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
일단 첫 매듭이 지어졌다. 소속사 어도어와 전속계약 분쟁을 벌이고 있는 걸그룹 뉴진스 얘기다. 법원은 어도어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뉴진스의 독자 활동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새 팀명 NJZ를 발표하며 독자 활동 수순을 밟던 뉴진스는 당장 반발했다. 인용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법원에 내고, 당분간 활동 중단도 선언했다. 지난 23일 홍콩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뉴진스는 과거 히트곡들을 부르지 않았다. 대신 ‘피트 스톱(Pit Stop·잠시 멈춤)’이란 신곡과 멤버별 솔로 곡으로 무대를 채웠다. 뉴진스는 “오늘이 당분간 마지막 공연이 될 수도 있다. 법원의 결정을 준수해 모든 활동을 멈추기로 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지금 저희에게 꼭 필요한 선택이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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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로 전속 해지 제동
외신 발언 대중 반발 자극
민희진 대신해 분쟁 당사자로
자기부정 통해 성장 동반돼야
어도어와 전속계약 분쟁 중인 걸그룹 뉴진스. 1심 법원은 어도어의 손을 들어줬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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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뉴진스를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다. 법조계에서는 가처분이 인용된 이후 홍콩 스케줄을 강행하고 굿즈를 판매한 것이 향후 법정 다툼에서 크게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처음엔 자신들의 총괄 프로듀서였던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어도어 모회사 하이브의 경영권 분쟁에 끼인 희생자 같던 이들이 이제는 분쟁의 당사자가 됐다. 민 전 대표가 갈등의 전면에서 사라지면서 탬퍼링(계약기간 중 이적 시도) 의혹은 잦아들었으나, 이들이 민 전 대표를 대신해 대리전을 치르는 양상이 된 것이다. 뉴진스가 최근 외신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부조리한 한국 사회와 싸우는 혁명가로 칭하자 대중의 반응이 싸늘했다. 매번 열광적이고 조직적인 팬덤 ‘버니즈’와 함께 ‘장외 여론전’ 전략을 써온 뉴진스지만 이번에는 돌파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앞으로 얼마나 법정 공방이 이어질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의 끝은 어딜까.
일방적인 계약 해지 선언 이후 뉴진스는 외신 등을 통한 K팝 산업 시스템에 대한 고발도 이어갔다. 해외에서 K팝은 놀라운 성취를 인정받지만 한편으로 미성년 아이돌에 대한 혹독한 훈육과 사생활 통제, 공장형 찍어내기 시스템 등 산업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도 상당하다. 대개 근거 있는 지적이지만 일부는 K팝을 여전히 ‘국가 주도형 국책산업’이나 ‘착취적 비즈니스’로 깎아내리려는 편견이나 혐한 정서에 기초한 경우도 있다. 명백한 탬퍼링으로 밝혀진 피프티피프티 사태 때에도 일부 해외 팬덤은 끝까지 소속사를 악마화하며 전 멤버들을 옹호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패소한 사실이 K팝의 어둠이고 한국 사회의 현실이라는 발언은, K팝과 한국 사회를 동시에 깎아내리는, 자기중심적인 논점의 확장 아닐까. 뉴진스는 “가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계약해지 소송을 이어간다고 밝혔으나 그 가치와 인권이 무엇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이들이 많다.
K팝은 거대 자본과 기획 시스템을 동원해 매력적인 아이돌 상품을 만들어내는 비즈니스다. 선악의 대리전을 치르는 듯하지만 애초 방시혁·민희진 두 거물의 갈등은 선악으로 잘라 말할 수 없는 이해의 충돌이었다. K팝 시스템의 수혜자라고 그 시스템을 비판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혹독한 자기부정을 통한 성장이 동반돼야 한다. 과연 뉴진스가 그 단계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두 거물의 싸움에 휘말려 스스로 날개를 꺾고 말지 아직은 미지수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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