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 경제학부 |
트럼프식 외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인 수단으로 지정학과 안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믿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광물을 소유하고 개발함으로써 안보에 도움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기업이 대거 진출한 곳을 러시아가 침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다. 직접적인 군사적 억지력을 제공해 달라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요청은 거절하고 “당신에게는 (협상) 카드가 없다”며 광물 제안을 받으라고 다그쳤다. 또 중동 지역의 평화를 위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을 이주시킨 후 미국 기업이 주도하는 휴양지로 개발하겠다는 안도 제시했다.
〈YONHAP PHOTO-1229〉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다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 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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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식 외교는 경제적 접근법
지정학 고려한 준비된 지략으로
2018~19년 대북 협상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적 접근법을 사용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의 경제적 발전상을 영상으로 만들어 김정은에게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 원산지역을 대규모 휴양지로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설득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반복된 사례는 경제를 통해 모든 문제를 풀려는 그의 일관된 태도를 보여준다. 현재 트럼프 정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관세를 대북 경제제재로 이해하면, 2기 정부의 대외정책과 1기의 비핵화 협상 방안은 정확히 일치한다. 관세나 경제제재라는 징벌적 유인, 미국 주도 경제개발이라는 긍정적 유인을 적절히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한다는 전략이다. 이런 접근은 기업가로 성장하여 대통령이 된 그의 근본적 성향이다. 트럼프 2기 정부의 대북정책도 이 패턴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식 대북정책의 위험은 바른 해결보다 빠른 타협으로 갈 가능성이다. 경제적 지렛대를 잘못 사용하면 지정학과 안보 문제를 봉합할 뿐이다. 지렛대가 약하면 무거운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없고, 들어 올린다 해도 잠깐에 그친다. 그런데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렛대의 힘이나 지속성은 숙고하지 않는다. 문제 해결에 유리하게끔 지정학 구도를 만들고 최적의 타이밍을 잡아야 하지만 이런 노력을 등한히 할 수도 있다. 러·우 전쟁이 끝나기 전의 지정학 환경은 북한에 유리하다. 북·러 밀착이 진행형인 상태에서 미국이 북핵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협상의 칼자루는 북한이 쥐게 된다. 지금은 미국이 러시아 쪽에서 접근하여 전쟁을 끝내려 하지만, 이 시도가 실패한다면 러시아를 압박하기 위해 북한에 손을 내밀 수도 있다. 그 결과 러시아에 군대와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국이 북한의 기존 핵을 용인할 가능성이 커진다.
트럼프식 접근법의 장점은 경로 도약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바라는 남북관계의 목표는 핵 없이 발전해 국제사회의 일원이 된 북한과의 통일이다. 이를 위한 종래 구상은 단계적 비핵화 과정에서 제재가 해제되고 경협이 재개된 다음, 장기간 성과를 축적해 북한의 발전과 국제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미·북, 나아가 국제사회와 북한이 광물 협정을 맺어 핵심 광물을 공동 개발한다면 북한의 성장과 국제화가 앞당겨진다. 국제사회가 북한 광물을 관리하기 때문에 우라늄을 이용한 북한의 핵 개발이 원천 차단된다. 외교와 경제에 큰 해를 미치는 까닭에 북한이 핵을 개발하거나 사용할 유인이 줄어든다. 이처럼 비핵이 경제발전의 조건이 될 뿐 아니라 경제발전이 핵 개발과 사용을 억지하는 선순환 구도를 경제적 접근법으로 만들 수 있다. 북한 문제의 빅뱅(big-bang)식 해결이다. 필자는 2018년에 ‘북한 비핵화를 위한 경제적 해법’이라는 칼럼에서 광물 협정 방안을 제시한 바가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19년 2월 28일 오전(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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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식 판 흔들기가 아니고선 해결 기미조차 없는 북한 문제의 현상 변경이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이 시도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지정학, 특히 북·러와 북·중 관계다. 트럼프 1기 때 북한 비핵화가 실패했던 주된 이유는 중국이 북한의 뒷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러시아가 북한의 버팀목이다. 북·러 관계가 멀어지더라도 중국이 다시 그 역할을 자처할 수 있다. 미국은 김정은이 가진 지정학 카드를 없애야만 판 흔들기가 성공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동시에 한미는 북한에 제시하는 경제적 유인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원산뿐 아니라 금강산·개마고원·백두산으로 이어지는 지역을 아시아 최고의 청정환경 관광지로 개발해 북한의 단번 도약식 성장을 도울 수 있다. 북한의 엘리트 일부는 트럼프 1기 정부가 제안했던 원산 리조트 개발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처럼 북한 권력층이 ‘핵이냐, 경제냐’를 깊이 고민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고착된 남북관계의 새 판짜기가 가능하다.
트럼프 2.0의 등장으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 그러나 기회도 생겼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식 대북 접근법에 부합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단순하며 거친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정교화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활용하는 지략이 있어야 한국의 안보를 지키고 북한을 비핵 발전으로 이끌 수 있다.
김병연 서울대 석좌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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