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작가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청담동 조은숙갤러리 전시장. 푸른 톤의 색선면 연작들이 죽 이어지다가 가장 안쪽의 전시장 벽면에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화를 연상시키는 노란 빛의 선면 색조화 대작으로 시선이 마무리된다. 이 노란 빛 대작이 전시의 고갱이에 해당한다.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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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추상일까, 푸른 풍경일까.
아물거리는 바다 수평선이나 창공의 대기를 떠올리게 하는 김이수 작가의 색채 회화는 호기심 어린 물음을 낳는다. 서울 청담동 조은숙갤러리에서 근작 40여점을 내걸고 차린 그의 개인전 풍경은 환영과 환각을 낳는 색선들이 조합된 화면들로 채워진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정연하게 푸른 빛과 노란 빛의 색조가 층을 이룬 그림들이 도열하거나 안쪽 벽면에 안착하듯 붙어서 시선을 특정한 쪽으로 끌어낸다. 디지털 픽셀 화면처럼 얼핏 보이는데, 가까이서 볼수록 미세한 색감과 농도의 변화가 불규칙한 파장처럼 느껴진다. 밀착해 볼수록 감흥이 더해지는 특유의 화면 효과는 집요한 수공업적 제작 공정의 결실이다. 매끈하게 마름질한 뒤 바탕색을 칠한 기본 화면 위에 마스킹테이프를 붙였다가 역시 바탕색과 비슷한 색조를 칠하고 떼어내면 그 가장자리에 안료가 미세하게 뭉친 잔선이 남는다. 이렇게 테이프를 붙였다 칠하고 떼는 작업이 화폭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조금씩 옮겨가면서 되풀이되면 잔선들이 겹쳐쳐 특유의 색조 화면을 이루게 된다.
김이수 작가. 손수 붓질로 휙휙 그은 푸른 선 드로잉 소품 앞에 섰다. 작가는 “막연하거나 명확하지 않은 나의 감정과 느낌을 명확하게 재현하라고 강요하는 구상회화를 되풀이하기 싫어 추상회화의 길로 들어섰다”며 “어떻게 하면 섬세하게 모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계속 방식을 바꿔가며 탐구해온 것이 나의 길이었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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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색선을 겹치는 작업을 한 화면 당 100차례 이상 되풀이한다고 말한다. 일반인이 보기엔 무망하고 황당해 보이는 작업 양상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붙이고 뗄 때마다 가해지는 작가의 힘과 기운, 감정이 미세하게 다르니 그 흔적으로 나타나는 색조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작가의 몸이 지닌 숨결과 체력이 여실하게 반영된 뗌과 칠함의 흔적들이 지극히 인간적 울림을 교감하게 하는, 옅고 짙음이 불균질한 색깔의 층위로 전해진다. 수년 전까지는 색실을 겹쳐 내건 뒤 흐릿한 아크릴판을 덧씌우거나 엷은 단색조 바탕화면에 테이프를 뗀 수평축의 선으로 색조의 모호한 층위를 구현했는데, 올해 전시에서는 색상이 더 분명해지고 수직축선으로 틀어 색면을 표현했다는 차이점이 드러난다.
들머리부터 푸른 하늘과 바다의 색조를 연상시키는 푸른 빛깔 색면 연작들이 죽 이어지다가 가장 안쪽의 전시장 벽면에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 마크 로스코의 색면화를 연상시키는 노란 빛의 색조화 그림으로 시선이 마무리된다. 이 노란 빛 대작이 전시 고갱이에 해당하는 출품작으로, 그 앞에 내걸린 부지현 작가의 집어등 설치 작업과 어울린다. 마음껏 붓질로 표현한 푸른 색선 드로잉 소품들도 한켠에 내걸려 견주며 감상하게 된다.
성신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아그네스 마틴 같은 미국 추상표현주의 거장의 영향을 받으며 수학한 작가는 국내 화단의 일부 보수 진영 평론가들로부터 후기 단색조 회화 작가로 자리매김되기도 했다. 화폭 전면을 같은 색조나 선의 이미지로 채우는 단색조 회화는 국내외 미술 시장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조로 소개돼왔다. 김 작가는 이 사조의 맥을 이을 후예로 평가되면서도 단색조 1세대인 1970~80년대 작고 원로 작가들 작법과 다른 관점과 시각으로 2000년대 이후 계속 자기만의 작화 방식을 개발하면서 새로운 색면추상의 세계를 모색해왔다. 29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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