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불길에 밀려 밀려, 막다른 바다에 닿았다…생지옥 된 바닷가 마을 [세상&]

0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성發 산불, 25일부터 동쪽 덮쳐

별안간 불천지된 영덕 주민들 난리

정전에 단수, 바다로 탈출하기도

26일 새벽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 뒷산까지 타들어온 시뻘건 불길이 바닷가 마을을 금방이라도 덮칠 듯 하다. 영덕읍내로 대피한 한 주민은 “육로 대피가 어려워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대피해야만 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박준규·이영기·안효정·박지영 기자] “숨쉬기도 힘들어요. 해가 달로 보이는 상황이고 온 세상이 빨갛습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에 거주하는 김분희(57) 씨는 26일 영덕 읍내가 ‘화염에 포위됐다’고 묘사했다. 전날 오후 5시께부터 영덕군 영역으로 들어온 산불은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군 전역으로 퍼졌다. 김씨의 친정이 있는 영덕 매정리를 비롯해 곳곳에 화염이 가득 덮쳤다. 밤새 집이 불에 완전히 녹아내린 곳들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영덕 전역에는 현재 타는 냄새가 가득 찬 상태다. 아침이 밝았지만 밤새 피어오른 연기와 매연 탓에 해도 가려질 정도다.

“읍내 아파트 주민들도 더러 피신을 가더라고요. 근처 초등학교나 채용센터 같은 기관에 나눠서 몸을 피하고 있었죠. 우리 언니랑 형부도 초등학교로 대피했다고 하더라고요. 영덕읍에 시집와서 30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 큰불이 갑자기 퍼져나간 건 처음이에요.”

일대 주민들은 영덕초등학교로 50여명 이상이 대피했고, 인근 실내체육관에는 300여명가량이 피신했다.

동해에 맞닿은 마을 주민들은 바다까지 삼킬 듯이 이글거리는 불길을 밤새 공포 속에서 지켜봐야 했다. 불을 피하다 보니 주민들은 바다 쪽까지 밀려가, 방파제에 간신히 몸을 피한 주민들도 있었다. 영덕 경정리는 빼어난 절경을 자랑하는 경정해변을 품은 마을인데 지난밤 만큼은 지옥이었다.

이곳 주민 김석원 씨는 “축산면 경정3리 피해가 가장 컸다. 육로 대피가 어려우니 배를 타고 대피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26일 새벽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 뒷산까지 타들어온 시뻘건 불길이 바닷가 마을을 금방이라도 덮칠 듯 하다. 영덕읍내로 대피한 한 주민은 “육로 대피가 어려워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대피해야만 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독자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덕에서 나고 자란 50대 친구들이 모인 카카오톡 친목 대화방은 25일 늦은 저녁부터 다음달까지 밤새 천여통의 메시지가 오고 갔다. 영덕에 부모와 형제, 친척을 둔 이들은 동해와 맞닿은 영덕까지 산불 영향권에 놓였단 소식에 부모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울 오빠도 전화 안 받는다”, “외숙모님도 전화 안 받으시네”, “영덕 전역이 정전됐단다” 등 통화연결을 염려하던 대화 내용은 26일 자정을 넘어선 한층 더 심각해졌다. 현지 주민들이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노인들 방파제 끝에서 대기하고 있단다”, “해경이 해안으로 진입이 안 된단다. 휴대전화 조명이라도 켜서 보이라고 해봐라”, “중학교로 대피는 했다는데 집이며 교회며 다 탔다고 한다. 어르신들 충격받으셔서 걱정이다” 등과 같은 가족과 지인의 대피 상황을 공유하는 메시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포구 코앞까지 산불이 치달았던 영덕 석리(석동) 주민들은 석동방파제에 몸을 피했다. 간신히 구조선을 타고 안전한 인근 포구로 탈출하기도 했다.

닷새째 수그러들지 않는 火魔…피해 커져

26일 오전 경북 의성군 고운사 연수전이 불에 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무너져 있다.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은 전날 고운사를 덮친 산불에 타 전소됐다. [연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북에서 시작한 산불은 기세가 수그러들긴커녕, 닷새째 빠르게 화선을 늘리며 피해 규모를 키우고 있다. 26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이번 대형 산불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모두 18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경북 14명, 경남 4명이다. 19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산림 당국에 따르면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들이다. 경북 의성에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에도 불길이 덮쳐 절이 전소됐다.

현재 산불의 영향권은 경남 산청·하동, 경북 의성·안동, 울산 울주 온양·언양 등을 비롯해 6개 권역(1만7534㏊)이다. 중대본이 전날 발표한 산불 영향 구역(1만4693㏊)보다 3000여㏊ 더 늘었다.

이 중 가장 피해가 큰 곳은 의성·안동으로 1만5158㏊의 산림이 거센 산불 피해 영향권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불 피해를 본 주택과 공장, 사찰, 문화재 등은 모두 209곳이다.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 2만7079명이 임시 대피소로 몸을 옮겼다. 이 가운데 1073명만 귀가했고 남은 2만6000여명은 여전히 임시대피소 등에 머무르고 있다.

이날 의성, 안동 등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사고 위험 방지를 위한 한전의 전력 차단 조치로 방송 장애가 발생했다. 정부와 사업자는 한전 전원 복구 및 산불 진화에 맞춰 복구 작업을 순차적이고 안전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설명했다. 과기부는 방송통신재난 위기경보를 ‘관심’ 단계에서 ‘주의’로 상향 발령했다. ‘방송통신재난대응상황실’을 운영해 정부와 사업자 간 24시간 대응 태세를 강화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6일 산불 대응 중대본 5차 회의에서 “기존의 예측 방법과 예상을 뛰어넘는 양상으로 산불이 전개되는 만큼, 전 기관에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대응해 줄 것을 거듭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주요 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