 아래 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다른 핵심 기술과 해외 계열사 자산에 대한 보호 조치는 미비한 상황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최근 ‘인터배터리 2025’ 현장에서 “사모펀드가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부동산뿐 아니라 기술, 인재, 자회사 등 미래 핵심 자산이 매각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특히 그는 “(올인원 니켈제련소와 같이) 2년만 잘 가꾸면 가치가 크게 상승할 수 있는 사업들이 단기 수익을 위해 매각된다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는 단기 수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와 국가 산업 경쟁력 보존이라는 공익적 가치 사이의 충돌을 보여준다. 홈플러스 사태는 차입매수(LBO) 방식의 기업 인수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어떻게 훼손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고려아연과 같은 국가기간산업에 대해서는 단순한 소유권 변동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의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전략광물과 첨단소재 분야에서 고려아연이 담당하는 역할을 고려할 때, 단기적 자산 매각으로 인한 기술력과 생산 역량의 약화는 우리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기업 인수합병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하고, 국가 전략산업의 보호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홈플러스의 교훈이 고려아연에서 반복되지 않도록 산업계와 정책당국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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