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도 지정 이유는 몰랐고 "한국 핵정책 우려 반영" 추측만
최초 시행 1981년에 지정됐다 한국과 협의 거쳐 1994년 해제
올해 비밀해제된 외교문서중 1993년 미국 에너지부 내부규정 요지 |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정부가 30년 전 한국이 미국 에너지부(DOE)의 민감국가 명단에 올랐을 당시 이 문제가 한미 협력에 장애요인이라고 판단하고 해제를 위해 머리를 싸맸던 정황이 외교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한국은 올해 다시 미 DOE의 민감국가 명단에 올랐지만 한미 모두 보안 문제일 뿐이며 과학기술 협력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대외적으로 강조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였던 것이다.
미국은 1981년 1월 민감국가 제도를 처음 시행하면서 한국을 포함했다가 1994년 7월 제외했다.
28일 외교부가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1993년 12월 제1차 한미 과학기술협력 공동위원회에서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서 삭제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한다는 계획 아래 대응 논리를 준비했다.
미국은 당시에도 한국을 왜 민감국가로 지정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핵 비확산 등 다른 정치적·정책적 이유가 있다면 다른 채널로 다루는 게 낫겠지만, 무슨 이유로 지정됐는지 몰라 DOE도 참석하는 한미 과학기술협력 대표 협의체에서 제기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구체적인 배경은 모르지만 외교부 내부 검토 자료에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70년대 한국의 핵정책에 대한 (미국의) 불신과 우려가 반영된 것"이라고 적힌 데서 보듯 박정희 정부 당시 추진한 독자 핵무장이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의 배경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대책은 한국의 핵포기 의지를 강조한다는 쪽에 초점이 맞춰졌다.
지금과 여러모로 겹치는 측면도 있다. 미국은 올해도 기술보안상 이유라고만 할 뿐 한국을 민감국가로 올린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지는 않고 있고, 이 때문에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확산하는 독자 핵무장 여론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한편 한국이 과거 민감국가 명단 해제를 위해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은 연구자들이 DOE 본부와 산하에 있는 수많은 연구시설에 방문할 때 더 철저한 심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DOE가 어떤 심사 절차를 적용했는지도 과거 문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은 "방문 기여도·중요도, 국제적 합의 존재 여부, 첩보 행위 위협, 보안계획의 신빙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승인 여부와 기간을 결정하게 된다.
당시 미국이 북한뿐 아니라 한국의 핵활동 동향을 예의주시했던 정황도 이번 외교문서에서 나왔다.
정부가 1993년 12월 윈스턴 로드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 만찬회 연설을 정리한 요지를 보면, 로드 차관보는 한 달 전 한미정상회담 당시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철저하고도 광범위한 노력에 합의했다"며 "'철저함'이란 핵확산 위협이 완전히 해결되고 한국 및 북한의 핵활동에 있어 투명성이 보장되는 의미"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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