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익숙치 않아 ‘미확인 문자’만 가득
저렴한 구형 3G폰은 아예 재난문자 못받아
의성 산불로 발송된 재난문자 2025.3.22/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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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많이 어두워 재난문자 오는 소리를 못 들으세요. 젊은 사람들이나 신경써서 보는거지. 나이든 사람들한테는 그게 들리겠어요, 어디.”
경북 영덕 산불로 어머니를 잃은 김모 씨(65)는 2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울먹였다. 27일에도 화재 지역에서는 재난문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지만 고령층에게는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불을 피해 대피한 노인들은 “대부분 문자가 아닌 주변 친구나 가족, 이장의 도움으로 산불이 난 걸 알았다”며 “사람들이 달려와 알려줘서 덕분에 대피했지, 문자 보고 대피한 노인들은 거의 없다”고 했다.
●노인들 휴대전화에 ‘미확인 재난문자’ 가득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따르면 이달 22일부터 27일 오후 7시까지 행정안전부, 각 시도 등이 발송한 재난문자 중 206건이 경북 안동, 영양, 영덕, 청송 대상이이었다. 모두 산불 사망자가 발생한 지역이다. 재난문자 건수는 안동 127건, 영양 26건, 영덕 23건, 청송 30건이었다.
오모 씨(82)의 휴대전화에도 20여 개 넘는 재난문자가 미확인 상태로 쌓여 있었다. 오 씨 역시 동장이 전화를 걸어 “대피하라”고 말을 해준 덕분에 산불을 피할 수 있었다. 오 씨는 “휴대전화를 볼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영양 산불로 누나 등 가족 3명을 잃은 우모 씨는 “(가족이) 모두 60대다. 휴대전화 가지고는 (대피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김모 씨(83)는 “자식들이 휴대전화를 사주긴 했는데 문자를 볼 줄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이장과 친척들이 대피하라고 연락을 해 준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
●전문가들 “기술 공백, 사람으로 메워야”
경북 의성군은 24일 오후 2시34분 긴급재난문자를 통해 산 속에 있는 진화대원 철수를 요청했다. 2025.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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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노인들은 구형폰에 해당하는 ‘3세대(3G) 폰’을 여전히 쓰고 있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중 3G 서비스 가입자는 1%가 채 안되는데 대부분 고령층이다. 문제는 3G폰은 기술적인 문제로 재난문자를 수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안전디딤돌’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재난 정보를 긴급문자처럼 받을 수 있지만, 앱 설치가 안되는 3G 폰은 이마저도 이용할 수 없다. 2013년 이전에 출시된 4세대(LTE) 휴대전화 역시 재난문자를 받을 수 없다. 산불 피해지 중 한 곳인 석보면에서 만난 김모 씨(84) 역시 휴대전화가 구형인 탓에 재난문자를 받지 못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유무선통신서비스 가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 3G 휴대폰 가입자 수는 52만 8335명으로 전체 가입자(5693만명)의 1%가 안 된다. 하지만 정보통신(ICT) 업계에 따르면 고령층은 여전히 3G 휴대폰 사용 빈도가 높다.
전문가들은 고령층에게 재난 사실을 빠르게 전파할 수 있는 대안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에 소외된 계층이기 때문에 결국은 지방 공무원 등 사람이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고령층 등 통신 기기에 대한 이용이 미숙한 분들은 재난문자에 익숙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정보를 시시각각 확인하면서 대처할 수 있어야 했는데, 결과적으로 대피에 실패했으니 재난문자 시스템에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해다. 이어 “지자체 관계자와 고령자를 1대1 매칭해서 대피명령이 떨어졌을 때 직접 전화를 거는 등 필요한 정보를 직접 알려드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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