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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1 (월)

[기억할 오늘] 미국 대통령의 '현자'들이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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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 현자회의(Wise men meeting)- 1

'현자회의' 라는 비공식 용어는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세 명의 동방박사(Three Magi)'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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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6월 18일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 일본 본토 공격을 의제로 특별 회의를 소집했다. 약 보름 전 독일이 항복했지만, 일본은 전 국민 옥쇄를 호언하며 완강히 버티던 때였다. 전임자 루스벨트가 그해 4월 숨지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하고서야 맨해튼 프로젝트를 알게 됐고, 성과가 임박했다는 보고를 받아둔 터였다. 아마도 트루먼은 그 무렵부터 핵 사용 여부를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회의에는 현역 군 수뇌부뿐 아니라 민간 정치-외교-군사 전문가들도 여럿 초대됐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그날 회의를 백악관의 첫 ‘현자회의(Wise men meeting)’로 꼽는다.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면 미국 대통령은 비공식적인 자문회의를 열곤 한다. 백악관과 관련 부처 관료가 아닌 재야 원로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한 자리. 현안에 따라 다르지만 전직 국무장관이나 고위 외교-재무관료, 전임 백악관 참모와 퇴역 장성 등이 그 모임에 초대된다. 한국의 ‘국가원로자문회의’가 대통령 직속 상설 헌법기관이지만 얼마나 실질적인 구실을 하는지 애매한 반면, 백악관 현자회의는 비상설 비공식 모임이면서도 전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세계은행 설립, 마셜플랜 등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8년 3월 25일, 린든 존슨 대통령이 현자회의를 소집했다. 1월 북베트남과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대규모 구정 공세로 미군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직후였고, 반전 여론이 격렬해지던 때였다. 당시 베트남 주둔군 사령관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대규모 추가 파병을 요구했고, 부통령 험프리(Hubert Humphrey)는 줄기차게 전쟁에서 발을 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회의에는 딘 애치슨 전 국무장관과 맥조지 번디 전 국가안보보좌관, 오마르 브래들리와 매튜 리지웨이 장군 등 12명이 참석했다. 그들은 국방부와 중앙정보부(CIA) 등의 현황 보고를 청취한 뒤 1박 2일간 숙의, 다음 날인 26일 존슨에게 최종 입장을 전달했다.(계속)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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