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용철 국립부경대학교 교수·전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장 |
디지털 기술은 기존 컴퓨터의 한계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왔지만, 반도체 기술이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면서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획기적인 성능 향상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이며, 그 중심에 있는 기술이 바로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이다.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터가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문제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이다. 기존 디지털 컴퓨터는 0과 1의 이진법을 사용하는 비트(Bit) 기반 연산 방식을 따르지만, 양자컴퓨터는 큐비트(Qubit)라는 양자 상태를 활용해 동시에 여러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큐비트는 중첩(Superposition)과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양자역학적 원리를 이용해 기존 컴퓨터보다 비약적으로 향상된 연산 능력을 제공한다. 현재 슈퍼컴퓨터로 수천년이 걸리는 연산을 양자컴퓨터는 단 몇초 만에 수행할 수 있으며, 이는 산업 전반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기술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양자컴퓨팅은 금융, 의료, 재료과학, 인공지능(AI), 사이버보안 등 다양한 산업에서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사이버 보안 분야에서는 기존 암호 체계가 양자컴퓨팅의 강력한 연산 능력 앞에서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안 기술의 패러다임 전환이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양자기술을 국가 안보와 직결된 전략 기술로 인식하고, 이를 선도하기 위해 대규모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최근 양자전략위원회를 공식 출범하고, 2032년까지 7000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양자 분야 대규모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100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개발과 양자 중계기 기술 확보가 포함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주요국들의 대규모 투자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수준이지만, 이러한 첫걸음이 지속적인 투자 확대로 이어지고, 글로벌 기술 격차를 줄이는 전략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제는 하드웨어 중심의 R&D를 넘어, 소프트웨어(SW)와 알고리즘 개발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양자컴퓨터의 연산 성능을 극대화하고 산업 활용도를 높이려면 퀀텀 알고리즘 개발이 필수적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퀀텀 알고리즘 챌린지' 등 경쟁형 R&D 방식을 도입해 혁신적인 알고리즘 개발을 촉진하고 있다. 더 나아가, R&D 지원을 넘어 민간 기업과의 협업을 활성화하고, 양자컴퓨팅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응용 모델 개발을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양자컴퓨팅이 기존 암호체계를 위협하는 만큼, 보안 기술 개발도 필수적이다. 미국, 유럽, 중국이 모두 양자 보안 표준화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민국도 양자키분배(QKD) 및 양자내성암호(PQC) 기술을 조기에 실용화하고 국제 표준을 선점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가 차원의 양자암호통신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해야 하며, 국방 및 방위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미래 전장 대비 양자기술 적용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점에 있으며, 대한민국이 이 변화 속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기 위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양자컴퓨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올라탈 시점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는 긍정적이지만, R&D를 넘어 산업화, 보안 대응, SW 개발, 국방 적용, 국제 협력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특정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려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글로벌 협력을 강화하는 과감한 실행이 필요하다.
서용철 국립부경대 교수·전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장 suh@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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